세계적이란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씨티은행. 작년 한미은행과의 통합을 이루고 한국시장에서의 토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통합 법인명은 ‘한국씨티은행’이다. 토착화, 신규 고객 확보, 일반 고객 대상 영업, 전산 통합 문제 등 많은 난제들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이가 조성곤(42) 전략센터 센터장이다. 40대 초반의 나이에 중책을 맡고 있는 그는 본업인 금융업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별명이 하나 있다. 바로 ‘맛의 달인’이다. 금융계 최고의 식도락가로, 500여개의 맛집에 관한 정보가 그의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을 정도다. 걸쭉한 입담, 정연한 논리, 정교하고 방대한 맛집 리스트, 그리고 이들을 자신의 일 속에 녹여내는 솜씨까지 곁들인 젊은 금융인이다. 그와의 맛있는 대화 속으로 빠져들어 보자.

한국씨티은행 전략센터 센터장 조성곤



 금융계 최고의 맛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는데, 음식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직업상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그래서 술을 먹다 보니 건강에도 좋지 않은 데다, 술을 먹을 때는 좋은데 술이 깨면 좋았던 기억도 사라져 버려요. 그런데 맛있는 식당에서 사람을 만나면 그 자리뿐 아니라 이후에도 좋은 기억이 계속되더군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맛있는 식당은 소개받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다시 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맛있는 식당을 소개한 저를 음식과 함께 좋게 기억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좋은 식사가 좋은 비즈니스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식당이란 의미는 뭔가요.

 식당에서 음식이 나올 때 테이블 세팅만 봐도 그 집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손님 입장에서 준비하지 않는 집은 음식이 괜찮아도 오래 가는 집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주인의 음식에 대한 고집이 느껴지는 집들이 있거든요. 그런 집들이 좋은 집인 것 같아요. 물론 맛이 기본이지만요.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봐요.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에게서 들은 이야기 중에 여기에 걸맞은 예가 있거든요. A를 1로 B를 2로, 이런 식으로 해서 알파벳을 순서대로 숫자로 변환합니다. 그리고 영어 알파벳으로 100점이 나오는 단어를 찾아봤답니다. ‘HARD WORK’는 96점이 나옵니다. ‘LEADERSHIP’은 98점이 나오고요. 그런데 100점이 나오는 단어는 딱 하나라고 하더군요. 바로 ‘ATTITUDE(태도)’입니다. 본질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식당을 하든, 금융업을 하든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식당에서도 일에 대한 연관성을 찾는군요.

 아닙니다. 그런데 음식은 참 정직한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또 일과 연관짓는다고 하겠지만, 음식은 인생과 똑같은 것 같아요. ‘인풋(In Put)’과 ‘아웃풋(Out Put)’이 같거든요. 좋은 재료와 만드는 정성이 깃들지 않으면 맛있는 음식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음식에 철학까지 양념으로 치는군요. 좋은 식당 정보는 어떻게 얻나요.

 저희 회사 직원이 1200명입니다. 직원들도 이제는 제가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알고 좋은 식당이 있으면 추천을 합니다. 전국에 있는 영업망은 저의 전국 리스트를 만드는 일등 공신이지요. 직원들과 음식을 먹으면서 어울리니까 관계도 좋아지더라고요. 세상에 음식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습니까.



 자주 들르는 식당 중에서 추천할 만한 집이 있습니까.

 저는 생선회를 가장 좋아합니다. 생선회는 재료의 질이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까. 서울 신길동의 ‘막내횟집’은 제가 가본 모든 횟집 중에서 최고입니다. 이 집만큼 재료를 잘 고르는 곳을 저는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생선초밥집으로는 삼선교에 있는 ‘구보다스시’를 자주 이용합니다. 사장이 개인적으로 후배이기도 합니다. 창조적인 생선초밥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지요. 용산에 있는 ‘명화원’이나 ‘장강마루’같은 중국집도 단골 식당들입니다. 고기집으로는 논현동의 ‘원강’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지요. 면이 먹고 싶을 때는 좀 멀긴 하지만 원당의 ‘너른마당’에 가서 칼국수를 먹고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집에서 식사하는 시간이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집에서 싫어하지 않나요.

 사실 집에서 평일에 저녁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침만 주로 집에서 먹습니다. 아내는 제가 밖에서 무슨 독립 운동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침 식단은 블랙 푸드를 중심으로 한 반찬과 현미잡곡밥을 먹습니다. 물론 거의 전부가 유기농 관련 제품이지요.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인가요.

 사실은 제가 유기농 관련 단체인 한살림공동체 발기인입니다. 유기농 하면 무척 비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절대로 비싸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한살림공동체는 돈이 있다고 재료들을 살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조합원에 가입해야 해요. 그리고 조합원은 유기농을 재배하거나 배달하는 일 등을 공동으로 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아이들도 참 좋아해요. 농사짓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에게 농업의 소중함을 자연스럽게 알게 해주는 것도 좋고요. 사실 하나 더 말씀드리면 제가 요리를 잘합니다.



 요리를 잘한다고요.

 요리에 관심이 많아 중국요리, 한식요리 학원을 다니면서 정통으로 배웠습니다. 그래서 음식의 기본이자 프로들만이 할 수 있는 소스를 만들 수도 있어요. 요리법만 2000장 정도를 갖고 있습니다. 틈만 나면 요리를 하지요. 생선회를 뜨는 것만 빼고 중국요리든, 한국요리든, 일본요리든 할 수 있습니다. 두 달에 한 차례는 최상등급의 한우를 사서 아는 도축장에서 도축해 파티를 열기도 합니다. 일반 고기집에선 맛볼 수 없는 소고기의 진수를 맛보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술은 어떤 것을 좋아합니까.

 좀 식상할지는 몰라도 와인을 좋아합니다(그는 식사로 나온 와인의 종류와 등급까지를 정확히 알아냈다). 와인만큼 정직한 술도 없는 것 같아요. 와인은 자연 환경, 특히 기후에 가장 민감한 술입니다. 그런데 기후가 좋아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고 해서 좋은 와인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포도를 건조하게 유지하는 것, 물이 잘 빠지게 해주는 일 등 정성스런 과정들이 없으면 좋은 와인은 결코 나오지 않지요.



 어떤 게 좋은 와인일까요.

 와인은 비싼 게 좋은 것이 아니라 가장 싼 가격에 자신에게 맞는 와인이 최고 와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칠레산 몬테스 알파나 미국산 EOS 같은 2만~3만원대의 와인을 좋아해요. 가격에 상관없이 가장 좋아하는 와인은 뉴질랜드산 쇼비뇽 블랑 클라우디나 칠레산 1865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