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와인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 가면서 최근 들어 뜨고 있는 것이 와인여행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로 미국에서는 와인여행을 소재로 한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를 방영하면서 와인을 만드는 포도품종인 피노누아(Pinot Noir)가 날개 달린 듯 판매가 되고, 와이너리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신혼부부들도 쉽게 발견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한 한국의 음주문화도 점차로 와인문화로 자리바꿈해 가는 걸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냥 마시고 취하기보다는 음미하고 즐기면서 건강까지 고려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인을 즐겨 마시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성이 있는 샤토(Chateau=성이 있는 포도밭)의 여행을 가장 경험하고 싶어한다. 좋아하는 와인을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보고, 그 포도를 맛보기도 하며, 또한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한다. 포도밭 위에 서 있는 성의 귀족적인 아름다운 자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실제로 그 안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것만큼 설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하는 걸로 이미 명성이 높은 프랑스의 보르도(Bordeaux)는 그 중 가장 많이 가고 싶어하는 와인산지로 손꼽힌다. 그곳에서는 최고의 와인과 성주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다면 성주와 함께하는 촛불 아래 저녁 만찬도 가능하다. 바쁜 수확철에는 방문객이 성가실 수 있으니, 수확 이후인 늦가을부터 새봄이 오기까지를 택하는 게 좋다. 그 시기는 여유로운 휴식의 시간이며, 각종 다양한 와인시음이라든가 축제를 자주 볼 수 있다. 이미 수확이 끝난 황금빛 포도밭은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른 가을하늘 아래 아름답게 빛난다. 새들을 위해 남겨둔 몇몇 포도송이들이 까맣게 익어 매달려 있고, 갈색 포도잎은 낙엽이 되어 땅을 덮는다. 와이너리에서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지하동굴 셀러에 잠자고 있는 와인들이 그득하다. 그런 와인의 고장인 보르도로 떠나는 와인여행은 지금부터가 가장 좋을 듯하다.

 보르도는 프랑스 파리의 챨스드골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로 약 1시간20분 정도 걸린다. 보르도 시내는 우리나라 광주시보다 약간 작은데, 위성도시를 포함한 보르도 와인산지 전체를 보면 보르도의 북쪽 끝단에서 남쪽 끝단까지 자동차로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2000여년의 와인 역사와 함께 보르도 와인이 지닌 그 특유의 우수성을 물어보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테루아(Terrior)’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얘기를 한다. 테루아란 각 지역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토양, 완벽한 기후, 태양, 그리고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노하우(Know how)의 절묘한 조화의 결과를 모두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보르도는 이런 테루아가 우수한 지역이다.  아틀란틱 해양의 영향을 받고 있는 보르도는 약 400만년 전에는 바다 속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땅을 파면 한 번씩은 조개껍질을 채취할 수 있다고 한다. 보르도 시내에 위치한 17~18세기에 만들어진 수도원 교회 건축물을 살펴보면, 조개껍질이 있는 토양으로 벽을 만들었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보르도의 와인 총 생산량 중 레드와인이 80%를 차지하는데, 이 레드와인은 항상 여러 품종을 함께 섞어 만든다. 두 가지에서 다섯 가지 품종까지 혼합하게 되는데, 주로 사용하는 품종은 카베르네쇼비뇽(Cabernet Sauvignon), 카베르네프랑(Cabernet Franc), 메를로(Merlot), 프티베르도(Petit Verdot), 말벡(Malbec)이다. 카베르네쇼비뇽과 메를로가 주요 포도품종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말벡의 사용률은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사실 이 품종은 이제 아르헨티나에서 오히려 더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가론(Gironde) 강을 중심으로 좌측에 있는 지역을 좌안(Left Bank)이라 부르는데, 주로 메독(Medoc)과 페삭레오냥(Pessac-Leognan) 지역이 속한다. 이곳 와인은 블랙커런트의 향과 맛이 주를 이루면서도 타닌(Tannin : 와인의 떫은 맛)이 강하다. 또한 이곳은 토양, 담배, 과일 등 2차 아로마가 나오는 게 특징이다. 보르도의 우안(Right Bank)이라 불리는 생테밀리옹(Saint-Emilion)과 포므롤(Pomerol)에는 모래와 라임스톤(석회암)이 많은데, 메를로 품종이 우수해 많이 재배한다. 와인 초보자들에게 훨씬 더 좋은 반응을 얻는 지역 와인들은 비교적 강하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타닌을 자랑한다.

 보르도에는 와인 외에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다. 메독 지방의 마고(Margaux)는 섬세하고도 우아한 고급 와인을 많이 생산하는 곳으로 더 알려져 있지만, 마고 호텔에서는 골프를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해 놓았다. 호텔 객실은 20개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4성급의 디럭스 호텔이며 골프장과 스파(Spa)를 함께 운영한다. 메독 지방 남쪽 아래로 20~30분 정도 더 내려가면 페삭레오냥이 나온다. 이곳에는 보로에서 유일한 와인 스파로 알려진 코달리(Caudalie)샘이 있는데, 매우 잘 알려진 특급와인을 만드는 샤토 스미스 오 라피트(Chateau Smith Haut Lafite)가 직접 운영한다. 보르도에서 유일한 이곳은 숙박까지 가능하며 자체 특허를 낸 비노테라피(Vino Theraphy)라는 공법을 이용한 피부마사지와 몸매관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곳에서 만든 코달리라는 고급 화장품도 전 세계로 수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한다. 경관이 좋아 주변에서 승마하는 사람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아성 위협하는 신대륙 와인

 보르도의 중심을 가로지른 가론 강 너머에 위치한 생테밀리용 시는 마을 전체가 역사의 도시와도 같다. 이 지역은 199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생테밀리용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아름다운 마을은 상업적으로 잘 발달된 메독 지방의 거대한 기업형 샤토들과는 달리 와인과의 일을 운명이라 여기면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가족 소유 샤토들이 많은 편이다. 메독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골프나 스파보다는 오히려 기독교문화의 역사적인 자취를 볼 수 있으며, 아담한 크기의 별미 레스토랑도 둘러볼 수 있는 이곳이 훨씬 매력적이다. 사실, 8세기경 보르도의 와인이 처음 도입되었던 곳도 바로 이 생테밀리용 지역으로, 와인문화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프랑스를 포함해 전 세계적으로 와이너리의 수가 증가하고 있지만, 칠레와 같은 신대륙 와인산지에서 가격 대비 우수한 품질과 저돌적인 마케팅으로 보르도의 와인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총량이 약 6억병 정도인데, 그 중 보르도는 프랑스 와인의 전체 생산량의 10%를 차지한다. 총 생산량의 70%가 자국에서 소비가 되는데도 그 숫자가 줄어드는 추세다.

 보르도와인협회(CIVB) 회장인 크리스티앙 델프(Christian Delpeuch, 58)씨에 따르면, 보르도 와인에 대한 구조조정이 조심스럽게 진행되고 있는데, 보르도 전체 생산량 중 8% 정도를 줄여 와인의 품질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다고 한다. 실제로 보르도 와인은 지난 30년 만에 40% 증가하였다. 와이너리의 경우 생산량이 와이너리 증가율보다는 높았던 반면, 2000년부터는 와이너리의 수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프랑스 내의 와인 소비량은 줄어들면서 2000년을 기점으로 생산량과 소비량의 교차점에 마주치면서 하강세를 달리고 있다. 이에 보르도협회 측은 수요에 맞는 생산량을 맞추는 것이 주요한 과제이며, 일반 보르도 AOC(보르도 와인 품질 등급체계) 와인들은 높은 품질과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르도 수페리어(Bordeaux Superiore) 와인들은 세계시장의 경쟁력에 맞추기 위해 좀더 이해하기 쉽고, 마시기 편한 와인을 만들어 내면서 와인 품질과 스타일에서 개혁을 일으키고 있다.

 여전히 보르도의 특급 와인들의 인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이들 특급 와인들은 포도주가 익어가는 중에 이미 네고시앙(Negotian : 와인중개상)에게 모두 팔려 버린다. 이는 프랑스만이 자랑하는 2000년이 넘는 프랑스의 와인 역사에 따른 전통성과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장인정신, 그리고 그들만의 자존심으로 만들어 낸 결과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