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한국인이나 외국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대목들이 가끔 등장한다. 정치적 격론 끝에 굳을 대로 굳은 표정을 짓고 있는 토론자에게 사회자가 이렇게 한마디 던진다.

 “미소 얼굴씨 표정을 펴고 미소를 좀 지으세요.”

 사회자의 농담을 받은 사람의 성(姓)은 ‘미소얼굴(Guleryuz)’. 방청석은 순간 웃음바다가 된다.

 한편, 상대 토론자는 유려한 달변과 명쾌한 논리로 방청객을 사로잡는 야당의 대표적 논객. 그를 향해서도 사회자의 한마디가 날아간다.

  “묵묵부답씨 정말 놀랬습니다. 정말 말씀 잘하시군요.”

 야당 논객의 성은 ‘묵묵부답(Soylemezoglu)’. 방청석은 또 한 번 웃음바다가 된다. 

 유목사회였던 터키는 원래 성이란 것이 없었다. 이동과 이합집산을 거듭하면서 누구의 아들, 어느  부족 소속이면 됐지 굳이 족보를 만들고 계보를 만들 필요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터키 공화국이 건설된 후인 1920년대 말, 갑자기 성을 만들라는 법령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성의 개념이 없었던 터키 사람들의 호응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관리들이 집집마다 방문하여 성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향 이름, 산 이름, 직업 이름, 의미가 좋은 단어로 성을 만들어주던 것도 금방 한계에 부닥쳤다. 당시 3000만 명이 넘는 인구의 성을 만드는 일은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작업이었다. 할당량과 마감에 쫓긴 지친 관리들은 급기야 되는 대로 성을 만들어 주었다. ‘쪼다새끼(Aptaloglu)’, ‘정신 나간 놈(Cansizoglu)’, ‘재미없는 자식(Tatsizoglu)’. 심지어 다리 밑을 터전으로 할 일 없이 떠돌아다니는 집시들에게는 ‘다리 밑에서 자다 깨다 하는 놈(Koprualtindakalkaruyaroglu)’이라는 세계 최장의 성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 사회 저명 인사들 중에는 듣기에 아주 민망한 비속어를 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심심찮게 화제가 된다. 그들 중 일부는 사회활동에 지장을 없애고 후손들의 명예로운 출발을 위해 법원에 개명 소송을 했으나, 보기 좋게 기각 당하기도 했다. 이 소송이 받아들여지면 터키 사회 전체는 수습하기 힘들 정도의 개명 파동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터키에서는 성 문제가 다시 한 번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터키 중부의 무쉬지방에 있는 빙골데크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한 학급 40명 중 25명이 같은 성을 사용하고, 교사들 대부분도 성이 같기 때문에 수업 및 학사 일정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폴라트(Polat)’라는 성을 쓴다는 것. 물론 좁은 마을에서 한 가문에 속한 경우도 있겠지만, 귀찮아진 관리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몽땅 ‘폴라트’란 성을 부쳤는지도 모른다.

  터키에서는 단 한 사람만 쓰는 성도 있다. 그것은 국부(國父)란 의미를 가진 ‘아타투르크’다. 터키 독립의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케말 아타투르크에게 붙여진 성이다. 이처럼 터키 사회에서 성을 이해하는 것은 삶의 중심 코드이자 유머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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