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부인과 발레리노 남편이 단장과 안무를 맡고 있는 로맨틱한 발레단, 단원들이 월급 받고 보험도 드는 국내 최초의 민간 직업 발레단, ‘뽕짝’에 맞춰 ‘발레’를 선보이며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한 황당한 발레단. 바로 제임스 전 감독과 김인희 단장이 이끄는 서울발레시어터의 얘기다. 이들이 이번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발레로 표현한다고 한다. 과천에 있는 연습실에서 안무가 제임스 전(47) 감독을 만나봤다.
 “올해는 모차르트가 태어난 지 250주년 되는 해입니다. 그가 남긴 여러 오페라들 가운데 <피가로의 결혼>은 줄거리가 가장 재밌는 작품입니다. 또 프랑스혁명을 앞둔 유럽의 시대상을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기도 하고요.”

제임스 전 감독은 <피가로의 결혼>을 발레로 무대에 올리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피가로의 결혼>은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인 피가로와 백작의 시녀 쉬잔의 결혼을 둘러싼 에피소드들로 꾸며진 이야기다. 부인 로진에 대한 애정이 식은 백작은 쉬잔에게 구애를 펼치는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쉬잔과 피가로가 갖가지 묘책을 써서 백작을 따돌리고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다.

전 감독은 이러한 재치 넘치는 이야기를 몸의 언어인 발레로 역동적이고 코믹하게 표현하려 한다. 또한 관객들이 작품을 좀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도록 음악적인 요소, 연극적인 요소도 더 많이 불어넣으려 한다.

이를 위해 다른 발레공연에 비해 무대장치나 조명, 의상 등에 각별히 신경 썼다. 발레공연을 마술쇼와 같이 화려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끌고 가겠다는 얘기다. 사이사이에 <피가로의 결혼>을 작곡하며 갈등하는 모차르트와 그의 아내 역을 맡은 무용수도 등장해 재미를 더할 계획이다.

“영국이 축구의 종주국이라 해서 모든 나라가 ‘킥 앤 러시(영국의 축구 전술)’만을 하는 건 아닙니다. 브라질도 한국도 모두 고유의 스타일이 있잖아요?”

전 감독은 창작발레를 고집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발레의 시작이 서양이기에 부족한 점은 배워야 한다면서도, 우리만의 ‘무엇’ 없이 서양을 따라가기만 해선 그들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저는 예술을 음식에 비교하고 싶어요. ‘맛’있으면 되는 거죠. 우리가 파스타를 맛있게 먹는 것처럼 외국 사람들도 맛있는 비빔국수를 좋아합니다.”

전 감독은 또 발레의 기본이 갖춰져 있다면 형식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듯 발레도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발레엔 ‘이자’라는 게 없어요.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의 결과만 나오는 것이 발레입니다. 발레는 다른 예술 장르보다 투자에 비해 결과물이 훨씬 더 적습니다.”

전 감독은 “다시 태어난다면 발레는 안 한다”고 했다. 그만큼 고된 예술이란 얘기다. 하지만 발레를 배우러 달랑 2000달러와 가방 하나 들고 뉴욕으로 떠났던 회계학 전공자 제임스 전은 어느덧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무용가 중 한 명이 됐다. 그와 그의 아내가 젊음을 쏟은 서울발레시어터도 10년의 역사를 지닌 정상급의 발레단으로 거듭났다. 서울발레시어터의 노력이 담긴 환상적이고 유머러스한 발레 <피가로의 결혼>은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9월8일부터 9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