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실 육아와 사회생활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나에게 이런 질문은 ‘인생은 무엇일까’ 내지는 ‘나는 누구일까’와 같은 종류의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질문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매일 아침 나에게 ‘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있다.

 고희를 훨씬 넘긴 일흔다섯 나이의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 ) 그가 바로 장본인이다. 인터뷰도 서면으로 응할 정도로 바쁘고 귀한 그가 한낱 큐레이터인 나에게 하루도 쉬지 않고 ‘사랑’을 생각하게 한다니 의아할 법도 하다. 물론 나는 로버트 인디애나를 본 적도 없을 뿐더러, 그의 목소리 또한 들어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그의 존재와 목소리를 느끼는 것은 그의 작품 ‘LOVE’를 통해서다.

 나는 매일 아침 현대식 건물 로비의 투명한 유리 속에서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LOVE’를 만난다. ‘LO’가 ‘VE’ 위에 올라앉은 이 작품은 딱 떨어지는 형태를 갖추고 있다. 마치 세련되고 쿨한 사랑의 상징 같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내가 로버트 인디애나의 삶과 사랑을 넉넉함과 편안함 쪽으로 지레 짐작한 것은 말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1928년 인디애나 주 뉴캐슬에서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이 될 때까지 무려 스물한 번의 이사를 할 만큼 가정 형편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는 누구인가. 그들은 생에 가장 비참한 순간도 생에 가장 빛나는 성과로, 삶에 가장 처절한 기억도 삶에 가장 탁월한 경험으로 바꿀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던가. 로버트 인디애나 또한 그러했다. 그는 이사를 할 때마다 특별한 숫자를 그 이사와 관련시켜 생각했고 훗날 1, 2, 3, 4와 같은 숫자는 ‘LOVE’ 등의 단순한 단어와 ‘AMERICAN DREAM’과 같은 간단한 문장과 함께 그의 작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다.

 1950년대 중후반 미국은 물질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였고, 팝아트(Pop Art)는 이러한 물질문명에 대한 낙관적 분위기가 만들어 낸 미술 경향이었다. 바야흐로 대량 생산의 시대 팝아트는 코카콜라, 마를린 먼로와 같은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당시 미국 화단의 주류였던 추상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의 엄숙함에 맞서 가벼운 예술을 지향한 예술이었다. 그리고 로버트 인디애나는 극단적으로 간결하면서도 단순한 숫자와 문자를 레터링(Lettering)하는 방식으로 팝아트와 이러한 지향을 나눈 예술가다.

 ‘EAT’, ‘DIE’ , 교통표지판 같은 간결한 패턴에 삽입된 이 단어들을 보는 순간 우리는 ‘먹는다’, ‘죽는다’와 같은 단어 고유의 의미를 둘러싼 수많은 연상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업들은 고대 건축물에 당시 사람들이 남긴 낙서, 그림 글자처럼 먼 훗날 이 시대의 그라피토(graffito)로 불릴 만하며, 한 사회에 사는 사람이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깃거리를 던진다는 점에서 공공미술(public art)로 분류될 법하다.

 ‘사랑’. 예전에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당분간 나는 이것에 대한 숙고를 유보해 둘 생각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질문을 잊지는 않을 참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사랑이란 무엇일까’를 묻고, ‘사랑합니다’를 속삭이고, ‘사랑을 잊지 마세요’를 충고하는 작품 ‘LOVE’가 있어 가능한 일이다.

 오늘 나는 또 다른 빛깔과 또 다른 감성을 담은 사랑들과 만나기 위해 로버트 인디애나의 ‘LOVE’ 연작들을 보러 나선다. 즐거운 외출이다.

공주형 학고재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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