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으로 높이 솟은 건물들 사이로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수많은 뉴요커들은 순간순간 다른 얼굴을 가지고 변화하며, 한 가지 정체성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이들이 누구인지 쉽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의 핏속에 흐르는 에너지가 뉴욕을 ‘지구의 심장이 뛰는 도시’로 만든다.
 말 그대로 십인십색(十人十色) 다양한 인종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가 뉴욕이다. 대서양을 낀 항구 도시인 만큼 200년 전에는 유럽의 많은 이주민들이 뉴욕으로 몰려들었고, 지금도 중남미와 아시아에서 흘러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뉴욕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도시 뉴욕에는 이민자들이 각각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독특한 풍경을 이룬다. 흑인들의 본거지 할렘, 케이 타운이라 불리는 한국인들의 거리, 이탈리언의 마을 노리타와 월 스트리트와 이웃한 차이나타운은 대표적인 소수 민족들의 공동체. 



 이민자들의 다양한 문화가  에너지의 원천

 이들뿐 아니라 유대인, 히스패닉, 러시안 등 여러 민족들의 정서와 문화는 미국 주류 사회와 만나 새로운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소수 민족들끼리의 문화가 뒤섞인 흥미로운 트랜스 컬처(trans-culture)를 형성하며 뉴욕의 정체성에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넣는다.

 뉴요커들은 이러한 다양한 이민자들의 전통과 문화를 인정할 줄 아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타이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모로칸 바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아프리칸 댄스를 배우고, 쿠바 음악을 듣는 뉴요커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즐기며 살아가는 진정한 메트로폴리탄이다. 그리고 이들은 다양한 소수 민족들의 끊임없는 수혈(輸血)로 뉴욕이  지금까지 그래온 것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도시가 되리라는 것을 안다. 

 미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국가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미국인이 뉴요커들처럼 개방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팍스 아메리카’(Pox America)를 외치는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미국 대륙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것은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뉴욕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존 케리가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선 결과는 부시 대통령의 재선으로 나타났다. 뉴요커들의 오픈 마인드와 정치·사회에 걸친 진보적인 성향은 미국의 다른 도시민들과는 큰 차이를 보이기에 미국인들조차도 ‘뉴욕은 미국이 아니다’고 극단적으로 이야기할 정도다.



 나만의 웰빙 넘어 타인과 지구의 행복까지 고려

 다른 도시의 미국인들에게 뉴요커들은 유난스럽게 까다로운 ‘종족’으로 비추어지는데 그 이유는 이들의 철저한 자기 관리다. 미국 인구의 80%가 과체중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지만 맨해튼 거리에는 정크 푸드를 즐기는 흑인들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살찐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의 젊은 여성들 못지않게 많은 뉴요커들이 살찌는 것을 싫어하다 못해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냉장고에는 무설탕, 무지방, 저칼로리 등 다이어트에 관련된 음식들로 가득하며, 스포츠센터 멤버십은 기본이고 틈만 나면 허드슨 강변이나 센트럴 파크에 나와 조깅을 한다.

 뉴요커들은 패션과 스타일에 높은 안목을 자랑하며, 까다롭고 요구 조건 많은 이들이 제품과 서비스에 들이대는 잣대는 엄격하기만 하다. 이런 성향은 뉴욕을 전 세계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친 트렌드 세터로 뉴요커들을 자리 매김하도록 했다. 그래서 뉴요커들에게 사랑받는 제품과 브랜드들은 곧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기 마련인데 그 대표적인 예가 지금 한국에서 큰 붐을 일으키고 있는 오거닉, 웰빙 트렌드다. 10년은 먼저 뉴요커들에게서 시작된 이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이들의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패셔너블한 옷차림의 뉴요커들이 장바구니를 든 채 오거닉 마켓을 향하는 모습은 맨해튼에서 이미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요가와 명상, 마샬 아트(동양무술)에 심취한 뉴요커들이 상당수에 이른다.

 최근 뉴요커들 사이에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환경 친화적 제품을 소비하는 일이다. 전기로 움직이는 도요타의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Prius)가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재활용 코르크로 만들어진 ‘버켄스탁’(Birkenstock) 샌들은 스타일리시한 뉴요커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자신의 웰빙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구를 돌보는 일에도 열정을 쏟는 뉴요커들이 많아진 까닭이다.



 여전히 신화를 낳고 있는 기회의 도시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이끌어 가는 뉴요커들이지만 그들은 각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소신껏 지켜간다. 럭셔리 백화점 버그도그 굿맨에서 샤넬 재킷을 망설임 없이 구입하는 업타운 레이디들이 대형 할인점 월마트나 타겟에서 5달러짜리 티셔츠를 즐겨 쇼핑하는가 하면, 100만달러가 넘는 연봉을 받는 대기업 중역이 한 달에 70달러짜리 지하철 정기권으로 출퇴근을 한다. 우리에게는 화제가 될 법한 일들이지만 뉴요커들은 이런 모습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

 획일적인 가치 평가를 거부하는 유연한 사고방식의 뉴요커들은 결국 뉴욕을 기회의 도시로 만들었다. 화장품 세일즈 우먼으로 출발해 10년 만에 그 회사 CEO가 된 여성, 식당 웨이트리스에서 브로드웨이의 스타로 떠오른 무명 배우 등 많은 성공 신화가 내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도시가 바로 뉴욕이다. 언제나 새로운 가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뉴욕은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정체성과 함께 지금도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권태일 마케팅·스타일 전문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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