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미국이나 캐나다, 또는 오스트레일리아처럼 이민자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영국의 수도 런던은 이민자,
유사 이민자, 유학생, 그리고 관광객 등의 외국인으로 넘쳐난다. 이러한 외국인을 바라보는 런던 시민의 시선은 어떨까.

  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인종이나 국적을 기준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짓은 배우지 못한 자들, 사회적으로 인정된 것이라고는 자신에게 주어진 태생적 배경밖에 없는 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는 언행과 별개로 인종과 국적 안팎에 존재하는 강박 관념은 교육 수준, 능력과 자질, 품성 등과 무관하게 사회적으로 실재하고 있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수식까지 받았던 제국주의의 역사 탓일 수도 있고, 양겚璲?석탄에 밀려났던 인간의 역사, 그 생산력의 극단적인 발전과 그에 따른 생산 관계의 첨예한 대립 구도로 점철된 자본주의 역사 탓일 수도 있지만, 영국,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잉글랜드의 경우 이러한 강박 관념은 순진해 보일 정도로 즉물적이다.

 2004년의 끝자락에, 영국 여왕은 텔레비전 방송에 나와 전 영국 국민을 대상으로 예의 ‘평화와 공존’ 식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 왕 주변에는 영국 시민을 상징하는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둘러서 있었는데, 그 절반이 인도나 스리랑카 등의 아시아계 영국인이었다. 런던의 경우, ‘체감 인구’ 차원으로 보자면 이러한 양적 비율은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그레이터 런던 남서쪽에 위치한 도시인 트위큰함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제니(40대 중반의 ‘교육받은’ 여성이며 어느 당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다소 격앙된 어조로 이야기한다. “런던에는 너무나 많은 외국인이 살고 있다. 인도인, 스리랑카인,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중국인 등…. 런던 시민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질 날이,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올 것이다.” 트위큰함은 런던의 다른 지역에 비해 그러한 외국인이 ‘거의 없는 편’인 데도 말이다. 



  주거 지역이 곧 ‘출신 성분(?)’

  우리가 ‘런던’이라고 부르는 도시는 크게 두 지역으로 분류된다. 하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나 내셔널 갤러리 등이 있는 ‘센트럴 런던’이고, 또 하나는 그 도심을 둘러싸고 있는 ‘그레이터 런던’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센트럴 런던은 서울의 4대문 안이고, 그레이터 런던은 서울의 4대문 밖이라고 할 수 있다. 런던 시민은 자기가 사는 지역 안팎의 이미지를 거의 ‘출신 성분’에 가깝게 받아들인다. 그렇게 자기가 사는 지역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거나 감추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 첼시? 그 콧대 높은 동네에서 왔군!” 따위의 ‘지역에 대한 코멘트’도 주저하지 않는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다가 조금 놀랐던 적이 있는데, 청취자와 전화 통화를 하던 프로그램 진행자는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그 청취자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무시하는 듯한 어조로 “혹시 이스트앤드에 사느냐”고 물었고 그 청취자는 당황한 듯 “그렇지 않다”며 완강하게 부인했다.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 않지만, 이스트앤드로 불리는 이 센트럴 런던 동쪽 지역은 ‘흑인 집단 거주, 빈곤과 범죄’ 등으로 상징되는 곳이다. 한국인 집단 거주 지역인 그레이터 런던 남쪽의 뉴몰든도 낙인이 찍혀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몇 달 전에 본 신문 기사가 그 단적인 예다. 그레이터 런던 남서쪽 몇 개 도시를 아우르는 그 지역 신문 기사 제목은 “한국인은 왜 뉴몰든에 몰려 있는가, 개고기를 먹기 위해서?” 정도였으며 개를 묶어 놓고 칼을 꺼내어 든 한국인을 묘사한 친절한 삽화까지 곁들여져 있었다. 라디오 방송과 신문 기사의 이러한 악의적인 독설만 보더라도 실제 런던 시민의 ‘지역 차별 의식’은 어렵지 않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차별 의식은 무엇에 근거하는 것일까. 언젠가 어느 스리랑카계 독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 지역에 사느냐’는 질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는 당황한 듯 주춤거리더니 “하운슬로에 산다”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 며칠 후 하운슬로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가 주춤거린 이유를 쉽게 알 수 있었다. 공항과 인접한 그레이터 런던 서쪽에 위치한 이 도시는 2년 전에 가 본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를 연상하게 했다. 51% 이상이 인도인겱보?昊ダ括막?추정되는 아시아인(이거나 아시아계 영국인)이었고, 그들의 차림새는 그 복잡하고 지저분한 거리만큼 간구했으며, 그들의 표정 역시 낡고 허름한 주택가만큼 곤고했다.

  불쾌한 현실이지만, 이른바 ‘토종 영국인’에게, 그리고 이러한 토종 영국인과 함께 사는 ‘외래 영국인’이나 ‘영국 거주자·여행자’에게 이것은 결코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 아닌 차별은 인종이나 국적 그 자체에 기인한다기보다는 그 거주자의 삶과 언행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런던에 있는 대표적인 대형 마트는 웨이트로즈, 막스 앤 스펜서, 세인즈버리, 테스코, 아스다 정도다. 이 열거 순서는 그 마트의 서비스 수준, 마트에 진열된 상품의 질과 거의 일치한다고 보면 되는데, 놀라운 것은 그 가격에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열거 순서와 ‘고객 중 백인의 비율’은 거의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고객뿐 아니라 마트 직원까지도. 국적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어색한 억양과 강세로 마트 직원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볼 경우, 막스 앤 스펜서에서는 “일본인이냐”고 묻고, 아스다에서는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법·제도적인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노골적인 이데올로기 공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원조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인종·국적에 따른 차등 아닌 차등, 차별 아닌 차별이 너무나 상식적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학생신분으로 지내는 것이 유리

 무엇보다 이러한 차등과 차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부류는 ‘학생’이다. 대학원생이든, 대학생이든, 어학 연수생이든 다 똑같다. 독일이나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리고 보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많이 바뀌기는 했지만 여전히 영국은 ‘학생의 신분으로 지내는 것이 유리한 곳’이다. 물론 정말로 ‘학업’에 뜻이 있어서 학생의 신분으로 지내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들 학생의 상당수는 ‘체류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으며 그 대부분은 아주 궁핍하고 조잡한 삶을 살고 있다. 이것은 한국인 유학생에게도 예외가 아니며, 토종 영국인에게 비춰지는 한국 유학생의 이미지 역시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영국, 특히 런던 안팎의 ‘신사’ 이미지가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면, 이렇게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신사는 신사에게만 신사적이다.' 신사적인 언행, 신사적인 이미지를 가지는데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거주를 하든 여행을 하든, 돈 1만원을 쓰더라도 근사한 차림으로, 근사한 곳에 가서, 근사하게 쓰면 된다. 단적인 예로 센트럴 런던의 관광 명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차등이나 차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센트럴 런던은 진정한 런던이 아니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중요한 것은 센트럴 런던을 찾는 외국인의 언행은 불법 체류자나 학생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을 대하는 영국인의 마인드 역시 마찬가지다.

김형렬 여행전문가 / 사진 : 김형렬 여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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