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평화롭게만 다가오는 드넓은 초원에는 보이지 않은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초식동물들은 육식동물의 사냥에 노출돼 있는 탓에 주변 경계가 심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조그만 풀잎 소리에도 그들은 깜짝깜짝 놀란다. 사파리 자동차들의 거친 엔진음이 불과 2m 앞에서 부르릉거려도 육식동물들은 눈 하나 깜짝 않고 제 할 일을 하지만, 초식동물들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죽어라 달음박질을 놓는다. 철저히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야생의 초원은 그래도 수천 년의 생명을 이어오고 있다. 초식동물들에게도, 미약하지만 유일한 자기보호본능이라는 무기가 생명을 보존케 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생전 다시 올 수 있을까!”

요란한 모닝콜 벨소리가 새벽잠을 깨웠다. 깎은 듯한 언덕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롯지(Lodge)까지는 힘이 모자란 듯, 아침 햇살은 저 아래 분화구를 향해 조명처럼 비추고 있었다. 분화구 아래에는 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까만 점들이 구름처럼 떼를 지어 움직이는 게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눈으로는 전체를 볼 수 없는 광활한 초원, 응고롱고로(Ngorongoro) 분화구다. 남북 16km, 동서 19km에 걸친 이 분화구는 화구의 턱이 표고 2400m, 바닥의 표고 1800m, 깊이 600m로 세계 8대 신비 가운데 하나다. 면적만도 여의도의 11배에 달하는 264㎢. 비록 사진과 영상 속에서라지만 백두산과 한라산의 분화구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분화구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에서는 기린과 임팔라를 제외하면 동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동물들을 접할 수 있다. 다른 자연보호구역에 비하면 분화구 안에서 평생을 보내는 동물들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도 이곳의 장점이다.

한계령 굽이치는 도로와 같은 비포장 길을 따라 사파리 자동차는 덜컹거리며 600m 아래의 분화구를 향해 내려갔다. 본격적인 사파리가 시작된 것이다.

사파리(safari)는 ‘가서 무엇인가를 얻고 돌아온다’는 뜻의 스와힐리어(아프리카 원주민 언어). 아프리카 여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가 바로 ‘게임 드라이브 사파리(Game Drive safari)’를 줄여 부르는 사파리다. 야생동물이 동물원 같은 울타리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 자생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넓은 초원에서 야생동물을 찾는 것은 마치 숨바꼭질 놀이처럼 서로 숨고, 찾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때문에 야생동물을 많이 보면 사파리 게임에서 Win(승리)했다 하고, 반대로 많이 찾지 못하면 Lose(지다)했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초원에서 사나운 동물 5가지를 일컬어 Big5라고 한다. 사자, 표범, 코끼리, 코뿔소, 버펄로가 그것이다. 사파리에서 이들 5가지 동물을 보면 Win했다고 표현한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응고롱고로 분화구에 어느덧 밝은 햇빛이 가득했다. 낮은 구름이 깔렸던 구역이 걷히면서 시야도 한결 넓어졌다.

롯지에서 까만 점으로 보였던 무언가가 점점 뚜렷해지면서 군데군데 한 무리의 동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피해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사슴과의 톰슨가젤, 예닐곱 마리가 아닌 수백 마리가 넓은 초원을 차지하며 점점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얼룩말의 무리, 조물주 마지막 작품이라는 누 떼의 장관, 멀리 호수에 무리를 지어 내려앉은 플라밍고의 우아한 자태 등이 아시아로부터 온 이방인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개 모양의 동물 두 마리가 자동차를 향해 다가왔다. 하이에나다. 지저분한 외모에 버림받은 탕아처럼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그리 오랫동안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원래 무리를 지어 다니는 습성이 있다는 하이에나는 일행이 아프리카를 빠져나오기까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2시간여 동안의 응고롱고로에서의 사파리에 일행은 완전히 파김치가 되어 버렸다. 아침도 거른 채 비포장도로 위를 덜컹거리며 달리는 자동차에 몸을 맡긴 첫 사파리에 대한 기대는 뿌듯한 눈요기와는 달리 꼬르륵거리는 뱃속의 전쟁에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아침식사 후 응고롱고로를 뒤로 한 채 곧장 세렝게티 국립공원(Serengeti National Park)으로 이동했다. 세렝게티에 비하면 응고롱고로는 맛배기에 불과하단다. 흔들거리는 자동차에서의 4시간은 일행들을 모두 잠재웠다. 주인 잃은 머리가 자동차 유리에 부딪혀 쿵 소리를 내지만 감긴 눈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응고롱고로와는 달리 주변 어디에도 산이 없는 초원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언덕도 보이질 않았다. 오직 끝없는 지평선이 눈을 부시게 할 뿐이었다. 말로만 듣던 동물의 왕국 세렝게티다.

마사이어로 ‘끝없는 평원’이라는 뜻의 세렝게티는 동아프리카의 수많은 국립공원 가운데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이다. 면적은 숲을 포함해 1만4763㎢. 경기도 면적의 14배에 달한다. 아프리카에서의 사파리는 케냐의 마사이마라와 탄자니아의 세렝게티로 대표된다. 초식동물의 이동에 따라 이 두 지역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하는 게 사파리의 기본이다. 통상적으로 7월에서 10월까지는 동물들이 마사이마라에 몰려드는 반면 12월에서 3월까지는 세링게티로 몰려든다. 나머지 기간에는 마사이마라에서 세링게티로, 혹은 세링게티에서 마사이마라의 드넓은 사바나 초원으로 2~3개월에 걸쳐 이동을 한다. 사파리는 하루 두 차례에 불과하다. 기온이 40℃를 넘는 한낮에는 일부 초식동물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동물이 그늘에서 낮잠을 잔다. 때문에 새벽과 일몰 전 잠깐 사파리가 가능할 뿐이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세렝게티의 위용에 압도당한 일행은 그 이름처럼 한없이 펼쳐진 초원과 규모를 헤아릴 수 없는 누 떼의 어마어마한 장관을 실감했다. 누는 4~8월(특히 5월말~6월초)에 걸쳐 세렝게티 대평원에서 북쪽 마사이마라를 향해 풀을 찾아서 약 500km에 이르는 대이동을 하고 12월~1월에는 다시 세렝게티로 돌아온다.

곳곳에 산들이 버티고 있는 한반도에서는 볼 수 없는 세렝게티에서의 첫날은 온통 탄성뿐이었다. 지평선이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초원엔 오히려 황량함이 느껴졌다. 물론 산은 있었다. 군데군데 바위들도 야산 혹은 동산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시 끝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동물농장이란 표현을, 궁색하지만 빌려 올 수밖에 없다.

사자의 아침식사, 그리고 도열

여장을 풀고 오후 들어 나선 세렝게티에서의 사파리는 보물찾기였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면적에 퍼져 있는 숱한 종류의 동물을 찾아 사파리 자동차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뒤로 뽀얀 먼지를 잔뜩 흘린 채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동물은 쉽게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잔뜩 기대하고 왔던 거대한 무리의 각종 동물은 TV프로그램만의 몫인가 하는 절망감이 관광객의 가슴을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나무 그늘 아래서 팔자 좋은 오수를 즐기는 한두 마리의 사자, 사슴 모양의 예쁜 자태를 자랑하는 톰슨가젤과 임팔라,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얼룩말과 누 떼, 등만 드러내 놓고 물속으로 고개를 처박은 20여 마리의 하마, 가끔씩 도로를 점령하며 지나가는 버펄로 등만이 초조한 일행의 눈을 간질일 뿐이었다. 사자의 사냥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누와 임팔라 등 초식동물의 달음질과 얼굴에 잔뜩 피를 묻힌 채 사냥감을 먹어 치우는 사자, 먹다 남긴 사자의 사냥감을 게걸스럽게 처리하는 하이에나와 독수리 떼를 기대하며 아프리카를 찾았던 아시안의 눈에 이 같은 광경은 호사스러운 사치인가. 세링게티에서의 첫날, 일행의 가슴은 실망감으로 커다란 멍이 들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 괜한 단잠만 빼앗기는 것 아니냐는 불평불만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사파리 자동차는 먼지를 풀풀 흘리며 롯지를 출발했다. 새벽 6시.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한 탓에 아침 햇살이 따사로웠다. 더러 꾸벅거리며 졸기도 하고, 몇은 아예 코를 골며 단잠의 여운을 되찾으려 하는 동안 자동차는 20여 분을 달렸을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여섯 대의 자동차가 원을 그리며 멈춰 있는 광경이 목격되자 운전을 하고 있던 마닝고가 일행을 깨웠다. 사자가 막 사냥을 끝내고 한 마리의 누를 먹어 치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누의 뱃속에 고개를 처박고 아침 식사에 열중하고 있는 세 마리의 사자가 일행의 졸린 눈을 휘둥그레 하게 했다. 한 마리의 수사자와 두 마리의 암사자가 뒤엉켜 누의 가슴살과 뱃살을 먹어 치우는 광경은 어찌 보면 처참할 수도, 어찌 보면 군침이 돌기도 하는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사냥 장면은 놓쳤지만 사냥에 성공한 사자가 내장을 제거한 누를 2시간여에 걸쳐 맛깔스럽게 먹어 치우는 모습을 불과 2m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행운에 덩달아 포만감을 느꼈다. 특히 사자의 아침식사 장면도 장면이려니와 어느새 주변으로 몰려든 각종 청소부들의 도열은 사파리의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의례 나타날 것으로 기대했던 하이에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숱한 무리의 독수리가 주변 나뭇가지와 땅 위에 내려 앉아 사자의 조찬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한편 학과 비슷한 외모의 마라무스토 떼 역시 20여m 떨어진 땅 위에서 피범벅이 된 사자의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았는지 나타난 자칼은 잔뜩 겁에 질린 걸음걸이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혹시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지를 살폈다. 그러나 사자는 이들에게 조금도 나눠주지 않았다. 음식을 보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사자지만 나무 밑에 감춰 두고 이날 밤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자의 리얼한 아침식사 광경을 목격한 일행에게 더 이상 세렝게티에서의 사파리는 무의미했다. 모든 것을 다 본 것처럼 가슴 속에는 뿌듯함이 팽창할 대로 팽창해 있었다.

오후 사파리에서는 자동차 보닛까지 올라와 소변을 누고 달아나는 원숭이 무리, 해질녘 석양을 뒤로하고 어디론가 무리를 지어 가는 코끼리 떼, 나뭇가지에 퍼질러 누운 표범과의 레오파드, 형형색색의 이름 모를 온갖 종류의 새들, 드넓은 초원의 서편 하늘을 물들이며 마치 모든 것을 금방이라도 태워 버릴 듯 붉은빛을 뿜어내는 석양의 아름다움 등이 세렝게티의 웅장함과 신비스러움을 더해 주었지만 그것은 누를 먹어 치우는 사자의 아침식사 장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스릴과는 비할 바가 아니었다.

세렝게티는 관광객들에게 그 어떤 단정적인 표현을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아니라 몇 가지만을 가슴 속에 심어 주는 마력이 세렝게티의 또 다른 매력은 아닐까.

“살아생전 다시 올 수 있을까!”

세렝게티를 빠져나오는 동안 롯지의 방명록에 써 놓았던 글이 빈말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