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하기는/천장에 매달린/대들보 같은 사람” 시인 고은은 <만인보>에서 방동규씨(72)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어울리지 않게도 월급 100만원의 공무원이 되었다. 직함은 고궁안내지도위원.
한테 뭘 물어볼 게 있다고 여기까지 왔어.” ‘조선 3대 입심’, ‘시라소니 이후 최고 주먹’ 같은 소문에 걸맞지 않는 그리 크지 않은 키와 자상한 표정. 방동규씨는 그렇게 말문을 열었다.

‘배추’란 별명으로 문단과 미술계서 유명한 방씨는 경기도 개성 출신이다. 개성에 승용차가 단 두 대 있던 시절. 그의 집엔 컨버터블 승용차가 있었단다. 한국전쟁이 나기 1년여 전 서울로 이사 온 그는 10대 시절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었다. 그 후 광부, 패션디자이너, 막일, 헬스클럽 강사 등을 거치며 몸으로 살아왔다. 또 백기완 씨 등과 함께 사회운동을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었다.

“유홍준이(문화재청장)한테 전화가 왔더라고. 고궁안내지도위원이란 걸 만들었는데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헬스클럽 코치 일을 그만둔 뒤 잠시 쉬고 있던 시절,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그를 찾았다. 작년 10월의 일이다.

일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잘했다’ 싶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궁을 소풍장소로 알아. 근데 그건 일제의 잔재야.” 그는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바꿔 우리 역사를 농락한 예를 들며 역사가 숨 쉬는 궁 안에선 정숙한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특히 몇몇 어르신들이 예전 생각에 궁 안에서 벌이는 술판을 제지하는 건 비슷한 연배인 그 만의 몫이다.

하루 일과의 시작은 8시30분. 궁을 하루 6바퀴 정도씩 돌며 관광객에게 안내도하고 이것저것 관리도 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간다. 만보계로 재보니 2만 보정도 된단다. 하지만 방 씨는 “그래도 운동이 모자란다”며 헬스클럽에서 모자란 운동량을 채운다. 그는 지금도 벤치프레스 150kg정도는 문제없다고 한다.

어느 날은 한 아이가 나뭇가지를 잡고 흔들고 있었다. 그런데 부모는 그걸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다가가 팔을 잡고 흔들었다. 처음엔 재밌어하던 아이가 나중엔 아파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말했다. “예쁘면 지켜보고 감싸줘야지 그렇게 잡고 흔들면 나무도 아파해” 처음엔 싫은 표정을 짓던 아이의 부모도 나중엔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고 한다.

방씨의 좋은 활동 때문인지 문화재청은 올해 70세 이상을 대상으로 고궁안내위원 10명을 선발했다. 그는 노인들이 고궁안내위원 같은 일거리를 갖는 건 분명 좋은 것이라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일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 그게 진짜 일하는 거야. 노인들이 일을 그저 ‘소일거리’로 안다면 그건 가짜야” 새로 뽑힌 후배들에게 그가 당부하는 말이다.

“내 꿈?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사는 거. 뭐 개인적인 것이라면 미스터코리아에 나가는 거지” 방씨는 미스터코리아에 나가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월급이 좀 모자란다며 웃음을 지었다. 젊은 방동규를 ‘빨갱이’로 몰았던 세상, 하지만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이라는 그의 순수한 꿈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