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다 가을이 오면 미술 시간에 그리고, 또 그리는 것 중에 하나가 과일이 있는 정물이다. 미술에 관심이 있든 없든 미술교육을 10여년을 받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과일이 있는 정물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학교 미술시간에 충실하게(?)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교육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과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왜 우리는 사과를 그려야만 했을까?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 과일로 사과가 꼽히기도 하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에 미술 선생님께서 그림 모델에 대한 선택을 부담 없이 한 이유가 우선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건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 사과에서부터 시작된 까닭이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가 셋 있는데, 첫째가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가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다”라고 한다.

 미술사상 중요한 세잔의 사과는 과일을 그렸다기보다는 세잔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평범한 과일 통해 그가 찾고자 했던 건 화가로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다. 그에게 사과는 성취할 수 있는 도구이면서 진실한 우정을 상징한다.

 세잔과 작가 에밀 졸라와의 우정은 사과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들은 어린 시절 같은 학교를 다녔다. 지금 같으면 동급생들에게 왕따를 당할 만큼 병약한 졸라를 키가 크고 힘이 센 세잔이 친구들로부터 보호해 준 것이다. 고마움에 졸라는 세잔에게 사과 하나를 선물한다. 그들에게 사과는 사랑과 우정의 표시였다. 세잔이 말년에 졸라에게 사과를 선물받고 숭고한 우정이 더욱 굳건해졌다고 회상했던 것처럼, 사과는 세잔의 인생과 인연이 아주 깊다.

 세잔은 사과를 그리면서 자신의 성취욕구와 우정을 느꼈다. 그러나 평범한 우리는 사과를 그리며 우정을 느꼈다기보다는 사과를 손으로 쪼갤 수 있는가 하는 내기걸기를 더 즐겼고, 미술시간에 모델을 열심히 그리는 일보다는 빨리 그리고 나서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 하는 데 더 관심을 쏟았다.  그건 그림 모델인 사과를 미술 수업시간에 떨어지는 보너스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