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우보이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미국 남부의 자존심

작열하는 태양 아래 끝없이 펼쳐지는 메마른 황무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건조한 기후와 가끔씩 마른하늘에서 내리치는 천둥과 번개의 위협….

미국 텍사스를 이야기할 땐 영락없는 서부영화의 배경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가장 텍사스다운 도시로 꼽히는 달라스는 미식축구팀의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카우보이의 역사’로 불리며 미국 남부의 자존심을 지켜가고 있는 도시다. 그러나 요절한 할리우드의 영화배우 제임스딘이 출연한 영화 <자이언트>의 무대가 달라스였다면 아는 척 하는 이들이 더 많은 도시다. 반면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병참기지였다는 것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과거 달라스의 성장을 이끌었던 주요 산업은 목축과 목화 산업이었다. 카우보이의 역사라는 닉네임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이후 1900년대 들어 인구가 급증한 한편 1930년대 텍사스 개발 사업에서 유전이 발견되면서 본격 적인 남부 지역의 경제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달라스 다운타운의 관문으로, 다운타운 부지의 4분의1을 차지하는 내셔널 역사보존지역인 웨스트엔드(West End)에 가면 시간을 거슬러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20여 블록에 운치 있게 보존되고 재현된 600여 개의 역사적인 건물들과 다양한 문화행사 등을 통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1922년 석유 채굴 관련 장비 공급업체 건물과 1900년도 초기에 이 지역이 미국 중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 지역이었음을 증명하는 텍사스 얼음회사(Texas Ice Co.) 건물은 관광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러나 지금 달라스는 최첨단 산업 중심 도시로 변모해 있다. 특히 적은 세금 등으로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사업하기 가장 좋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일까.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세계 100대 기업 중 17개 기업의 본사가 달라스에 포진해 있다. 석유, 항공, 보험, 반도체, 통신 등의 미래 산업이 집중해 있다. 이들 산업의 발전으로 달라스는 비즈니스 관련 회의, 리셉션 등으로 성수기·비수기가 따로 없을 만큼 호텔 예약이 초만원을 이룬다. 지난 수년 동안, 다운타운에 대한 강력한 재투자 등 다양한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 달라스 지방정부의 확장 정책은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전망을 가능하게 한 경제 핵심 도시의 이미지를 강화해 가고 있는 달라스에도 암울한 역사가 함께 하고 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최대 자원이기도 한 ‘저주의 도시’라는 오명이 그것이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바로 달라스에서 암살됐기 때문이다.

달라스를 찾는 이들이 결코 빼놓지 않는 곳은 웨스트 엔드에 위치해 있는 존 F. 케네디 메모리얼 광장과 식스플로어 박물관(Sixth Floor Museum)이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당한 장소와 암살범 리 하비오스왈드(Lee Harvey Oswald)가 총을 쏜 건물이다.

존 F. 케네디 메모리얼 광장에는 시민의 기부금으로 세운 케네디 기념비와 달라스가 거점도시로 발전하게 된 계기를 제공한 남부 최초의 교역소인 존 닐리 브라이언의 오두막이 있다. 이곳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식스 플로어 박물관에는 오스왈드가 케네디 대통령을 저격했던 당시의 6층 현장이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다양한 유물과 추모 물품들도 눈길을 끈다. 암살 현장 사진과 이를 촬영한 구식 카메라를 모두 모아 전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미국의 도시들을 돌아보고 나면 언제나 스치는 아쉬움을 어쩔 수 없다. 불행한 역사도 보존하려는 그들과 달리 왜 우리는 모든 것을 허물기만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