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화이트와인은 ‘그린와인’이나 ‘옐로와인’이라고 이름붙여야 맞는 것처럼 여겨진다. 아무리 봐도 흰색으로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렇게 보면 레드와인도 ‘퍼플와인’이 더 맞는 얘기다. 그런데 이름을 붙이는 것은 와인이 숙성되지 않은 상태로 마시던 과거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 청포도를 눌러 짜면 하얀 거품이 일면서 탁한 흰색의 액체가 된다. 이것이 여과, 숙성되기 전의 상태를 보면 그저 하얀색으로 보인다. 그래서 화이트와인으로 명명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와인 문화가 활발하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해 ‘레드와인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이트와인이 천대받고 있는 셈이다. 해물이나 부드럽고 간결한 소스의 고기 요리에도 그저 레드와인이다. 생선회에도 레드와인을 마신다. 순전히 일본의 영향이다. 한때 한국에서는 화이트와인이 커다란 인기를 끌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마주앙 모젤’을 기억할 것이다. 부드럽고 순한 맛, 레드와인처럼 떫거나 쓰지 않아 환영을 받았다.



 페로몬으로 행복감 증대시켜

 그러던 것이 80년대 후반부터 일본을 통해 와인 문화가 급속도로 들어오면서 와인이란 그저 레드와인을 마셔야 제격이라는 묘한 문화가 생성됐다. 그 유명한 ‘프렌치 패러독스’, 즉 고기와 유제품을 많이 먹는 프랑스인이 심장병과 동맥경화 발병증이 낮은 이유는 많은 레드와인 섭취 때문이라는 보도가 있었는데, 그 내용에 부화뇌동했던 일본인들의 거품 기질이 한국에도 적용된 셈이다.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몰랐다. 적당한 레드와인이 몸에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굳이 와인을 마시지 않고 포도를 먹는 것만으로도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발효시켜 술로 만들지 않아도 붉은 포도에는 이미 충분한 심장병 예방 물질이 있어서 포도주스를 마셔도 건강 효과를 충분히 누릴 수 있다.

 특히 포도의 씨앗에 장수 물질이 많다. 레드와인이 몸에 더 좋다고 하는 이유는 이 씨앗을 눌러 짜서 발효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도씨 기름을 먹는 것보다야 더 많은 장수 물질을 먹는다고 할 수 있을까. 포도씨 기름은 대형 할인점이나 백화점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화이트와인은 마치 ‘마셔 봐야 별 볼일 없는 와인’ 취급을 받고 있지만, 건강만을 생각한다고 해도 충분히 좋은 술이다. 대체로 도수가 낮아서 좋고, 특히 사람들의 행복감을 높여 주는 페로몬 물질이 레드와인보다 훨씬 많이 들어 있다는 얘기도 귀 기울일 만하다.

 막걸리에 맞는 안주가 있고, 소주에 걸맞은 안주가 대개 따로 있듯이 화이트와인도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마셔야 제 맛이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도 ‘집합의 원리’가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레드와인은 아무래도 어울리는 음식이 한정돼 있지만, 화이트와인은 어떤 요리에 먹어도 별 무리가 없다는 점이다. 즉 레드와인은 고기 요리나 진한 소스 요리, 화이트와인은 위의 요리를 포함한 모든 요리로 정리하면 별로 하자가 없다.

 그런데 화이트와인이야말로 계절의 술이다. 슬슬 날씨가 따뜻해지는 봄부터 마시기 좋다.  상온에서 마시는 레드와인과 달리 화이트와인은 차갑게 해서 마시게 마련인 까닭이다. 특히 갈증이 날 때 마시면 좋다. 특유의 상큼한 신맛이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 때문이다. 더위를 먹으면 생수에 시큼한 레몬을 짜 넣어 마시면 좋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밥상에 놓고 늘 마시기 좋은 술은 역시 화이트와인이다. 마시기 편한 술로 그만한 게 없다. 맥주야 냉장고에 넣어 두어야 하고 김이 빠지면 맛이 없다. 하지만 화이트와인은 아주 더운 날 말고는 굳이 차게 해서 마시지 않아도 되고, 값도 싼 데다 어떤 음식이든 소화해내 기특하다. 술에 음식이 치이지 않고 음식을 음식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특유의 신맛 때문에 꺼리는 경우가 많지만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다. 더울 때 차갑게 해둔 화이트와인 맛을 보고 나면 문득 아무 때나 화이트와인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러면 이미 마실 준비가 된 셈이다.

 화이트와인의 중요한 장점 한 가지 더 살펴보자. 레드와인은 그 맛의 복잡함과 깊이 때문에 어지간히 많이 마셔본 사람이 아니라면 혀가 까다롭게 반응한다. 다시 말해 ‘싸구려’를 마시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화이트와인은 특유의 덤덤함과 무심한 맛 때문에 싸구려도 인내심 없이 마실 수 있다. 엄청난 주세와 이윤이 붙어 와인 값이 금값인 한국에서 한 병에 5000원짜리 레드와인이라면 그 맛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화이트와인이라면 격식 있는 자리라도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Plus 이 달의 …

Wine

요리오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초 

Jorio Montrpulciano

d'Aburzzo 2001



 요리오는 고유 이름이고, 몬테풀치아노는 포도 품종이다.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초라고 명명돼 이탈리아 DOC의 오리진으로 이해하면 된다. 주의할 것은 이탈리아 와인에서 몬테풀치아노라는 이름이 두 가지란 점이다. 널리 알려진 토스카나의 명품 비노 노빌레 디 몬테풀치아노는 포도 품종이 아니라 지역 이름이다. 

 아부르초는 이탈리아 중부의 조용한 주의 이름이다. 최고 등급인 DOC는 2개다. 레드와인인 몬테풀치아노 다부르초와 화이트인 트레비아노 다부르초가 그것이다. DOC 와인이지만 대체로 싼 가격에 팔린다. 고가 와인은 거의 없다. 이탈리아 소믈리에협회에서 수여하는 고급 와인의 대명사인 ‘3 glasses' 에서 고작 두어개의 와이너리가 선정될 뿐이다. 토스카나나 피에몬테가 30~40개씩 받는 것과는 비교될 정도다(지역 안배 차원에서 그나마 그 정도 격차라고 봐도 무방하다). 보통 테이블와인으로 많이 마시는 와인이다.

 그런데 시고 떫은 데다 밍밍해서 고급 와인이 갖는 덕목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선입견을 깨는 와인이 바로 요리오다. 중간 정도의 보디에 균형감이 매우 좋으며, 기존 몬테풀치아노와는 달리 크리미한 느낌까지 있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섬세한 아로마가 있으며, 부담 없이 넘어간다. 혀와 입에 물리는 질감이 경쾌하면서도 품위가 있다. 

 품질 대비 가격까지 놀랍다. 개인적으로는 한두 상자 사놓고 마시고 싶은 전형적인 ‘밸류 와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문의 레뱅드매일 (02-2112-2935), 소비자가 4만1천원.

박찬일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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