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밀착시킨 오른쪽 어깨가 묵직하다. 호흡을 멈추고 앞을 뚫어져라 주시한다. 순간 세상엔 정적이 감돌고, 근육과 힘줄엔 바짝 날이 선다. 팽팽한 긴장감. 준비됐다. “아!” 소리와 함께 바닥에서 주황색 접시가 튀어 오른다. “팡!” 정적을 깨는 총탄 소리. 산산이 부서지는 표적. 나와 총 그리고 표적이 하나가 된 순간의 짜릿함. 클레이 사격의 묘미다.

총을 들고 표적을 찾고 방아쇠를 당기고…. 클레이 사격은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아니에요. 총이 몸에 붙고 표적과 내가 하나가 될 때, 그 순간에 표적이 부서지는 것이죠.”

서울 태릉 이스턴캐슬 클레이 사격장서 만난 전제인씨(72)의 말이다. 올해로 30년째 사격을 즐겨온 그는 한창때 사냥에 빠져 전국의 산골짜기를 누비기도 했던 베테랑 명사수다. 그가 처음 사격을 시작한 것은 미 8군에 있는 사격장에서였다.

“처음엔 그냥 심심풀이였어요. 남자들이야 군대가서 사격을 해볼 테니 표적을 탄환이 꿰뚫을 때의 매력을 알겠죠. 근데 한 1년쯤 총을 쏘다 보니 총이 몸에 ‘붙기’ 시작하더군요. 그 때부터 ‘진짜’가 시작되는 겁니다.”

이후 70년대 말, 태릉에 사격장이 개관하면서부터 그는 이곳을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알다시피 사냥은 항상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사냥시즌엔 사냥을 떠나고, 비시즌엔 사격장을 찾아 총을 쏘는 거죠. 요즘엔 물론 체력이 좀 달리기도 하고…. 클레이 사격은 기본적인 체력만 되고 집중력만 유지하면 되니 처음 사격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기초를 닦는데 좋습니다.”

전씨와 함께 한 라운드를 마치고 숨을 돌리고 있던 유용식씨(69)는 “선배는 최고의 명사수였다”면서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이쪽에선 유명한 명사수인데 함께 라운딩 하던 사이”라고 전씨를 치켜세웠다. 유씨 역시 올해 20년째 클레이 사격을 즐겨온 ‘초고수’다.

“빠르게 튀어 오르는 표적을 산탄으로 산산이 조각내는 것이 매력이겠죠. 이런저런 고민들이 한 방에 날아갑니다. 어떤 무아지경 같은 거죠. 다른 사격 종목과는 달리 하늘과 숲을 배경으로 움직이는 표적을 맞춘다는 것도 좋아요. 그럼 말로만 말고 한번 따라오시죠. 보여드릴 테니.”

점잖고 나긋한 목소리로 클레이 사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던 전씨와 달리 유씨는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며 활기차게 기자를 사대(사격 위치)로 잡아끌었다.

사대에 오르자 넉넉하고 인자하던 두 사람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전씨가 먼저 사선에 올라 엽총에 산탄을 장전하고 허리께로 총을 늘어뜨렸다. “아!”하고 사격장 책임자에게 신호를 보내자, 표적이 빠르게 좌측과 우측에서 약간의 시간을 두고 튀어 올랐다. 총을 얼굴께로 민첩하게 가져다 대고 “팡팡!” 두 개의 접시가 거의 동시에 박살이 난다. 전씨에 이어 유씨의 차례. 마찬가지로 백발백중이다. 둘은 교대로 사선 안에 박스 모양으로 그려진 흰 선을 따라 몇 차례 자리를 옮겨가며 한 라운드를 마쳤다.

옆의 사대에선 박강철씨(40)와 김현주씨(41)가 다른 형태의 클레이 사격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이번에는 여러 각도에서 표적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표적을 쫓아다니면서 쏘는 게 아니에요. 나, 총, 표적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움직입니다. 표적이 팡 터져나가는 장면도 짜릿하지만, 마니아들은  그렇게 총과 하나가 되는 순간에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듯해요.”

라운딩을 마친 박씨는 클레이 사격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표현은 약간 다르지만 전씨나 유씨가 말해준 클레이 사격의 매력과 일맥상통한다. 경지에 오른 고수들이 갖는 깨달음(?)이기 때문일까.

김현주씨는 곧 있을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씨는 원래 패러글라이딩 등 각종 레포츠에 일가견 있는 스포츠우먼. 그는 “클레이 사격이 총을 사용하기 때문에 위험해 보이긴 하지만 사고가 거의 없는 안전한 레포츠”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만큼 클레이 사격이 집중력을 요하기 때문에 해이해질 구석이 없기 때문”이며 “체력적인 무리가 없어 여성들에게도 좋다”고 덧붙였다.

클레이 사격은 실탄이 장전된 총으로 날아가는 피전을 맞히는 레포츠다. 18세기경 귀족들이 날아가는 비둘기를 쏘던 ‘새 사냥’을 스포츠화한 것이다. 19세기에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비판을 받으면서 표적이 유리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송진과 석회 혼합물인 오렌지색 접시가 표적으로 사용된다. 클레이 사격의 유래로 인해 표적인 주황색 접시를 ‘피전(Pigeon, 비둘기)’이라 부른다.

클레이 사격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스키트, 트랩, 더블트랩의 세 종목이 있고, 대중화를 꾀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메리칸 트랩 종목을 합쳐 모두 네 가지 종목이 있다. 스키트는 1번부터 8번까지의 사대를 옮겨 다니며 좌우에서 번갈아 혹은 동시에 방출되는 표적을 쏘는 경기이며, 트랩은 1번부터 5번까지 사대를 옮기며 15개의 방출구에서 방출되는 표적을 쏘는 경기다. 더블트랩은 트랩과 룰은 비슷하지만 2개가 동시에 날아오른다. 표적은 10m쯤 떨어진 땅속에서 솟아올라 시속 80~90km의 속도로 80m정도 비행한다. 모든 종목의 기준은 25발로, 이를 모두 쏘고 나면 한 라운드가 끝난다.

전씨와 유씨가 보여준 건 스키트, 박강철씨와 김현주씨가 보여준 건 트랩으로 모두 난이도가 있지만 초보자들은 ‘아메리칸 트랩’ 종목으로 시작하면 된다. 이 종목은 시속 40km 속도로 일정하게 날아가는 접시를 맞추는 것이다. 임도훈 사격장 책임자는 “클레이 사격용 탄알에는 은단만한 산탄 300~400개가 들어있고 총구에서 발사되면 직영 50cm 정도로 넓게 퍼져 날아가기 때문에 표적을 맞히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면서 “특히 아메리칸 트랩은 궤도의 변화가 크지 않아 초보자들도 한두 시간 정도 연습하면 절반정도는 명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클레이 사격장은 전국 모든 도에 한두 곳은 있을 만큼 꽤 대중화 되어있으며 1라운드 스물다섯 발에 2~3만원 수준이면 즐길 수 있다. 겨울엔 동호인들이 사냥을 나가 사격장에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그 외의 기간엔 꽤 붐비니 여럿이서 갈 땐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다.

18세기경 귀족들이 날아가는 비둘기를 쏘던 ‘새 사냥’을 스포츠화한 것이다. 19세기에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는 것이 비판을 받으면서 표적이 유리공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송진과 석회 혼합물인 오렌지색 접시가 표적으로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