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바다가 속삭였다. “흔들리는 배 위에 몸을 맡기고 숨 가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보는 게 어떻겠냐고.” 그 달콤한 속삭임에 못이기는 척, 지난 1월22일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탔다. 두 개의 트렁크엔 가슴 파인 드레스와 빨간 하이힐까지 넣고. 편집장 취재협조 = 루즈인터내셔널 (02-775-0100, www.cruise.co.kr)

실버시 위스퍼(Silversea Whisper) 동남아 크루즈의 시작은 싱가포르. 1월23일 오후 6시 싱가포르를 출발, 남지나해를 항해하며 브루나이 무아라, 베트남 호치민, 캄보디아 시아누크빌과 태국 코사무이를 들러 방콕에 도착하는 10일 일정이다.

고급 사교 문화를 지향하는 럭셔리 크루즈 실버시는 출발부터 남달랐다. 출발 일주일 전 검정색 지갑에 담긴 승선 티켓을 배달해 감동시키더니, 승선 축하 샴페인으로 또 한 번 대접받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기자가 묵었던 선실은 ‘베란다 스위트’. 숙박료가 하루 829달러(1인 요금 약 82만원, 할인요금 적용 시 705달러)나 된다. 선실은 트윈침대와 거실, 욕실, 옷방, 베란다로 구성돼있으며 DVD 플레이어가 있는 TV와 냉장고, 헤어드라이어, 안전금고 등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냉장고의 모든 음료와 주류는 무료이며 과일도 매일 신선한 것으로 채워준다.

실버시 위스퍼에 탄 후 첫 행사는 비상사태 시 대처교육. 각자의 선실에 있는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구명조끼에 씌어져 있는 알파벳 구역으로 갔다. 3층 B구역. 응급사태 발생 시 코를 막고 걷듯이 배에서 내리라는 설명에 영화 <타이타닉>이 떠올랐으나, 애써 고개를 저었다.

이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짐 풀기에 돌입. 드레스와 옷가지는 옷걸이에 구두, 가방, 액세서리 등은 서랍에 넣으니 내 방 옷장을 옮겨놓은 듯하다. 크루즈 여행의 장점 중 하나가 짐 싸고 푸는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하루에도 몇 번씩 때(time)와 장소(place), 상황(occasion)에 맞춰 잘 다림질한 옷을 갈아입는 호사를 누렸다.

감동적인 서비스, 여유로운 생활의 연속

테이블에는 선장이 보낸 환영 편지와 선내 신문 <크로니클>이 놓여있다. 승객의 이름이 적힌 편지지와 편지 봉투도 보인다. ‘내 이름이 적힌 편지지에 편지를 써 바다 한 가운데서 편지를 보낸다!’ 작은 부분에서도 승객을 감동시키는 세심한 배려야말로 ‘실버시 크루즈’가 추구하는 바란다.

“실버시 위스퍼에서 제일 좋았던 건 바로 ‘크루들’이에요.” 실버시 크루즈만 벌써 네 번째 라는 스코틀랜드 노부부의 말처럼, 승무원들의 진심 어린 접대는 고객을 감동시킨다. 잠시만 방을 비워도 말끔히 정리해주고, 일부 승무원들은 승객의 이름과 방 번호까지 외워 아는 체 할 정도로 살갑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친절과 서비스는 승객 334명(정원 382명)에 승무원 295명으로 거의 일 대 일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이 아닐까.

“진짜 24시간 룸서비스가 되는지 확인하려고 새벽 3시에 풀코스 식사를 시켰는데 30분 후 떡 벌어진 한 상이 선실에 차려졌어요. 그것 다 먹느라 혼났죠”

일행 중 한 명이 간밤의 얘기를 털어놨다. 승객들의 작은 손짓 하나 놓치지 않는 승무원들의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크루즈 재예약률 60% 이상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빨리빨리’가 몸에 밴 한국인에게 크루즈 여행은 어쩌면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다. 그런 승객들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다. 오전 7시30분부터 시작되는 오전 프로그램만 해도 ‘파워 워킹’ ‘요가와 에어로빅’ ‘기항지 안내 강의’ ‘스페인어 강의’ ‘스파 세미나’ ‘카드게임 브리지 강의’ ‘골프 클리닉’ ‘와인 테이스팅’ 등 배 곳곳에서 열리는 강의와 행사는 일일이 찾아가기 벅찰 정도다. 대부분의 승객들은 일어나 조깅 트랙을 돌거나 헬스, 에어로빅 등을 한 후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 맘에 드는 강의 한 두 가지 골라 듣는 정도다. 이도 저도 다 귀찮다면? 책 한 권 들고 수영장으로 간다. 선탠 의자에 길게 누워 독서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다. 그대로 낮잠으로 이어져도 좋고, 해수 풀로 ‘풍덩’하거나, 따뜻한 자쿠지에 몸을 맡겨도 좋다.

점심식사 역시 먹고 싶은 곳에서 하면 된다. 햄버거나 핫도그로 요기해도 되고, 야외 테라스에서 뷔페를 즐겨도 된다. 설사 식사시간을 놓쳤더라도 걱정할 것 없다. 룸서비스를 하면 되니까.

오후 프로그램도 놓칠 수 없다. ‘냅킨 접기’ ‘과일 모양내 깎기’ ‘탁구 대회’ ‘애프터눈 티타임’ ‘골프 퍼팅 대회’… 쉬고 싶어 온 여행이라면 선실 침대에 누워 TV를 보거나 영화 감상 도 좋다. 선실 밖 베란다에 나가 짠 바닷바람과 파도를 맞은들 누가 뭐라 하겠는가.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배 안을 돌아다니던 승객들도 저녁이 되면 다들 한껏 뽐낸 ‘신사와 숙녀’들로 변신한다. 매일 저녁 디너파티에는 드레스 코드가 정해지기 때문. ‘포말(formal)’ ‘인포말(informal)’ ‘캐주얼(casual)’. 포말인 경우 남성은 턱시도(넥타이 맨 짙은 정장도 된다), 여성은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인포말인 경우 남성은 재킷(넥타이는 자유)을 입어야 하며 여성은 드레스나 바지정장을 입어야 한다. 캐주얼 차림은 셔츠에 바지 등 편한 차림이면 된다. 그러나 청바지나 반바지 차림은 안 된다.

매일 저녁 만찬 메뉴와 와인 고르는 일도 재미를 더한다. 이탈리아, 프랑스, 지중해, 아시아식(실버시 위스퍼 식단엔 아직 한국 음식이 없다) 등 통상 2주일 치 식단을 짜기 때문에 적어도 2주일간은 같은 음식을 먹는 일이 없다. 여기에 소믈리에의 친절한 설명이 곁들인 와인까지.

오후 6시30분(7시)부터 시작한 만찬은 9시쯤 끝이 난다. 바로 선실로 돌아가 쉴 수도 있고,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음악회나 코미디쇼 등을 보러 가도 된다. 아니면 바에서 술과 댄스 여흥에 빠져도 된다. 디스코파티, 살사댄스 강습 등이 벌어지는 바에서 함께 어울려 춤과 술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국적 초월, 연령 불문하고 친구가 된다. 물론 이때도 모든 주류와 음료가 무료다. 술 좋아하는 사람에겐 귀가 번쩍 뜨일 정보. 하지만 어느 누구도 술 취해 주정 부리는 이 없다는 사실 또한 귀담아 들어야할 정보다.

실버시 위스퍼엔 작지만 카지노와 면세점도 있다. 블랙잭은 확률 게임이라며 마구 배팅했다간 거덜 날 수도 있으니 재미로 하는 게 좋겠다.

선상생활의 지루함, 기항지 투어로 달래

10월부터 4월까지 동남아시아는 몬순이 찾아온다. 우기란 뜻. 때문에 한바탕 비가 쏟아지는 가하면 파도가 거세지는 등 일기가 고르지 않다. 민감한 사람은 배 멀미에 시달리기도 한다. 멀미약을 미리 준비해가는 게 좋으나 그렇지 않다면 배에서 주는 멀미약도 많은 도움이 된다.

멀미까진 안 하더라도 며칠씩 배에 있으면 지루해질 수 있다. 이때쯤 기항지에 도착하게 된다. 항해 이틀째에 도착한 첫 기항지는 브루나이 무아라.

1788개의 방에 황금 돔이 번쩍이는 브루나이 왕궁과 브루나이 국립박물관, 로열 유물 전시관, 이슬람사원 등을 방문하는 3시간 코스의 투어를 마치고 배로 돌아왔다.

다시 이틀 후 도착한 두 번째 기항지는 베트남 호치민.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메콩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광경은 비행기 여행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장관이다. 호치민 항에 정박한 후 셔틀버스로 시내로 들어갔다. 베트남의 상징 오토바이 행렬은 자동차와 아슬아슬한 질서를 이루며 거리를 질주했다. 오토바이는 밤이 되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된다. 한적한 길거리나 공원 여기저기에 오토바이가 서있고 그 옆엔 어김없이 남녀들이 붙어있다.

호치민에서 크루즈 체험은 끝이 났으나 그 여파는 며칠이나 계속됐다. 육지멀미로 말이다.

▶ 문의 : 하나투어

(02-725-8888, www.hanatour.com)

실버시 위스퍼 제원 및 시설

- 건 조 : 2001년

- 규 모 : 2만8258톤, 10층

- 길 이 : 610피트

- 너 비 : 81.8피트

- 속 력 : 21노트

- 객 실 : 4~9층 194개(오우너 스위트, 그랜드 스위트, 로셀리니 스위트, 로얄 스위트, 실버스위트, 메달리온 스위트, 베란다 스위트, 비스타 스위트)

- 시 설 : 레스토랑 ‘더 레스토랑’ ‘라 테라자’ ‘파노라마 라운지’, 카페, 쇼 라운지(대형 공연장), 바, 와인 바 ‘르 샴퍄뉴’, 시가 바 ‘더 휴미도프’, 도서실, 인터넷 카페, 카드룸, 회의실, 카지노, 부티크, 수영장과 자쿠지, 스파, 미용실, 피트니스 센터, 골프퍼팅 연습장, 옵저베이션 라운지, 셀프 세탁실(다림질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