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노르웨이의 극작가 입센이 세상을 떠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적으로 그를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선 극단 산울림이 입센의 대표작 <유령>을 무대에 올린다. 특히 이번 공연은 주한 노르웨이 대사관과 <인형의 집> 최초 번역자이자 시인이었던 고 박용철씨의 기념사업회가 함께 한다. <유령>의 연출가 임영웅씨(72)를 만나봤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령일지도 몰라요.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낡은 것들. 낡은 관습과 편견. 기억도 나지 않는 추악한 죄. 우린 그런 것들에 눌려 살지요. 아마 온 나라 안에 유령이 가득 살고 있을 거예요. 그 유령들을 확 쓸어버리고 환한 빛을 볼 수 있다면!”

주인공 알빙 부인이 외치는 대사다. 연출가 임영웅씨는 “이 작품에서 ‘유령’은 인간을 옥죄는 사회의 낡은 관습과 편견” 이라며 “입센이 살던 그 시대에 존재하던 유령이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유령>은 <인형의 집>이 나온 지 2년 만에 발표된 작품이다. <인형의 집>에선 주인공 노라가 인습을 타파하기 위해 가정을 박차고 나서지만 <유령>의 알빙 부인은 끝까지 집을 지킨다. 인습과 관습대로 집안에 머문 알빙 부인이 겪는 삶을 통해 관습이 만들어놓은 도덕적 허구성과 위선을 비판한다. 당시로선 금기였던 성병과 간통, 안락사 등이 언급돼 입센의 고국인 노르웨이에선 한동안 상연이 금지되기도 했다.

“현대 연극의 원점을 체홉에서 찾는 것이 정설이지요. 그런데 <유령>을 연습하면서 작품분석을 하다 보니 사실주의극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이야말로 현대사회의 복합적인 면을 파헤친 현대극의 전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주의극이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행한 연극 양식으로 실재하는 객관적 묘사와, 직접적인 관찰, 그리고 경험을 중시한다. 특히 사실주의극은 사회 및 현실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 작품을 연출하는 임영웅씨는 1969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처음 무대에 올린 이래 <위기의 여자>,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연출한 한국 연극계의 거목. 연극계의 야전 사령관, 영원한 청년연출가로 불리는 임씨의 지휘 아래 전무송, 이혜경, 이영석씨 등 실력 있는 중견배우들이 출연한다. 최근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해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미술가로 자리 잡은 박동우씨가 꾸민 무대도 눈여겨 볼만하다. 임씨는 “북구의 많은 가정들이 집안에 온실을 두는데 이 작품에도 온실이 등장한다”며 “온실 밖 유리창에 비 오는 풍경은 우리 극단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성의로 봐 달라”고 말했다.

“최근 들어 우리 연극이 좀 가벼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 번 즐기고 마는 ‘소비적’인 연극이 들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때 일수록 연극이 왜 우리에게 필요한지 돌이켜봐야 해요. 연극은 작품이 지니는 중후한 멋, <유령>과 같이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메시지 등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연출가 임영웅씨는 후배 연극인과 연극 마니아들에게 이렇게 당부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신촌 산울림 소극장에서 5월9일부터 7월2일까지. 문의 02-334-5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