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소, 브라크, 레제, 몬드리안, 칸딘스키, 블라맹크, 바젤리츠, 잭슨 폴락,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백남준, 브루스 나우먼… 20세기를 관통하는 대표 작가 93명의 대표작품 114점이 미술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네덜란드 최고의 현대미술관인 스테델릭 미술관의 대표적인 소장품 71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42점이 함께 전시되는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까지’전은 전시 제목이 말해 주듯이 20세기 미술의 역사를 고스란히 여행하듯 돌아볼 수 있는 전시다.

 전시장은 ‘추상’ ‘표현’, ‘개념’이라는 세 개의 넓은 범주를 기준으로 입체주의, 기하학적 추상, 서정적 추상,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개념미술,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를 관통하는 다양한 미술사적 흐름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게 구성돼 있다.

 전시를 기획한 국립현대미술관의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전시 관람의 핵심 포인트로 “‘혁명’, ‘아방가르드’와 같은, ‘현대미술’을 따라다니는 거창한 수식어들이, 다시 고전이 되고 또 다른 혁명과 만나는 지점들을 확인함으로써 지금껏 한국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었던 ‘현대미술’의 진수를 경험하고 그 원리를 이해하라”고 조언했다. 

 이 말은 즉, “지금 현재 우리 주변의 작가가 만든 작품이 100년 후에는 어떻게 평가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는 이야기다. 피카소가 1924년 테이블 위에 놓인 기타를 그리면서 원근법을 완전히 무시한 채 여러 각도에서 관찰한 대상의 조합을 보여주었을 때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작품은 이해할 수 없는 천재의 광기였다. 1906년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블라맹크가 캔버스 위에 강렬한 원색으로 처바른 풍경화는 ‘야수’ 같은 폭발적 표현력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대상의 재현을 중요시했던 전통 화가들에게는 경시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100여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이들 작품은 전혀 낯설지 않으며 오히려 ‘고전적’으로 느껴진다.

 전시장에는 피카소와 이불이, 블라맹크와 더글러스 고든이 동등한 목소리를 내며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상투적으로 말해, 80억원 보험가액의 작품과 800만원 보험가액의 작품이 함께 걸려 있다는 이야기다. “‘미래의 역사’는 바로 그렇게 써진다”고 김인혜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8월1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문의 (02) 2022-0616

 www.deoksugung.com



Part I  Abstraction 추상



 사진의 발명 이후 르네상스 이래 삼차원의 공간을 이차원적 회화평면 위에 ‘실감나게’ 표현하려던 미술가들의 욕구가 종말을 고한다. 새로운 매체로 등장한 ‘사진’과는 경쟁도 안 될 만큼 ‘재현력’이 뒤떨어지는 회화는 이제 있을 법한 ‘재현’에 목숨 걸기를 그만두고 좀 더 근원적인 실제에 매달리게 된다.

 나뭇가지의 이리저리 얽힌 불규칙한 모양도 지극히 단순한 직선과 곡선으로 환원될 수 있다고 믿었던 몬드리안, 음악과 신학, 정신적인 세계가 점겮콅면의 조형 요소들만으로 ‘그려’질 수 있다고 믿었던 칸딘스키, 대상을 바라보는 어떠한 고정된 시각도 쓸데없다고 냉소할 수 있었던 피카소, 물감 덩어리를 바닥에 뿌리고 흘리는 행위만으로 미국의 자유를 상징했던 잭슨 폴락 등. 그들의 믿음이 20세기 미술에 있어 ‘추상’의 탄생과 유행을 가져 왔다. 회화가 더 이상 ‘보이는 것의 재현’이기를 넘어서자, 무한한 자유의 공간이 펼쳐지게 되었고,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도 다양한 반응의 자유가 허용되었다.



Part II  Expressionism 표현



 원래 ‘Impressionism(인상주의)’에 대한 반항으로 생겨난 ‘Expressionism(표현주의)’은, 객관적인 사물의 관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고, 개인적이고 개성적인 이미지, 행동, 의미, 소리를 작품에 담아 내려 했다.

 반 고흐의 영향으로 독학의 예술가 길을 선택한 블라맹크처럼 ‘야수같다’는 말을 들을지언정 강렬하고 자극적인 색채와 붓질을 마음껏 구사했던 작가나 2차 대전 후 형식주의 미학에 반기를 들며 “회화는 단순히 색과 선의 구성물이 아니다. 그것은 야수, 밤, 비명, 인간이며 그 모든 것이다”고 외쳤던 코브라 그룹의 작가들, 촌스러운 색채와 빠른 붓질로 추상인 듯 구상인 듯 여인의 이미지를 반복해 그렸던 윌럼 드 쿠닝, 그리고 로스코, 거스톤 등 뉴욕 추상표현주의자들, 마지막으로 미니멀리즘의 헤게모니에 도전하면서 회화의 회화성을 끝까지 밀고 나갔던 독일 신표현주의자들(바젤리츠, 뤼페르츠)…. 미술사가들은 이들의 이름 앞에 ‘표현’이라는 수식어를 덧댄다. 이들에게 회화는 언어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를 ‘표현’하는 매개물이다.



Part III  Conceptual Invention 개념



 
20세기 미술사를 통틀어 가장 대단한 소란을 일으켰던 한 명의 작가를 꼽으라면 마르셀 뒤샹이 아닐까? 1917년 ‘R. Mutt’라는 사인을 한 소변기를 버젓이 전시회장에 갖다놓은 뒤샹은 그러한 가볍디 가벼운 유머로 기존 예술의 의미겚穗?역할의 구조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이제 예술은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우아한 형식을 찾아내는 작업이 아니다. 예술의 형식과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능이며 현대 사회를 직시하고 표상하고 조롱하는 ‘개념’이다.

 ‘추상’이 성취했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의 이 새로운 예술적 자유는 1960년대 미국 팝아트의 상품광고를 가능하게 했을 뿐 아니라 심각함과 아이러니가 묘하게 중첩되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도, 브루스 나우먼의 편집증적 극한이나 길버트 앤 조지의 우수에 찬 유머도 모두 예술의 범주에 들여 놓았다. 또한 새로 개업한 가게 앞에 놓이는 헬륨풍선 같은 거대한 꽃(최정화의 작품)이 덕수궁미술관의 석조전 계단 앞에 놓이는 것도 무한히 증식할 것 같은 기계-식물 이미지(이불의 작품)가 대롱대롱 천장에 매달리는 것도 모두 가능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