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가 한국에서 열린 소믈리에 대회를 취재한 적이 있었다. 프랑스의 와인 수출을 독려하는 어떤 단체의 후원으로 열린 행사였다. 아직 한국 언론의 와인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이 적은 탓인지 많은 미디어가 오지 않았지만, 수백명의 와인 애호가들과 결선에 진출한 소믈리에의 지인들로 행사장은 제법 후끈거렸다. 

 소믈리에 대회라는 게 세계적으로 많이 열린다. 국가나 지역 정부에서 주최하는 것도 있고, 소믈리에 단체, 심지어 와인 생산회사에서 여는 것도 많다. 어떤 행사이든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열린다. 와인에 대한 지식을 묻는 필답시험이나 구두시험, 와인과 음식의 조화에 관한 지식과 실제 추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라고 해서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마셔보고 이름과 품종, 빈티지 등을 맞히는 시험 등으로 이뤄진다. 특별히 어떤 분야가 중요한지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모두 소믈리에의 중요한 기능에 속한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은 아무래도 블라인드 테이스팅에 모아지곤 한다. 이름도 모르는 와인을 냄새만 맡고 마신 다음 그것을 척척 맞히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이벤트적으로 흥미로운가 말이다.

 한국에서 열린 대회 결선에 참가한 소믈리에(물론 모두 한국인 소믈리에다)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긴장한 대목은 역시 블라인드 테이스팅이었다. 어떤 소믈리에는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여 냄새를 맡고 마셔 보느라 제한 시간을 모두 쓰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대회가 끝나갈 무렵이었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한 인사가 필자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요?”

 “예?”

 “블라인드 테이스팅 결과 결선 참여자 모두가 하나도 맞히지 못했어요. 빵점이에요.”

 그 인사는 ‘도대체 최고 소믈리에를 뽑는 자리에 올라온 사람들이 어떻게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나도 맞히지 못했느냐’는 의구심을 가졌던 것이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 이름에  빈티지까지 맞힌다?

 
소믈리에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은 대개 이 정도다. 어떤 와인을 던져 주든 냄새 맡고 마셔 보면 “음, 이건 1998년산 보르도 ○○지방 ○○샤토에서 만든 와인이군요” 하고 맞힐 걸로 생각한다. 그래서 소믈리에를 번역한 말이 ‘와인 감별사’아니던가. 그러나 소믈리에는 병아리 감별사처럼 와인을 척 보면 수놈인지 암놈인지 맞히는 사람이 아니다. 감별사라는 뭔가 묘한 뉘앙스의 이름으로 번역됐으니 그렇게 오해를 받곤 한다.

 이 해프닝의 결론을 얘기한다면 그들이 빵점을 맞은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소믈리에는 와인 감별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와인 감별사는 와인 생산 지역의 회사나 생산자 조합 따위에 소속돼 그 지역에서 생산된 와인의 질을 따지고, 가격을 매기는 기초를 정해 주는 사람이다. 술이란 발효시키는 물질이므로 품질의 차이가 커서 이런 감별사의 역할이 꼭 필요하다. 하긴 증류주인 위스키 생산 지역에도 위스키 감별사가 있고, 쇠고기도 축산물 감정 평가사가 등급을 매기고 있지 않는가. 

 그러니까 소믈리에와 와인 감별사는 전혀 별개의 직업이다. 그런데 한국에선 아직도 같은 직업으로 오해받고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소믈리에가 겪은 우스운 일도 그래서 일어난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라벨이 없는 와인을 한병 들고 오더니 “이 와인이 어떤 와인인지 맞혀 보라”고 했다는 것이다. 참 당황스러운 상황이었겠다.

 이런 일의 절반 정도의 책임은 언론이 져야 한다. 언론에서 무분별한 기사를 실어 와인 감별사로 오해하게 만들고, 정정하거나 수정해 주는 기사는 없으니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와인 소믈리에란 ‘와인 서비스맨’ 정도다. 일반적인 홀 서빙을 하면서 좀더 전문적으로 와인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지닌 사람을 뜻한다.

 와인 종주국, 그러니까 프랑스와 이탈리아, 독일, 미국 등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소믈리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와인 구매다. 한국처럼 100% 수입되는 와인을 놓고 구매 대상을 선정하는 나라와는 달리 와인을 직접 생산하는 나라에선 구매하기에 따라 적지 않은 폭의 품질 차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다른 구매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고 있는 와인이어서 품질 대비 가격이 좋은 와인을 미리 많이 사들여 판매하면 좋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이 소믈리에다. 또 당장 현금이 급한 생산자를 만나 품질보다 훨씬 싼 값에 대량 구매를 해서 그 식당의 하우스와인으로 판다면 역시 큰 이익을 내는 소믈리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와인 품질과 맛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와인을 수입하는 한국의 소믈리에라면 역시 와인을 적절하게 손님에게 추천하고 서비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특히 음식에 맞는 와인을 추천하는 일은 소믈리에가 가장 잘해야 할 일 중 하나다.

 그 다음으로는 와인을 구매하고 리스트를 짜는 일이다. 물론 순서상 와인을 팔기 전에 미리 하는 일이지만 와인 품질과 가격이 오픈되어 있고, 비교적 고급 와인 중심으로 수입되는 우리 현실에선 와인을 손님에게 추천하고 서비스하는 일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이 일은 와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식견만 있으면 기본적으로 할 수 있다. 가격별, 지역별, 품종별 등의 기준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매하고 리스트를 짠다. 이때 소믈리에들이 ‘착각’하거나 실수하는 일이 많은데, 가장 흔한 것이 ‘와인 숫자를 많이 갖고 싶어 하는 욕심’이다.

 식당이나 와인바를 소개하는 기자들도 실수를 많이 한다. 그저 와인 숫자가 많으면 ‘700종의 국내 최대 와인’ 따위의 글을 쓴다. 이건 엉터리다. 아무런 식견 없이 그저 수입되는 와인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서 식당의 질이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팔리지도 않는 와인을 쌓아 두면 이는 결국 재고 부담, 손님의 부담으로 전가된다. 마구 수입되는 요즘의 와인 수입시장을 보면 심지어 외화 낭비 차원으로까지 보인다. 서울 강남 청담동권의 50석의 고급 식당이라면 40~50종 정도의 개성 있는 와인 리스트를 갖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 팔고 있는 음식과 잘 맞는 와인인지 유의하면서 말이다.

 소믈리에가 엑조틱한 명칭처럼 뭔가 신기하고 별난 일을 하는 듯한 ‘검은 옷을 입은 신비한 사나이’로 비치는 일은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Plus 이 달의 …Wine

 아르마도르 메를로 2004

 아르마도르 카베르네 소비뇽 2003

Armador merlot 2004

Armador Cabernet Sauvignon 2003



 한국에서 소비자가격 4~5만원대의 칠레산 프리미엄급 와인의 판매가 일정 정도 한계에 다다른 가운데 더 싼 값에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아르마도르는 뛰어난 품질과 낮은 가격으로 한차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와인이다. 품격 있는 방향성, 높은 밀도, 긴 피니시까지 결코 최상급 와인에 뒤지지 않는 매력을 보여준다. 특히 메를로는 테루아에서 비롯하는 톡 쏘는 듯한 미네럴의 촉각은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아르마도르(Armador)’란 ‘선주’란 뜻으로, 이 와인 회사의 주인인 노르웨이 사람 오드프옐이 선박회사 사장이라는 데서 딴 이름이다. 칠레의 슈프림 테루아인 마이포 밸리에서 생산된다. 

 카베르네 소비뇽은 의외로 튀지 않으면서 부드럽고 조화로운 맛을 보여주며, 오크 숙성을 통한 바닐라향의 뒤끝이 개운하다. 메를로는 필자 개인적으로는 카베르네 소비뇽보다 더 선호하는데, 균형잡힌 맛은 칠레산으로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3만원.

문의 아간코리아 (02)2203-03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