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마지막 거장들의 다채롭고 격조 있는 그림들의 향연
19세기 중엽 이후 일제 침략기 이전까지의 조선 말기는 격동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롭고 다채로운 문화가 꽃피었으나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 사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특히 서화 분야의 경우 당시의 몇몇 대가들을 제외하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평가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뚜렷한 전시도 개최된 바 없었다.

조선 말기에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기법이나 화풍, 그리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으로 그려진 서화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들 작품은 독특함과 새로운 시대의 미의식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회화사적으로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장승업을 중심으로 중국 청나라로부터 들어온 화풍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화원화풍(畵員畵風), 전통적 사의남종화(寫意南宗畵)의 세계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 일파, 작가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새로운 주제와 화풍들은 조선 말기 회화의 다채로운 모습을 잘 보여준다.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서 오는 2007년 1월28일까지 전시되는 ‘조선말기회화전(Paintings of Late Joseon Dynasty)’은 조선의 마지막 화가 27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아 이 시기 회화의 역동성과 다양함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몇몇 대가들의 작품은 물론 다양한 그림을 그렸던 화가들과 그들의 화풍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전시는 화원(畵員), 전통(傳統) 그리고 새로운 발견, 세 부분으로 기획됐으며, 화가의 개성과 그들의 작품, 그리고 화단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조선시대 회화의 한 축은 ‘화원’에 의해 형성되고 주도되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문인화가(文人畵家)들과 달리 화원은 궁중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되어 전문적으로 작품을 제작하던 직업 화가였다. 이들의 작품은 공적(公的)인 목적을 띠는 경우 화려한 색채와 섬세한 기교, 능숙한 솜씨로 그린 것이 대부분이며, 사적(私的)인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만의 예술적 독창성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장승업은 산수, 인물, 영모, 화훼, 기명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던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다. 그 전통은 안중식, 조석진 등에게로 이어졌다. 한편 채용신은 서양화법을 수용하여 초상화를 그렸고, 이형록은 책거리 그림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양기훈은 기러기 그림을 잘 그려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화원’의 공간에는 유숙과 이한철 등,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고 이끌었던 궁중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조선시대 회화를 더욱 풍요롭게 했던 한 축이 ‘문인화가’들이다. 조선 말기에는 화단에서 기존의 남종화풍이 더욱 지배적인 위치를 점했다. 특히 남종화의 기법을 단순히 본받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림의 형상(形似)보다 내면을 중시하는 사의성(寫意性)에 커다란 의미를 두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추사 김정희와 관계가 있는데, 그는 중국의 문물과 서화를 직접 접하고 청나라의 대표적인 문인서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독특한 이론적 기틀을 확립했다. 그의 화평(畵評)과 화론(畵論)은 화원과 문인화가는 물론 중인, 평민 출신의 화가들에게도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들 중에는 조희룡, 전기, 허련, 이하응 등 조선 말기의 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조희룡은 김정희의 제자 중 가장 연장자로 산수, 사군자에서 격조 높은 그림을 그렸으며, 전기는 김정희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했던 인물이었다. 또한 허련은 시서화 삼절로 일컬어지며 특히 호남화단의 수장으로 김정희의 화풍을 이어나갔다. 이하응은 묵란(墨蘭)을 잘 그려 김정희가 자기보다 뛰어나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김수철, 김창수 등은 새로운 기법과 화풍, 그리고 독특한 소재와 형식으로 변화를 주도했다. 이들은 전통 남종산수화에 바탕을 두었지만 사물을 간략하게 표현하거나 독특한 색감을 사용하여 새로운 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남겼다. 또 홍세섭은 부드럽고 맑은 먹을 사용하여 독특한 구성의 수묵사의화조화(水墨寫意花鳥畵)를 그렸으며, 이러한 다종다양한 변화는 당시의 회화를 풍요롭게 했다.

이 시기에는 한 화가가 한 가지 주제에 뛰어난 1인1기(一人一技) 현상이 눈에 띠게 나타났다. 남계우는 나비를 잘 그려 ‘南나비’라 불렸으며, 박기준은 부채를 전문으로 그려 이름을 날렸다.

이번 전시는 조선 말기 회화만을 집중 조명한 최초의 전시로, 유숙의 <홍백매도8곡병(보물 1199호)>, 김정희의 <반야심경첩(보물 547호)> 보물 2점을 포함하여 당시 회화의 큰 산맥을 이뤘던 서화가인 장승업, 허련, 김정희, 안중식, 김수철, 홍세섭 등의 대표작 80여 점을 통해 격변의 세월 속에서도 예술혼을 지켜 왔던 여러 화가들의 미의식과 작품세계를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