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국민작가이자 20세기 최고의 단편소설가 중의 한명으로 꼽히는 마르셀 에메의 소설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로 한국에 첫 선을 보인다. 이미 프랑스, 일본, 미국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수작으로 작곡가 미셸 르그랑의 음악적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지난 2월7일 충무아트홀에서 열린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제작발표회는 기자들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주인공 듀티율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엄기준씨(30)를 만났다.

 <카르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헤드윅> 등에서 열연했던 배우 엄기준씨는 “이번 공연을 통해 인생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며 그 중에서도 인생을 살면서 만나게 되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몽마르뜨 언덕의 사랑예찬이라는 부제에서도 드러나듯,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2차 세계 대전 후인 1940년대의 프랑스 몽마르뜨를 배경으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기발한 상상을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전후 프랑스의 세태와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면서도 시종일관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고 관객을 흡입하는 이 작품은 한폭의 파스텔화를 보는 듯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렇지만 가슴 깊이 진한 감동을 전해주는 뮤지컬이다.

 국내 초연인 <벽을 뚫는 남자>는 우렁찬 아리아가 있는 <오페라의 유령>이나, <지킬 앤 하이드>와 같은 브로드웨이 뮤지컬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이번 공연은 오페레타 뮤지컬로 대사 없이 극의 모든 내용을 노래로 풀어가기 때문에 음악적으로 대단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많은 노래를 소화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어요. 특히 듀티율은 거의 모든 장면에 나오기 때문에 더했지요. 어느 오페라도 이렇게 노래가 많지는 않을 겁니다.”

 이 뮤지컬은 우체국의 평범한 직원 듀티율이 어느 날 벽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신통한 능력을 얻게 되는 데서 시작한다. 이로 인해 듀티율은 의적(?)이 되기도 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벽에 갇히고 만다.

 엄씨는 같은 배역에 함께 캐스팅된 선배 박상원씨와는 다른 코믹한 듀티율을 만들겠다고 한다.

 <벽을 뚫는 남자>는 12명의 배우가 23명의 캐릭터를 연기한다. 한 배우가 1인 3역까지 다채로운 연기 변신을 하는데, 변신자체가 관객이 쉽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러워 이를 찾는 재미도 더한다.

 ‘표를 몰고 다니는 흥행 배우’라는 타이틀을 만든 차세대 배우 엄씨의 활약이 기대된다. 2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문의 3485-8740



 해금연주가 ‘강은일’

 “해금을 전통에서 ‘해금’시켰죠”



 서울 정동극장이 전통과 현대의 공존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한 <아트 프론티어> 시리즈. 김용우씨, 정수년씨에 이어 이번에는 해금연주가 강은일씨가 무대에 오른다.

 그 만의 끼와 재능으로 국악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가고 있는 강은일씨(38)를 만나봤다.  이홍표 인턴기자 hawlling@hotmail.com



 2월의 어느 저녁. 눈길을 헤치고 들어선 지하연습실 안에서 음악소리가 흘러나온다. 기타와 건반이 잔잔한 수막(水膜)을 만들면, 가야금과 태평소가 작은 파문(波紋)을 일으킨다. 그 물결 위로 무언가가 툭 차고 오른다. 해금소리다. 마에스트로 강은일씨의 해금소리다.

 그가 음악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해금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국악계 안에서 조차 매우 적었다. 악기 구성상 조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국악고등학교에 다니던 소녀 강은일은 작고 여려 보이는 해금이 왠지 자신의 처지와 같다고 생각했단다. 그리고 그는 해금에게 말을 걸었다. 보잘것없는 우리 둘이 한번 세상을 놀래켜 보자고, 소리 한번 만들어 보자고. 그 후 해금과 함께한 20년의 세월에 대한 작은 보상일까. 2004년부터 그는 굵직굵직한 상들을 손에 쥐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국회 대중문화 & 미디어 대상(2004), KBS 국악대상 관악상(2004),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2005) 등이 그것이다.

 “해금으로 지금 이곳의 내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음악의 역할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 있다면, 강씨는 그의 해금을 통해 보다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그가 생각하는 해금은 표현할 수 있는 색깔과 모습이 국악기중 가장 다양하다. 조옮김이 쉽고 표현력, 흡수력도 강하다. 음색도 현대음악과 잘 맞는다. 그래서 그는 해금을 ‘전통’에 가두는 것을 거부했다. 그래서인지 평론가들은 그에게 ‘퓨전’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강씨의 스승으로는 사물놀이 원년 멤버 고 김용배씨, 한국 타악기의 대가인 고 김대환씨,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씨, 그리고 이건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이다. 또 루치아노 파바로티, 바비 맥퍼린, 조수미씨, 김기덕 감독 등은 해금으로 교감을 나눈 친구들이다. 물론 가장 든든한 친구는 그의 음악에 빠져 국악공부를 시작한 남편이다.

  정동극장에서 3일간 각기 다른 주제의 공연을 기획한다고 했을 땐 무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가 언제는 앞뒤 재가면서 음악을 했던가. 그는 이번 공연에서 정악, 퓨전, 프리스타일 모두를 아우른다.

 첫째 날은 강씨의 음악적 뿌리가 되는 도르리, 산조 등의 기품 있는 전통국악을 선보인다. 둘째 날은 그를 세상에 알린 퓨전 스타일의 음악을 다양한 편곡으로 들려준다. 이날은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들을 골랐다. 공연의 마지막 날은 그녀의 지향점인 프리뮤직으로 장식한다. 서양의 재즈와 조상들의 시나위처럼 악보 없이 동료들과 음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간 그가 걸어온 모든 시도들을 모은 이번 연주회는 객원연주자의 면모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한국음악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문의 02-751-1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