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 나이에 창업해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은 회사로 키워 낸 이가 있다. 올해로 72세인 그는 말한다. “도전 앞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나이 잊은 이범형 사장의 도전인생을 따라가 본다.

 61세 창업해 세계 최고 기술 가진 벤처기업 키워 낸

 이범형 백산OPC 사장



 북 진천에 위치한 백산OPC는 프린터와 복사기에 들어가는 드럼을 생산하는 업체다. 드럼은 활자나 영상, 그래픽 신호를 입력받아, 이를 종이 등에 잉크로 나타나게 해 우리가 인쇄 결과물로 보게 되는 것이다. 표면에 특수코팅을 한 30센티미터 가량의 둥근 알루미늄 봉. 언뜻 보면 별다른 제작공정이 없을 듯한 제품이다. 그러나 이 제품은 고도의 기술력과 막대한 설비 투자를 겸비해야만 생산이 가능하다. 백산OPC는 프린트용 드럼시장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2위, 생산성은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지난해 514억원의 매출에 113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고, 올해도 660억원의 매출 신장을 기대하는 백산OPC의 나이는 고작 12살. 창업자 이범형(72) 사장이 61세 되던 해 창업한 회사다.

 “(주변에서) 다들 말렸죠. 자식 다 키웠겠다, 노후를 걱정 없이 보낼 정도는 마련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들 말렸어요. 하지만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꼭 내 손으로 이루고 싶었죠. ‘좋은 회사 하나 만들어 나라에 보탬이 되게 하겠다’는 거였어요.”

 이 사장은 한국전쟁 때 육군 소위로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나이 마흔에 중령으로 예편할 때까지 군대에 청춘을 바쳤다. 이후 방위산업체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총포를 만드는 일에 15년, 알루미늄 제조업체에서 ‘월급 사장’으로 5년 동안 일했다. 그리고 61세 되던 해 은퇴를 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한 인생이다. 그러나 그는 편한 노후생활 대신 창업을 택했다.

 “제조업체 사장으로 일하고 있을 때, 인쇄용 드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알루미늄으로 된 봉으로 만드는데, 아직 한국에는 제조업체가 없으니까 시작하면 돈을 번다는 얘기였죠. 방위산업체에서부터 알루미늄을 접했기 때문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무렵 프린트용 드럼시장은 일본이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국내에는 이렇다 할 제조업체는 물론 수입업체도 없는 형편이라 이 사장은 혼자 일본을 오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한편, 일본어 공부도 시작했다. 핵심기술인 알루미늄 봉 제조 기술은 자신이 있었다. 코팅기술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노력하면 안 될 것도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1994년 방위산업체 근무 때부터 20년 넘게 고락을 함께 해온 엔지니어 두 사람과 함께 충북 진천에 작은 공장을 세웠다. 이 사장은 “마치 영화 <마지막 보이스카우트>의 한 장면과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웃었다.

 표면에 아주 미세한 흠도 없으면서도 단단한 알루미늄 합금을 만들어 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정교한 무기를 만들던 기술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수 코팅액을 알루미늄에 입히는 작업이었다. 조금의 오차도 없어야 할 뿐더러 장시간 사용해도 코팅에 흠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  일본에서는 기술 유출을 우려해 기술제휴 등의 제안에 콧바람만 날릴 뿐이었다. 코팅액에 대한 공부부터 모든 걸 독학으로 해결해야 했다.

 “돈이 숭숭 빠져나갔죠. 지니고 있던 예금, 노후용으로 준비한 상가 건물 두 채를 날렸고, 집도 저당잡혔어요. 뿐만 아니라 동생들 집도 전부 은행에 넣었고, 심지어 처갓집도 은행에 저당을 잡혀 돈을 마련할 정도였어요.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1년 안에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일껏 제대로 된 샘플을 뽑아 내도 생산라인에 걸면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질 않았어요. 지금은 모두 재생해 쓸 수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쌓았지만, 당시만 해도 전량 폐기를 했으니 밑 빠진 독이나 다름없었죠.”

 사업을 시작한 지 3년 되던 1996년, 이 사장은 마침내 문제없는 제품을 양산할 수 있는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그러나 회사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었다. 이 사장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모두 바닥난 상태였다.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던 그 무렵, 이 사장은 뇌경색으로 6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쓰러지기도 했다. 집까지 은행에 저당잡혀 가며 이 사장을 돕던 가족들 입에서조차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그만 두라’는 애원이 터져 나왔다. 사면초가의 순간이었다.

 “백방으로 도움을 얻으러 다니던 끝에 군에서 함께 근무했던 백산의 김상화 회장을 만나게 됐어요. 저간의 사정을 듣고 나더니 선뜻 ‘함께 해보자’고 하더군요. 천군만마를 얻었던 거예요.”

 회사명도 백산OPC로 바꾸고, 설비도 증설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장에 나가 판로 찾는 일만 남았다. 따로 마케팅 직원을 둘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았던 이 사장은 샘플을 싸 들고 각종 컴퓨터 주변기기 전시회는 물론, 구매자를 찾아 전 세계를 헤매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세계의 벽은 높았다.

 “가방을 세네 개씩 들고 미국이며 일본, 유럽에 우리 제품을 알리러 나갔어요. 전시회에 자체 부스도 마련해 놓고 우리 제품 홍보를 했죠. 그렇지만 난데없이 한국이란 조그만 나라에서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프린터용 드럼을 들고 나와 팔겠다고 하니 누가 믿어 줘야 말이죠. ‘샘플 테스트만이라도 해달라’고 했지만, ‘이미 일본의 기존 메이커 제품에 만족하고 있는 데다 테스트 비용이 적잖게 들어 곤란하다’는 답변뿐이었어요.”

 이 사장은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일단 제품 테스트만 받으면 충분히 승산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한번 거절한 회사를 두 번, 세 번 질릴 때까지 찾아다녔다. 1년 동안 수십 차례 미국을 드나든 끝에 마침내 미국의 바이어로부터 연락이 왔다. “5만개 분량을 만들 수 있겠느냐”는 구매요청이었다. 당시를 이 사장은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큰 기쁨과 성취감을 느꼈던 순간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이후 백산OPC는 매년 100% 이상의 매출과 순익 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시장을 빠르게 점유해 나가기 시작했고, 프린터용 드럼기술의 세계 최고를 자부하던 일본시장에서도 1위에 오르기에 이르렀다. 자존심 센 일본인들도 기술과 품질로 무장한 백산OPC의 드럼을 자국산 대신 채택하기에 이른 것이다. 창업한 이후 5년간 공장 옆의 작은 컨테이너에서 전기장판 한 장 달랑 깔고 먹고 자면서 제품 생산과 판로 개척에 매달린 끝에 올린 개가였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자랑할 만한 회사를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사업을 시작할 땐 그저 막연히 좋은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삼성전자와 유한양행의 장점을 취합한 그런 회사를 만드는 구체적인 꿈을 갖게 되었어요.”

 이 사장이 뒤늦게 본 막내아들이 현재 백산OPC의 미국 법인에서 말단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영권에 대한 이 사장의 생각은 단호하다. ‘능력을 안팎에서 검증받은 사람만이 회사 경영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식이라고 해도 능력이 안 되면 결코 회사를 물려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이 사장은 못 박았다.

 “제 나이 일흔을 넘겼지만 스스로 52세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누가 칠순 노인 취급하면 억울해요. 아직도 1년에 100일 이상을 해외출장을 다니고, 매일 아침 6시에 회사에 출근해 영어공부하고, 회사 업무를 봅니다. 나이요? 그거 진짜 숫자에 불과합니다. 세계적인 기업주를 봐도 팔십세 넘어서도 정력적으로 일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아요?”

 주말을 제외한 주5일을 이 사장은 진천공장 옆에 지은 직원용 숙소에서 생활한다.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간단한 맨손체조와 걷기 등 운동을 한 뒤 영어공부를 한다. 이 사장은 책상 위에는 비즈니스 레터 작성 예문을 복사한 복사용지가 한 뭉치 들어 보이며, “얼마 전에 이 예문을 모두 외웠다”고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직접 운전을 하던 이 사장은 서울 집을 오가는 것을 염려한 가족들의 원성 때문에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운전기사를 고용했다.

“내가 실제 이 나이가 되어 보니 옛날 어르신들을 보던 것하고는 세상이 너무 달라졌어요. 실제로 주변의 제 또래들을 보더라도 모두 건강하고, 의욕이 넘칩니다.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일구고 싶기 때문에 이제 저도 일하고 싶고, 경험과 능력을 갖춘 노인들이 있다면 기꺼이 채용을 할 계획입니다.”

 이 사장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왕성하다. 현재 660억원 정도에 달하는 매출을 2~3년 안에 1000억원대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자면 세계시장 점유율을 1위로 올려야 한다. 이 사장은 자신감에 넘친다. “10년 전, 조그만 공장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는데, 고작 2% 차이에 불과한 점유율 1위를 못 넘겠느냐”고 했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세상에 나와 세상을 경영한 강태공의 고사가 단순히 고전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님을 이 사장은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