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도 자도 피곤하다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사람들이 많다. 어디서 들었는지 “만성피로증후군이 아니냐?”라며 묻기도 한다. 괴롭고 걱정 많은 세상, 누군들 피곤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피곤하다면 무엇이 잘못됐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
 유 없이 피곤할 때 가장 먼저 의심해 봐야 할 것은 불면증이나 심한 코골이, 수면무호흡 등 수면장애이다. 잠은 낮 시간의 육체적 피로를 해소하고, 여러 가지 기억들을 저장하는 기능을 한다. 불면증으로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코를 많이 골거나 호흡이 한동안 끊어졌다 이어지거나(수면무호흡증), 수면 중 팔과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떨거나(사지운동증) 하는 등의 수면장애가 있으면 수면의 질이 떨어지므로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 이런 분은 대학병원 등에서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무엇보다 먼저 수면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과로나 심한 육체 운동도 만성피로의 원인이 된다. 내가 근무하는 신문사의 선·후배 동료들은 대부분 매일 밤 12시나 되어야 퇴근을 한다. 운동을 해야 한다며 하루 쉬는 토요일엔 꼭두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하러 나갔다가 오후 늦게나 돼야 집으로 들어간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왜 피곤한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원인이 분명한데도 정작 본인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른다. 이때는 주변에서 무엇인 문제인지 도와줘야 한다.

 아울러 하루에 커피나 녹차를 몇 잔이나 마시는지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카페인은 중추신경 각성 효과가 있어 섭취한 직후 잠깐은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시소 효과’에 불과하다. 시소가 올라갈 땐 잠시 기분이 좋지만 내려올 때는 그렇지 않듯, 카페인 음료도 마실 때는 좋지만, 마시고 난 뒤에는 만성피로를 느낄 수 있다. 카페인은 피 속에 12시간가량 머물면서 교감신경을 각성시켜 필요 이상의 긴장 상태를 조성한다. 이 때문에 숙면도 방해되고, 잠드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려 피로감을 가중시킨다. 현대 직장인이 만성피로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습관적으로 마시는 커피가 꼽힌다.

 또 하나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음주와 흡연이다. 술을 많이 마시면 간, 심장, 뇌에 나쁜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간이 혹사당하므로 만성적인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개인차가 있지만 의학적으로 남자는 하루 3단위, 여자는 하루 2단위 이하의 술을 일주일에 5회 이하로 마시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을 마시면 만성피로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1단위는 맥주 250㎖, 와인 100㎖, 소주 40㎖, 위스키 25㎖ 정도를 일컫는다. 인체의 산소 공급을 감소시키는 흡연도 만성피로를 유발한다.

 그 밖에 케이크 등 고당분 식사는 식후에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혈당을 떨어뜨리게 되고, 이 과정에서 피로감과 언짢음 등을 유발하므로 너무 달지 않게 먹도록 식습관을 바꿔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생활습관상의 문제가 아닌데도 만성적으로 피곤하다면 몸속에 병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때는 가장 흔하거나 중요한 원인부터 하나하나씩 되짚어 나갈 필요가 있다.

 먼저 피로감과 함께 평소 호흡이 가쁘거나, 어지럽거나, 피부가 창백하면 빈혈을 의심해 봐야 한다. 특히 다이어트를 하거나 생리양이 많은 여성들은 빈혈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가까운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아 보면 빈혈 여부를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예전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거나, 피부가 더 건조하고 거칠어졌거나, 모발이 가늘어진 경우엔 갑상선 기능 저하증으로 인한 피로일 가능성이 있다.  특히 여성들에게 많이 발생하며, 이 경우 내과에서 갑상선 기능 검사를 받아야 한다.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도 지난 10주 동안 체중이 4kg 이상 줄고, 소변을 보는 빈도가 증가하고, 갈증이나 눈이 침침한 증상이 나타났으면 당뇨병일 가능성이 있다. 빨리 혈액검사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빈뇨, 갈증 등의 증상 없이 체중이 감소했으면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나 암일 가능성에 관해서도 확인해 봐야 한다.

 갑상선 기능에도 문제가 없고, 빈혈도, 당뇨도, 암도 아닌데 피곤하면 정신과적 문제를 의심해 봐야 한다. 왠지 모르게 사는 게 재미없게 느껴지고, 자신감이 없어지며, 집중력이나 결단력이 떨어지고, 성적 흥미가 떨어진다면, 우선 우울증을 의심하고 정신과 진단을 받아 봐야 한다. 만성피로와 함께 이유 없는 두통, 복통, 체중변화 등이 동반되는 경우도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그 밖에 의사의 처방 또는 비처방 약을 복용하고 있으면 약 때문에 생긴 피로감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고혈압 약 등은 피로감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이때는 주치의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한편 만성피로증후군은 아무런 신체적 또는 정신적 원인 없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피로감이 지속되는 희귀한 질병이다. 의학계에선 스트레스와 환경오염 때문에 인체 면역계에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바이러스 감염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대부분의 피로와는 질적으로 다른 피로이기 때문에 만성피로증후군에 대해선 그다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