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맛난 음식점은 수없이 많다. 산해진미의 재료와 장인 정신이 깃든 자신만의 요리 노하우로 우리의 입맛을 녹이는 맛집 행렬은 사실 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맛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이 오가는 장사이기 마련이어서 어느 정도 완숙의 경지에 오르면 그 끝이 늘 한결같지는 않다. 그래서 요즘 나는 선후배를 만나거나 중요한 자리가 있으면 맛도 좋지만 

 그 중에서도 분위기가 좋은 집을 우선적으로 찾아다니곤 한다.

 단언컨대 분위기도 맛이다. 어찌 보면 맛난 것을 탐하는 것보다 더 고상한 취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경기가 어려워지고 주머니 사정도 썩 좋지 않을 때 훈훈하게 손님을 반겨 주는 조그만 선술집은 다행 정도가 아니라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가뭄에 단비 같은 여유를 안겨 주기 때문이다. 이태원의 ‘풍월’, 대학로의 ‘알바이신’, 그리고 홍대 입구의 ‘곱창전골’은 모두 이런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선술집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곳의 주인장은 모두 요리를 취미로 하고 있는 예술가라는 점도 내 발길을 끊지 못하게 하는 마력으로 작용한다.





음악으로 맛을 채운 공간

홍대 입구 곱창전골



 곱창전골(02-3143-2284)엔 곱창이 없다. 다만 흘러간 시간을 추억하게 하는 잘 달군(?) LP판에 얹힌 노래들만이 있을 뿐이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홍대 곱창전골은 건축과 영화 쪽 사람들이 특히 많이 찾는 가요 전문 선술집이다.

 이 조그만 가요 전문 선술집의 주인장은 정원용씨(35)로, 인터넷 방송국에서 DJ를 하면서 틈틈이 모아 온 가요 LP 5000여 장이 선술집 곳곳을 꽉 메우고 있다. 웬만한 가요는 거의 다 있다고 보면 될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이 집의 최대 장점이다. 물론 음악 신청은 기본. 거기에 LP로 듣는 정겨움까지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산울림, 한대수, He 6, 정태춘, 신중현씨의 음악들을 들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노라면 잔잔한 감동마저 밀려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곱창전골이란 간판은 밤이 돼도 불이 켜지지 않는다. 거기엔 다 이유가 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그 집엔 술이 있다’라는 이름으로 장사를 했던 조그만 주점의 단골들과 이사 후 새로이 알게 된 단골들에게 먼저 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찾는 손님들보다는 음악을 좋아하고 언제든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단골손님들에 대한 배려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실내 인테리어 역시 사장님이 손수 황학동에서 한 개, 두 개 집어와 직접 꾸민 작품이다. 뭔가 잘 어울리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서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은 추억이라는 코드가 만들어낸 정서적 풍경에 기인해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곱창전골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날아간 듯한 분위기를 곧잘 연출하곤 한다.

 음식은 선술집인 만큼 거창한 메뉴는 없지만 계란탕과 날치알 세트, 그리고 꽁치김치찌개가 안주로 먹기에 부담 없고 좋다. 막걸리 한 잔에 고향 친구들과 듣는 김정호의 노랫가락은 훈훈함이 많이 사라진 요즘에 진정한 흙냄새가 뭔지를 생각나게 하는 힘이 있었다. 곱창전골에 곱창은 없지만 노래와 추억은 오늘도 진하게 남아 있다.



사케 한 잔에 모두 친구가 된다

이태원 풍월




 남산에서 내려와 이태원 입구로 들어서다 보면 제일기획 못 미쳐 오른쪽 골목에 앙증맞게 자리한 일본식 선술집 이자카야 풍월(02-794-0078)을 만날 수 있다. 선술집과는 영 거리가 먼 반도체 기계를 만들던 사토 에이지가 한국에 들어와서 음식점을 차린 것은 운명이었다. 사업 때문에 한국에 출장 올 기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일식집에 들러서 일본 음식을 먹고자 했지만 일본의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음식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던 것. 그래서 할 수 없이 집에서 손수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주위 친구들을 불러 대접하곤 했는데, 그 맛을 경험한 친구들이 음식점을 차려도 되겠다며 적극 추천해서 사업을 아들에게 넘겨주고 풍월의 주인장이 됐다.

 풍월은 1층과 2층으로 구분돼 있다. 1층은 손님들이 주로 식사를 하는 메인 홀이고, 2층에는 사토 에이지가 음식을 개발하고 요리 재료들을 정성스럽게 보관하는 창고가 있다. 내가 찾아갔을 때 그는 직접 자루우동 면을 뽑고 있었는데, 하루에 8그릇 정도만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한다고 한다. 시원한 국물에 쫄깃한 면을 담아내는,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을 주는 자루우동은 일찍 서둘러야 맛볼 수 있는 인기 메뉴다.

 풍월에는 조그만 선술집이 가지고 있는 단촐하면서도 맛있는 분위기가 흠뻑 배어 있다. 칸칸이 들어찬 정종병들 하며, 오밀조밀하게 설계된 테이블들 위에 주인장이 직접 장을 보고 맛있다고 판단되는 메뉴만 올라오는 식탁은 여유로움 자체이다. 특히 추천할 만한 음식은 먼저 오늘의 메뉴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아지다다키’라고 하는 전갱이 회. 싱싱한 횟감에 생강과 대파를 섞어 감칠맛 나는 이 회는 바다를 묵으로 만들어 썰어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신선하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냉샤브’. 삼겹살을 살짝 익혀 얼음으로 식힌 후 숙주나물과 비벼서 들깨소스로 마무리한 요리로 이 집 단골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특히 일본식 따뜻한 정종과 절묘한 대비를 이룸으로써 한겨울 조촐한 이야깃거리에 딱 어울리는 메뉴. 마지막으로 ‘장코나베’. 태국의 수키처럼 널찍한 그릇에 육수를 붓고 배추와 생고기 해산물, 새우 등을 넣고 푹 고아 만든 탕요리로, 국물이 원재료의 맛을 훼손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담고 있어 미식가들의 혀를 감탄시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사토 에이지와 함께 마신 정종이 무려 7병째가 넘어가고 있었다. 밤은 깊어가고 사람들 이야기는 끝없는 미궁으로 빠지는 시각... 8병째를 마다하고 나오는 골목길에는 불황 속에서도 풍월에서 들려오는 정겨운 웃음소리가 행복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스페인식 사랑법을 요리한다

대학로 알바이신



 알바이신은 스페인의 그라나다 지방에 있는 지명이다. 하지만 대학로에도 있다. 찾기 어렵다는 것만 빼면 스페인에 있는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즐거움으로 꽉 차 있다. 이 집의 주인장은 정세영씨로 나는 그냥 ‘세영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파인아트 계열의 전문 포토그래퍼로 사실 지명도도 상당히 있는 작가다. 그의 프린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오늘은 알바이신의 사장이자 주방장으로만 소개하고자 한다. 그가 쏟아내는 스페인 요리의 내공이 실은 그의 사진보다도 더 가공할 만큼의 폭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위치 추적부터 해 보면, 혜화동 네거리에서 성북동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중간쯤에 비디오 가게가 있는 허름한 골목이 나오고 그 골목 안에 혜화떡집이 보인다. 여기까지 찾고도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눈을 조금만 크게 뜨면 떡집 옆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알바이신(02-741-5841)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흔한 입간판조차 없는 이곳은 작은 스페인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만 찾는 곳이다.

 문을 열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플라밍고 음악, 그리고 스페인풍의 접시와 기타로 장식되어 있는 아담한 실내는 진짜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선사한다.

 일본에서 사진 공부를 하고 다시 스페인으로 유학 간 세영 형이 돌아와 스페인 음식점을 냈을 때 많은 친구들은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일본 유학 시절 직접 우동을 만들어 먹고, 팔기도 했던 그의 음식에 관한 남다른 열정을 이미 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 번 직접 스페인에 날아가 한두 달씩 요리 공부를 하고 있는 사장님 덕분에 우리는 늘 신선한 본토의 전통 요리들을 편하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호사스러움을 누릴 수 있다.

 이 조그만 스페인 음식점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그라나다 지방을 대표하는 스페인 음식의 맛이다. 그 정점에는 파에야(Paella)가 있다. 넓은 접시라는 뜻을 가진 파에야는 원래 스페인에서는 식사이기도 하지만 안주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 입맛에는 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알바이신의 파에야는 우리 입맛에 맞게 닭고기와 홍합 그리고 오징어 등을 첨가해 맛깔스럽다. 스페인 친구가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하고 간 적이 있을 정도로 이젠 경지(?)에 오른 메뉴라고 자평한다. 파에야는 말 그대로 넓은 접시여서 1인분은 주문이 안 되고 2인분이 기본이다. 그래서 이 집에는 특히 연인들이 많이 온다. 두 연인이 나란히 앉아 그라나다 지방의 특별한 해물요리를 맛나게 먹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사장님이 추천하는 스페인 와인 셰리(sherry jerez)주까지 첨가한다면 그 추억은 한동안 달콤한 향기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북적거리는 것을 싫어해 간판도 제대로 붙이지 않고 장사를 하고 있는 만큼 알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겐 최상의 서비스를 다한다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이 밖에 스페인풍의 감자 오믈렛으로 올리브기름과 허브로 맛을 내어 인기를 얻고 있는 토르시아 알바이신(Tortilla albaizyn)과 스페인 하몽을 얇게 저며 요리한 타블라 알바이신(Tabla albaizyn)도 추천 메뉴이다.

최승희 방송작가/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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