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막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구덕모(59) 전 LG필립스LCD 부사장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그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와인 바’사업으로 인생 후반전을 개막한 주인공이다.

지난 1월15일 저녁 7시 명품거리로 유명한 서울 청담동. 구찌 매장 골목을 따라 50미터쯤 올라갔을까. 왼쪽 편에 ‘와인&프렌즈’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건물 엘리베이터에서 3층 문이 열리자마자 매장 초입이다.

독특한 인테리어는 매장 안쪽도 그랬다. 와인 바로는 드물게 3개의 룸이 있고 방마다 LCD 모니터가 깔려있다. 이 때문일까. 노트북 작업을 하는 비즈니스맨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구 사장은 “파스타 한 번 들어보겠냐”고 권했다. 와인 바에서 웬 파스타일까 싶었다. 그런데 뚝배기에 온갖 해물이 곁들여진 스파게티 맛은 일품이었다.

‘와인&다이닝’을 표방한 점도 기존 와인 바와 차별화된 포인트. 이 모든 게 구덕모 사장의 아이디어다. 그는 “직장도 아니고 내 사업인데 내 마음대로 만들어봤다”고 말한다.

그가 와인 바 사장으로 변신한 때는 2006년 4월말. LG필립스LCD 부사장을 끝으로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지 꼭 한 달 만이다. LG 옷을 벗은 뒤 창업 전 한 달은 예상컨대 ‘뭘 하고 살까’로 고민이 심했을 것이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전 연말(2005년 12월) 미리 결정해뒀습니다. 퇴임식 때는 오히려 기분이 홀가분했습니다.”

가장 달라진 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스트레스 덩어리가 확 줄었다”는 말로 표현했다.

“이것도 사업이니까 스트레스야 없지 않겠지만 대기업 임원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오히려 즐겁게 일하니까 ‘긍정적 스트레스’를 달고 산다고 할까요.”

그의 직장생활 경력은 36년. 1970년 코트라(당시 무역진흥공사)에 입사 후 1981년 LG전자(당시 금성사)로 말을 바꿔 탄 후 25년간 LG맨이었다. 줄곧 마케팅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영업통. LG가 필립스가 LG필립스LCD로 합작 출범한 1999년 11월 영업본부장(전무)으로 옮긴 후 2000년 7월부터 영업부문장(부사장)으로 재직해왔다.

그는 자신을 ‘성공한 직장인’이라고 표현했다. 할 것 다해봐 후회도 없고 감사하다고 말한다. 그런 그도 자신의 창업 아이템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엔 뭐를 해야 할까 생각이 복잡했습니다. 대기업 그것도 연간 매출액 10조원이 넘는 회사의 영업 책임자였으니 제가 ‘10조원을 파는 사람’ 아니었습니까. 그런 사람이 나와서 ‘쫀쫀한 일’ 하기도 그렇고 놀자니 그건 더 못하겠고….”

그는 “30년 넘는 직장생활을 머릿속으로 정리해가면서 ‘아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고 말한다. LG필립스LCD 재직 시 그는 ‘와인 스페셜리스트’로 유명했다. 평소 와인을 즐겼던 그가 와인을 통해 비즈니스를 연결한 ‘무용담’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가 알려준 ‘와인 비즈니스’ 한 사례.

미국 시카고 주재원 시절이던 1980년대 중반. 그는 미국 최대 백화점에 TV, VTR을 납품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던 때였다. 경쟁 상대는 일본. 1주일 철야 끝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뒤풀이로 한 음식점을 찾았다. 반주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백포도주인 ‘캔달 잭슨’.

그런데 그 앞을 납품하려는 백화점 수석 부사장이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평소 면담 신청을 해도 번번이 퇴짜를 놓는 거물급 인사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서 던졌던 한마디가 “한잔 하시죠”였다. 돌아온 대답은 “캔달 잭슨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백포도주”라는 OK 사인. 와인 얘기 속에서 기회를 엿봐 ‘비즈니스 대화’도 곁들여갔다. 그리고 1주일 뒤. LG는 그 백화점의 주공급업체로 선정됐다.

구 사장은 “당시 그 백화점은 LG의 최대 거래업체였는데, 이후 저는 그 사람 사무실은 ‘프리 패스(자동통과)’였다”고 들려줬다. LG필립스LCD가 2005년 HP로부터 3년간 50억달러(5조원) 규모의 LCD 공급물량을 따냈을 때도 와인은 그에게 ‘비즈니스 매개체’였다.

그는 “옛날 얘기는 그만 하자”며 말을 막았다. 인터뷰 중간 중간 그는 손님들을 ‘접대’했다. 처음엔 지인들이 많았지만 요즘엔 새로운 단골이 많다. 어떻게 알았는지 자신이 LG 부사장 출신이란 것도 아는 사람이 많다.

이곳의 영업시간은 오후 6시부터 새벽 2시. 그의 생활 리듬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새벽1시쯤 집(방배동)에 들어갑니다. 이건 직장생활할 때와 비슷합니다. 기상 시간이 5시30분에서 7시로 1시간 쯤 늦춰진 것이 달라진 점이죠.”

직장생활 때 업무용 차량이 기사가 모는 에쿠스였다 지금은 오피러스로 자가 운전한다는 점이 달라진 점이랄까. 영업부문장 시절 거의 매일 밤 소주 혹은 와인 1~2병을 땄다는 주량도 여전하다.

그는 예순이 가까운 나이에도 178Cm 키에 체중 75Kg을 20년 넘게 유지하고 있다. 매일 아침 헬스와 주말이면 산에 오르는 생활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는 “인생 2막은 자신이 좋아하고 잘 아는 분야에서 시작하는 게 좋지 않겠냐”면서 “체력을 잘 관리해놓는 것도 든든한 재산”이라고 말한다.

그는 가족 동의를 구하는 건 밟아야 할 필수 코스라고 말한다. 자신도 4인 가족의 크리스마스 식사(2005년 12월) 때 ‘와인 바 구상’을 말했고 식구들은 흔쾌히 OK했다고 들려줬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대기업에만 오래 다녀서 그런지 자영업 불황이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고 말한다. 자영 사업자로 변신한 그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주위 친구들 보면 자기 일하는 사람도 몇 있지만 대부분 놉니다. 대기업 출신들이 실물경제에 어둡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내 자신이 딱 그렇더군요. 근처 음식점 사장님들 얘기 들어보면 요즘은 IMF 때만도 못하다고들 하네요. ‘오픈발’인지는 몰라도 저는 참 행운아인 것 같습니다.”

그는 “직장인이라면 거사(퇴직) 전에 진로를 결정해놓아야 한다”고 한마디 했다. 매출 상황이나 투자비 등 ‘돈’과 관련된 질문은 각자의 몫이라며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구덕모 사장의 '인생 2막' 조언

1. 좋아하는 일을 해라

2. 체력 관리에 힘써라

3. 잘 아는 분야서 새 출발해야

4. 가족 동의는 필수

5. 퇴직 전 결정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