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여의 비행 끝에 만난 피지는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놓는다. 즐비하게 늘어선 고층건물과 개개인마다 첨단시설로 무장한 도회지 생활에 익숙해져버린 탓일 게다. 수년전 첫 아프리카 여행 때의 기억이 오버랩 된다. 시간여행을 온 듯, 어린 시절의 풍경 앞에 잠시 어지럼증까지 느낀다. 문명을 탈출한 태초의 원시 속으로의 여행. 전혀 다른 두 개의 세계를 연결하는 허브로 난디(Nandi) 국제공항은 피지 여행객을 그렇게 맞이한다.

복 4차선 도로가 곧게 뚫렸다던 가이드의 말에 우리의 고속도로를 연상했던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공항을 빠져나온 자동차는 포장된 시골길을 달렸다. 잔디가 깔린 넓은 정원,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야자수가 둘러쳐진 호화스런 단독주택들 사이로 바람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벽돌을 쌓아올린 초라한 집들이 차장 밖으로 지나친다. 남루한 옷차림. 우리의 기준으로 피지는 분명 가난한 나라다. 그러나 그들이 느끼고 있을 행복지수는, 어쩌면 우리보다 높을지 모른다. 이들도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혹은 출세를 위해 피 터지게 싸우고 있을까. 도로가를 걷는 그들의 표정만으로는 분명 우리와는 다른 무소유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피지에서 살다 귀국해 7년 만에 다시 피지를 찾는다는 김정규 A&A투어 사장은 “흔히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의외로 행복지수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피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도 덧붙인다.

관광도시인 탓일까. 또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일을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눈을 맞추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불라(Bula)’라는 한 마디는 외모에서 풍겨오는 위압감을 잠재운다. 그을린 듯한 얼굴에 번지는 환한 미소는 마치 쇼핑센터에 줄줄이 걸어놓은 탈을 보는 듯하다.

‘피지인들이 서울에 나타나면 기겁해 도망갈 사람들이 많겠다’는 일행 중 한 명의 말이 가슴에 꽂힌다. 기골이 장대한 그들에게서 남녀를 구분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여자들 가운데에는 수염이 있는 이들도 있다고 하니 연약한(?) 동양인이 괜히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다.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

피지는 날짜 변경선 서쪽에 위치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다. 뉴질랜드 북쪽에 있는 경상도만한 크기의 섬나라로 모두 333개의 화산섬으로 이뤄져 있다. 수도인 수바가 위치한 바누아레부와 관광지로 유명한 비티레부 등 비교적 큰 섬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작은 산호초 섬에 불과하다. 하지만 때 묻지 않은 원시의 자연환경으로 100여개의 무인도를 비롯한 섬들은 허니문 여행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인의 방문은 증가추세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낯선 곳이다. 지난해 피지를 방문한 한국인은 1만1000여명 정도이며 올해 1만5000여명의 관광객을 예상하고 있다. 피지 전체 방문객의 2%다.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도 70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5년 한국인 여행객 증가율은 22%에 달할 만큼 여행지로서 인기를 끌고 있다.

박지영 피지관광청 한국대표는 “가장 빠른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어 본청에서도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대한항공의 공이 컸다. 지난해 10월부터 직항노선을 운항중인 대한항공이 TV광고를 방영하면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특히 올 3월부터 주3회 왕복으로 증편, 피지 방문객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피지관광청도 한층 공격적인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여행사 교육 및 지원을 비롯해 미디어 지원 및 광고 홍보, 상품 개발 및 자료제작과 배포, 그리고 국내외 업체들과의 공동 이벤트 기획 및 진행 등이 그것이다.

피지관광청은 올해 에스티로더와의 VIP프로모션, 피지워터 런칭과 함께 명동거리 이벤트, 신세계백화점 이벤트 등을 진행했다. 또 연예인을 포함한 150명을 피지로 보내는 ‘환타 펀 캠프’ 행사가 진행되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캠프도 7~8월 중으로 기획하고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리조트

흔히 피지 관광의 백미로 꼽는 두 가지가 있다. 골프와 무인도에서의 유유낙낙한 휴가가 그것이다. 특히 피지의 섬 리조트는 머무는 동안 문명세계로부터 완벽하게 격리된다. 객실에는 그 흔한 TV나 신문은 물론 자명종 역할을 하는 전화조차 없다. 원시의 숨결이 묻어나는 그곳에는 오직 원주민들의 순수한 웃음과 노래, 형형색색의 꽃들이 내뿜는 그윽한 향기, 그리고 아침마다 단잠을 깨우는 이름 모를 새들의 달콤한 지저귐이 있을 뿐이다.

이들 섬으로의 여행은 난디의 데나라우 선착장에서 페리나 수상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시작된다. 페리를 타고 달리면 수평선 끝에 숨어있는 각종 섬들이 고개를 내밀고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데나라우 선착장에서 페리로 닿는 첫 번째 섬은 20분 거리에 위치한 사우스시(South See)섬이다. 둘레가 300여m에 불과한 작은 무인도지만 아기자기한 해양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그러나 이 섬은 짧은 여행 일정으로 시간에 쫓긴 이들이 주로 찾는 반나절 휴양지에 불과하다.

반면 인근 트레저(Treasure)섬은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섬이지만 이름 그대로 남태평양의 보물섬으로 알려져 있다. 섬 전체가 하나의 리조트로 꾸며져 있으며 피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자랑한다. 해변에는 인디언 오두막처럼 천정이 높은 전통가옥 ‘부레’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야자나무 그늘 아내의 해먹에 누워 둘만의 추억 만들기에 한창인 신혼부부들의 모습이 쉽게 눈에 띤다.

난디에서 수상비행기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말롤로(Malolo)섬은 해양스포츠의 메카다. 스노클링, 바나나보트, 패러세일링, 카누, 바다낚시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옥색에서 에메랄드색을 거쳐 잉크색으로 짙어지는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즐기고, 해먹에 누워 책을 읽거나 오수를 즐기는 등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황홀한 해넘이의 장관이 펼쳐진다. 이글이글 타오르던 태양이 수평선과 황홀한 입맞춤을 할 때 생기는 오메가 현상도 이곳에선 흔한 장면이란다.

섬에서 범선이나 스피드 보트를 타고 주변의 무인도를 한나절 코스로 둘러보는 호핑투어도 피지여행의 매력이다. 미국의 영화배우 톰 행크스의 무인도 생활을 담은 <캐스트 어웨이>로 유명해진 고슴도치 모양의 몬드리키섬은 한국인이 많이 찾는 마나섬과 가깝다.  취재협조 : 대한항공, 피지관광청(02-363-7955), UTC투어(02-755-9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