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순정만화의 대모 김혜린이 12년에 걸쳐 집필한 <불의 검>이 뮤지컬 무대에 올려졌다. 만화를 원작으로 뮤지컬을 구성했다는 신선함과 유명 배우와 스태프가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미스사이공>의 히로인 이소정(32)이 여주인공 ‘아라’역을, 크로스오버 가수 임태경(32)이 남주인공 ‘아사’로 열연하고 있다.
 연 연습이 한창인 서울 대학로 서울문화재단을 지난 8월24일 찾았다. 지하연습실에 들어서자 열기가 후끈 밀려온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선선하게 뿌리고 있는 밖과는 전혀 딴판이다. 연습 중인 장면은 악역 ‘수하이바토로’에 맞서 여주인공 ‘아라’가 저항하는 2막의 한 순간. 공연의 가장 격정적인 순간을 표현하고자 40명의 배우가 30여 평의 연습실을 뛰어다닌다. 그 무리 가운데 여주인공 이소정이 있다. 160㎝의 크지 않은 키에 이국적인 외모가 그녀의 데뷔작 <미스사이공>의 히로인 ‘킴’을 떠올리게 한다.

 1994년 21살의 나이에 <미스사이공>으로 데뷔해 뮤지컬계의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지 만 12년이 흘렀지만 그녀가 출연한 작품은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 “양이 아니라 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작품이 있으면 더욱 욕심을 부린다”는 것이 그녀의 변.

 이번 작품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아무도 공연하지 않았던 한국 창작 뮤지컬의 초연작이기 때문. 누구도 보여준 적이 없는 역할인 탓에 ‘아라’의 캐릭터를 만들고, 그것을 노래와 움직임으로 담아 내는 것은 철저히 그녀의 몫이다. 그만큼 부담도 더 클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는 ‘배부른 환경’에서 활동해 왔죠. 모든 것이 갖춰진 곳에 나만 들어가면 됐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해야 할 것도 많고, 감수해야 할 부분도 많아요. 힘들지만 정신적인 보상과 만족은 더 크던데요?”

 한동안 뮤지컬 활동 계획이 없던 그녀는 작품 내용도 좋았지만 특히 여주인공 ‘아라’의 매력에 빠져 <불의 검>에 합류하게 됐다고 말한다.

 “외국에서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인지 한국 창작뮤지컬에 오히려 더 애정이 가더라고요. 특히 이번 작품의 ‘아라’는 밝음 속에서도 ‘한’을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이번 공연의 한국적인 음악이 표현하는 아련함과 꼭 맞는 인물이지요.” 

 뮤지컬 <불의 검>은 청동기에서 철기 문명으로 넘어가는 시기, 만주 일대의 두 민족 간의 충돌을 다루고 있다. 기억을 잃어버린 아무르족의 전사 ‘아사’와 사랑을 위해 피의 검을 만드는 가녀린 아무르족 여인 ‘아라’, 그리고 이들을 방해하는 카르마키의 귀족 ‘수하이바토로’의 운명적으로 얽힌 사랑을 그리고 있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시ㆍ공간을 초월한 사랑을 제한된 무대 공간과 2시간 남짓의 공연으로 어떻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녀가 제시하는 답은 간단하다. ‘노래에 힘을 많이 싣는 것.’ 9월19일부터 10월2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의 1588-7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