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식산업종합조사연구센터에 따르면, 일본의 외식시장 규모는 2001년 기준으로 27조엔이 넘는다. 이 규모는 철강산업과는 맞먹고 자동차산업보다는 큰 것이다. 이 때문에 동경의 거리는 신구(新舊) 음식점들 간 거대한 경연장이나 다름없다. 거품경기시 ‘1억총 그루메’(일본의 모든 사람이 미식을 하자)라는 말이 나왔던 일본 외식시장에는 이제 경기거품이 꺼지면서 싸고 맛있는 ‘B급 그루메(싸고 저렴하고 간편하고 맛있게 먹는 음식)’가 대유행을 이끌고 있다. ‘B급 그루메’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경에서 요즘 가장 각광받는 외식 분야는 라면이다. 요코하마에 라면박물관을 세울 정도로 일본인의 라면 사랑은 뜨겁다. 동경의 라면집 맛 순위를 매길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집이 하라주쿠에 위치한 ‘큐슈쟌가라’(九州じゃんがら, 03-3779-3660)다. 국물 맛이 끝내주는 집이다. 80년대 유행하기 시작한 큐슈라면의 선두주자 격이다. 그동안 라면은 라면이름의 발생지인 삿포로라면의 시대였다. 요코하마 중화가에서 개발한 라면은 소유(간장)라면인 삿포로라면의 등장으로 급속한 대중화의 길을 걷게 된다. 소유라면을 파는 대표 가게로는 쿠단시타의 ‘이카루가’(斑鳩) 등이 있다.

 라면은 완성된 형태의 음식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해서 발전해 가는 음식이다. 물론 한국에서 주로 먹는 인스턴트라면(인스턴트라면도 일본의 니신의 안도가 개발했다)이 아닌 생라면이다. 한국 라면에 비해 진하고 느끼한 게 특징이다. 처음 먹는 사람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맛이다. 그래서 한국인은 느끼하지 않은 시오(소금), 소유(간장), 미소(된장) 라면을 즐겨먹는다.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맛을 봤다면 80년대 이후 유행하는 돼지뼈로 국물을 낸 큐슈라면을 먹어보기를 권한다. 하여튼 큐슈쟌가라의 라면은 진한 돼지뼈 국물과 돼지고기 고명과 면이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돼지고기 고명을 보면 느끼할 거라는 생각부터 들지만, 기름기를 쫙 뺀 고기나 국물은 느끼하지 않고 깊고 진한 맛이 우러난다. 고들고들하고 보통 라면보다 가느다란 면도 역시 목 넘김이 부드럽다.

 일본 라면은 국물이 우선이고 그 다음으로 면을 친다. 그래서 라면의 구분도 면의 상태에 따라 나뉜다. 그래도 좀 느끼하다 싶으면 맥주 한 잔을 곁들여도 좋다. 내부는 이런저런 라면에 대한 글로 가득 차 있다.  ‘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에 와 있다는 걸 실감나게 해준다.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는 신주쿠에 자리한 멘야 무사시(麵屋武藏, 03-3634-634)에는  길게 손님 줄이 늘어서 그 명성을 대변한다. 이케주부쿠로에는 다이쇼겡(大勝軒, 03-3981-9360)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먹기에 편하고 좋은 맛으로 정평이 나 있다.



 천 가지 라면에 천 가지 맥주

 일본 식당이 한국 식당과 다른 점은 반찬이 없다는 것이다. 기껏 찬이라고 해야 ‘생강 절인 것’ 정도다. 그래서 어디서나 일정한 질이 보장되는 생맥주를 반찬 대신 먹는 경우가 생긴다. 일본의 생맥주는 맛이 고르고 강하지 않아 음식과 먹기에 더없이 좋다. 이런 맥주는 에비스에 위치한 가든 플레이스에서 맛볼 수 있다. 삿포로맥주 본사가 있는 곳이다. 낮에는 맥주박물관도 둘러보고 즉석 생맥주도 마실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맥주를 마시고 싶다면 근처에 위치한 비어스테이션(ビヤステ-ション)이 제격이다. 이름처럼 여러 가지 맥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른 브랜드의 맥주를 마시는 것도 좋지만 ‘물 좋기로’소문난 삿포로맥주를 마셔보는 것이 가장 좋다. 공장에서 직접 가져온 신선한 생맥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삿포로맥주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제조회사다. 비어스테이션은 실내장식부터 독일식을 표방한다. 더군다나 매년 7, 8월에는 일정한 돈을 내고 맥주를 무제한 먹을 수 있는 ‘호다이’(放題-일정한 돈을 내면 음식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음식은 ‘다베호다이’, 음료수는 ‘노미호다이’로 구분된다) 이벤트가 열린다. 훈제연어, 아이스바인, 햄 등 네 가지 안주와 무제한 제공하는 생맥주에 맥주귀신인 필자와 동행한 후배는 거의 이성을 잃었다. 일본맥주 중에서도 삿포로맥주의 부드러운 맛은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맞기 때문이다.

 적당한 소금기에 고기 향이 넘치는 얇게 썬 햄은 맥주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노란 필스너맥주로 시작했다. 부드러운 거품과 목 넘김이 좋은 필스너맥주가 시원하게 식도를 통과한다. ‘오이시이(おいしい, 맛있다)’다. 이어서 나오는 독일식 족발 ‘아이스바인’을 먹어 보았다. 한국에서 요즘 유행하는 하우스 맥주집에서 먹던 아이스바인의 이상한 맛을 연상하던 우리는 정말이지 그 맛에 놀랐다. 돼지고기 중에서 족발 맛이 좋다는 데는 이의를 달 수 없지만, 이곳 아이스바인의 맛은 고기의 맛을 제대로 살려내 식감이 느껴지면서도 부드러운 맛이 그만이다. 돼지고기의 상태도 선홍색으로 최고다. 주방장이 독일인이냐고 물었더니, 독일에서 공부하고 온 일본인 요리사란다. 저녁에는 일본 술 니혼슈도 좋지만 무더운 일본에서는 맥주가 제격이다.

 동경의 거대 빌딩에 싫증이 난다면 일본의 최대 수산시장인 츠키치(築地)시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가려면 오전에 가야 한다. 새벽에 열어 오전에 문을 닫기 때문이다. 시장은 수산물 업자들이 거래를 하는 내시장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외시장으로 나눠진다.



 일본 최대 수산시장 츠키치시장

 내시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다. 생선 자르는 사람, 포장하는 사람, 운반하는 사람, 흥정하는 상인들로 활기가 넘쳐난다. 참치를 해부하듯 조각 내는 장면도 인상적이고, 커다란 키조개 같은 해산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곳의 최대 구경거리는 작은 스시집, 즉 초밥집들이다. 작은 공간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냥 한 줄로 줄을 선 게 아니라 뱀이 똬리를 틀 듯이 갈지자로 늘어섰다. 초밥(스시)의 생명은 얹어먹는 재료인 네타다. 그러니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너무 사람이 많아 들어가서 먹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발길을 외시장으로 돌렸다. 각종 건어물과 생선 등을 파는 상가가 길게 늘어서 있다. 외시장과 내시장 입구에는 일본인들이 가장 즐겨먹는 ‘가쓰오부시’(가다랭이 생선을 나무처럼 말려서 살을 대패로 저며 김에 찌고 건조시킨 가공식품으로, 주로 맛을 내는 데 사용)를 파는 집들이 많다. 투명하고 맑은 색의 가쓰오부시는 종류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보고만 있자니 속이 가만있지를 않는다. 시장 내에 깔끔하고 커다란 초밥집이 눈에 뛴다. ‘스시쟌마이’(すしざまい, 03-3541-1117)다.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니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린다. 규모도 큰데 사람들은 더 많다. 맛있는 집이라는 증거라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20여분 만에 자리를 잡았다. 긴 탁자를 경계로 해 초밥 장인과 손님이 마주보는 형태다. 우리를 맡은 초밥 장인은 나이를 빼고는 <미스터 초밥왕>의 만화 주인공과 쏙 빼닮은 모습이다. 옆에 앉은 아주머니 손님은 모둠초밥을 시킨다. 그러나 모둠초밥은 정말 권하고 싶지 않다. 모둠초밥은 대부분 주방에서 만들기 쉽고 적당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맛을 즐기려면 조금 어렵더라도 하나하나 시켜 먹는 게 좋다. 다행히 이 집에서는 초밥 그림과 이름, 가격이 붙은 작은 메뉴판이 나온다. 메뉴판을 보고 그림을 가리키면 된다. 먹는 순서는 광어 같은 하얀 살 생선으로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기름기가 많은 참치 같은 붉은 살 생선이나 전어 같은 생선 네타로 만든 초밥을 먹는다. 마지막으로 조리를 한 아나고 같은 생선과 계란말이 비슷한 오우지, 그리고 김마끼로 마무리하면 된다. 다른 집에서는 개당 700엔이 넘는 오도로(참다랑어 뱃살)가 398엔이다. 거의 반값이다.

 가격만 싼 게 아니라 맛도 일품이다. 만화에 나오는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밥알은 뭉쳐 있다가 입 안에서 알알이 퍼진다. 쌀알 하나하나가 재료와 어울려 여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을 낸다. 근처에 있는 긴자나 우에노의 고급 초밥집보다 더 맛있다. 특히 아나고 초밥의 맛은 정말 훌륭하다. 여름에 좋은 재료라 그런지 재료의 신선함이 코와 혀를 자극한다. 장님 문고리 잡기처럼 우연히 얻은 행운이다.

 시장 주변에는 작지만 인기 있는 집들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줄지어 서 있다. 규동(고기덮밥)집에도, 우동집에도, 작은 초밥집에도 맛의 달인들 솜씨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시장은 북적댄다. 시장은 이내 맛의 공화국으로 변한다. 일본에는 초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 회전초밥이 대표적이다. 요즘은 모든 메뉴를 100엔에 파는 초저가 회전초밥집들이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다. 다만 종종 가격 때문에 재료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기도 하다. 이런 기우를 없애려면 이름난 맛집을 찾는 게 좋다. 시부야에 있는 츠키치혼텡(築地本店, 03-3464-1178)은 가격과 맛에서 최고의 회전초밥집으로 알려진 곳이다. 이런 맛집에서 맛있는 초밥을 제대로 먹으려면 장인들 앞에 자리를 잡고 새로 만들어 내는 초밥을 먹거나 시켜 먹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저녁에 친구나 동료들과 한잔하고 싶을 때는 이자카야(居酒屋)를 찾아가 본다. 일본에서도 전통 이자카야는 장년들이 주로 가는 곳으로 변했고, 젊은이나 직장인들이 가는 곳은 새로운 이자카야이다. 대개 체인점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오타미’(百民), ‘사쿠라수산’(さくら水産)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이곳에서 먹을 수 있는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좋다.

 수산물을 좋아하면 사쿠라수산을, 다양한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우오타미를 권하고 싶다. 안주는 모두 그림으로 인쇄돼 있어 종류를 고르거나 시키는 데 불편하지 않고 부담이 없다. 주의사항은 하나, 마실 것을 먼저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주를 주문하기 전에 시켜야 한다. 일본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처음에 자리에 앉으면 무언가 말을 열심히 하는 종업원을 이해하려면 어렵다. 음료수를 먼저 시키라는 말이니, 맥주든 뭐든 음료를 먼저 주문하면 된다.

 라면에서 카레, 초밥, 이자카야 등 이제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고 익숙해진 일본음식들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일본 출장길에 제대로 된 일본음식 먹어보는 것도 공부가 된다. 일본까지 가서 한국음식을 찾아 먹고 오지 말고 맛있는 일본음식 먹고 오자. 가깝고도 먼 나라는 음식에도 존재한다. 맛있는 음식은 길만 나서면 널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