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와 뉴질랜드는 인접 국가지만 와인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과 맛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고유 품종으로 개성과 맛이 전혀 다른 ‘창조물’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생산 방식, 와이너리의 특성, 주요 품종은 전혀 다르다. 이는 두 나라의 와인 재배 역사와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얘기해서 호주는 메이저 와이너리가 득세하는 자본 중심의 파괴력 있는 생산 스타일이다. 그래서 맛이 분명하고, 가격 조절력이 있으며, 시장의 기호를 선도할 수 있는 높은 인기의 제품이 많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빈(BIN)' 시리즈는 호주의 와인이 얼마나 대중들에게 잘 각인되어 있는가를 보여준다. 프랑스 고급 와인처럼 깊은 타닌, 오크향, 조화로움 같은 덕목을 불과 10달러짜리 와인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대형 와이너리의 기술력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칠레 몬테스 가문처럼 말이다. 그래서 품종도 카베르네 소비뇽, 샤르도네, 쉬라즈 같은 대중성이 강한 품종이 많다.

 반면 뉴질랜드는 소규모 와이너리들이 각자의 개성을 무기로 시장에 파고드는 스타일이다. 호주가 보르도라면, 뉴질랜드는 부르고뉴다. 사용하는 품종도 소비뇽 블랑, 피노 누아같이 대중성이 약한 것들이다.



 좋은 테루아와 뛰어난 생산기술 보유

 호주는 세계 7~8위권의 와인 생산국이다. 자국에서 소비하는 와인보다 수출하는 와인의 양이 더 많다. 재미있는 것은 자국 판매 와인보다 수출품 와인의 질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이다.

 호주 와인이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뛰어난 자연 조건이다. 테루아라고 부르는 이런 조건은 넓고 다양한 포도 재배 산지, 좋은 기후가 한몫했다. 둘째는 생산 기술이다. 호주는 미국이나 칠레 같은 와인 신흥 강국보다 훨씬 늦게 와인 생산을 시작했지만 그 기술은 매우 뛰어나서 함께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수준으로 일찌감치 올라섰다. 셋째는 수출에 대한 통제다. 일정 수준이 되지 못하는 와인은 절대 수출할 수 없다. 법으로 그렇게 정해져 있다. 호주 와인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호주 와인은 초창기 매우 낮은 수준으로 출발했다. 보통의 테이블 와인,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보는 스틸 와인 스타일이 아니라 설탕을 넣거나 향을 가미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연히 프랑스의 고급 와인과 비교할 때 보잘것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1950년대 들어 유명한 와인 메이커 막스 슈버트에 의해 펜폴즈 그레인지가 탄생하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보르도의 특급 와인과 비교해서 손색없는 매우 뛰어난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 현재도 펜폴즈 그레인지의 오래 묵히는 고가 와인은 일종의 컬트적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색한 동거’지만 의외의 풍미 보여줘

 호주 와인은 4개의 거대 기업군 와인이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상대적으로 국제적인 명성도 이런 거대 회사에서 비롯한다. 펜폴즈, 울프 블라스, 린드만, 제이콥스 크릭, 윈담 이스테이트, 솔트람 같은 유명 와인 브랜드들이 모두 이런 회사에 속한다. 다른 브랜드이지만 한 회사 소속인 경우도 많다. 미국 등 해외 자본이 많이 들어온 것도 이색적이다.

 흔히 우리는 호주 와인을 비교적 대중적인 가격의 무난한 와인으로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앞서 말한 펜폴즈 그레인지 와인같은 고가의 와인도 많다. 보르도 특급 와인처럼 향후 10년에서 20년 이상 숙성시켜 마실 수 있는 와인들이다. 한국에 소개된 것은 비교적 적다. 개인적으로 솔트람 넘버원 같은 몇몇 고가 와인들은 보르도 특급 와인과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고, 카베르네 소비뇽과 쉬라즈 품종의 경우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보르도 그랑크뤼 와인들과 에르미타지 와인들을 묶어 블라인드 테이스팅한다면 아주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훨씬 좋은 값에 같거나 비슷한 품질이라면 구태여 구세계의 고가 와인만 찾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흥미로운 예상도 해볼 수 있다.

 호주 와인의 개성은 참으로 다양하지만 아주 독특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구세계 와인 업자들이 한때 ‘어색한 동거’라고 비아냥거렸던 포도 품종의 개성적인 블렌딩이 그것이다. 보르도의 경우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프랑스 남부 지역의 그르나슈와 시라(호주에서 쉬라즈라고 부르는)의 조합이 널리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호주에서는 전혀 독특한 배합을 시도했다. 레드와인의 경우 쉬라즈와 메를로, 카베르네 소비뇽의 블렌딩이며 화이트와인은 세미용과 샤르도네의 블렌딩이 그것이다.

 이런 블렌딩은 ‘호주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대성공을 거두었다. 당신이 와인숍에서 구매하거나 고급 식당에서 시키는 호주 와인의 라벨을 한번 보시라. 상당수가 쉬라즈와 카베르네 소비뇽의 조합일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원산지인 프랑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블렌딩이 호주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사실이 호주 와인의 특질을 명쾌하게 드러내준다. 원래 쉬라즈 품종은 프랑스 남부 산이고 카베르네 소비뇽은 보르도 산이다. 서로 섞을 일도 없고, 섞는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보장할 수 없었다. 쉬라즈나 카베르네 소비뇽 모두 주요 품종으로 다른 품종을 소량 받아들이는 것은 허용하지만, 1 대 1 식으로 합쳤을 때는 좋은 맛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호주에서 쉬라즈와 카베르네 소비뇽이라는 전혀 다른 개성의 품종이 만나 최고의 맛을 이끌어냈다. 쉬라즈의 투박하면서도 진한 풍미, 카베르네 소비뇽의 힘찬 특성이 서로 잘 조화하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한 일인데 말이다.

박찬일 와인칼럼니스트

  • 목록
  • 인쇄
  • 스크랩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