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뮤지컬’ 중 국내엔 아직 소개되지 않았던 <미스사이공>이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6월28일~8월20일)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9월1일~10월1일)에서 무대에 오른다. 소문으로만 듣던<미스사이공>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지컬 <미스사이공>은 1989년 9월 런던에서 초연된 후 지금까지 23개국 240개 도시에서 3100만여 관객을 동원해 흥행수입 9억5000만파운드(약 1조6863억원)를 기록한 대작이다. 1991년에는 브로드웨이에 진출해 2001년 폐막 때까지 4095회나 공연됐으며 세 번의 토니상을 비롯해 29개의 주요 극장상을 수상했다.

세계 뮤지컬계의 거물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하고 <레미제라블>의 클로드 미셸 숑베르가 작곡한 이 작품은 ‘현대판 나비부인’으로도 불린다.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 크리스와 베트남 여인 킴의 애절한 사랑을 스펙터클한 무대에 담았다. 특히 여주인공이 베트남인이라는 점과 베트남전쟁 당시의 상황이 잘 묘사돼 있다는 점에서 ‘4대 뮤지컬’ 중 가장 동양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또한 ‘4대 뮤지컬’ 중 판타지(<캣츠>와 <오페라의 유령>)와 오랜 과거(<레미제라블>)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가장 현실적인 뮤지컬로 꼽힌다.

많은 뮤지컬 마니아들이 작품의 하이라이트로 꼽는 ‘사이공 헬기 탈출’ 신은 볼거리들 중 압권이다. 모형헬기가 동원된 미국, 영국 무대완 다르게 국내 무대에선 3차원 입체영상을 동원한다. 무대 뒤에 숨겨진 프로젝터가 영상을 쏘고 거울에 반사된 이미지와 웅장한 음향이 어우러져 헬기 탈출 장면이 표현된다.

록과 팝, 동양음악이 혼재된 음악도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다. <캣츠>의 음악이 대중적이고 <레미제라블>과 <오페라의 유령>이 클래식에 가까운 것과는 차별화된다. 테마곡 ‘세상의 마지막 밤’, ‘난 여전히 믿어’, ‘내 모든 걸 줄게’, ‘해와 달’ 등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멜로디로 전 세계에서 애창되고 있다.

음악감독 박칼란은 19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다른 대작엔 거의 없는 징을 10개 이상 동원해 동양적 분위기를 물씬 풍길 계획이다. 개성 있는 등장인물들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를 찾기 위해 치러진 오디션 기간은 무려 4개월. 제작진은 술집에서 일하면서도 용기 있고 때 묻지 않은 여주인공 킴에 맞는 이미지의 배우를 찾기 위해 무척 고심했다고 한다. 300여 명의 지원자 중 눈에 띄는 사람은 맑은 목소리와 순수한 외모를 가진 김보경씨(24)였다. ‘연기가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자기의 선을 지킬 줄 안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이다. 주인공 크리스 역에는 스탠퍼드 의대를 중퇴하고 뮤지컬 배우의 길에 들어선 마이클 리(33)가 캐스팅 됐다.

김보경씨, 마이클 리 외에도 킴 역에 김아선씨(29)가 더블 캐스팅됐고, 엔지니어 역에 김성기, 존에 이건명, 투이에 하지원, 엘렌에 김선영 등이 함께 출연한다. 문의 02-518-7343

김학민 <미스사이공> 연출가

“인물들의 감정선을 놓치지 마십시오”

"'4대 뮤지컬’이란 말은 마케터들이 만든 말이겠죠. 하지만 <미스사이공>이 그만큼 규모나 음악, 스토리 면에서 다른 뮤지컬에 앞선다는 뜻이 아닐까 해요.”

김학민씨(44)는 자신이 연출하는 <미스사이공>에 대해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은 <오페라의 유령> 연출가와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의 저자로 유명한 그이지만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다.

“대학에서 연극반 활동을 했어요. 연극의 매력에 빠져있다 보니 한구석이 허전한 느낌이 들더군요. 대사만으론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그 ‘무엇’을 음악에서 찾으려 했던 것일까. 그는 대학을 마치곤 좀 엉뚱(?)하게도 음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객석>, <한국일보>, <KBS> 등에서 음악평론가로 인정받기 시작할 무렵 그는 훌쩍 미국으로 떠났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서다.

“오페라와 뮤지컬을 접했을 때 ‘이거다’ 싶었습니다. 연극과 음악의 형식을 아우르고 거기에 춤까지.”

김씨는 2000년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오페라연출실기 박사학위(DMA)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이후 그는 <코지판투테>, <사랑내기>를 거쳐 국내서만 24만 명이 관람한 <오페라의 유령>을 연출했다.

그가 <미스사이공>을 처음 접했던 곳은 2004년 미국 브로드웨이였다.

“이거 한국에 오면 ‘된다’ 싶더군요. 솔직히 <오페라의 유령>을 처음 봤을 때 가슴에 확 와 닿진 않았어요. 그런데 <미스사이공>은 달랐어요. 아름다운 음악과 꽉 짜인 스토리, 스펙터클한 무대는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감성 깊은 곳을 찌르는 면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되는 <미스사이공>은 영국과 미국의 <미스사이공>과 분명 다르다고 그는 강조한다. 2년 동안 ‘한국 초연’이 아닌 ‘세계 초연’이라는 마음으로 작품을 준비했다. 베트남전과 관련된 영화, 책, 다큐멘터리 등을 닥치는 대로 섭렵했다. 보다 사실적이고 전달력이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가 <미스사이공>을 준비하며 가장 고민했던 것은 ‘감정의 흐름’을 살리는 일이었다.

“주인공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사랑받아요. 반면에 크리스의 부인 엘렌은 어느 곳에서나 미움을 받죠. 킴에게서 크리스를 뺐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제 생각은 달라요. 엘렌은 크리스를 진정 사랑했기에 그의 과거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겁니다. 이 작품에선 악역이 없어요. 모두 사랑에 아파하는,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 처럼 그는 영문 대사의 행간을 읽고 또 읽어 작은 의미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김씨는 주목할 만한 인물로 ‘엔지니어’를 꼽았다. ‘엔지니어’란 뜻은 단지 ‘기술자’란 뜻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이끄는 힘(엔진)을 주는 사람(니어)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성을 중시하는 작품 안에서 때로는 얄밉게, 때로는 즐겁게 관객들과 소통하며 극을 이끄는 ‘엔지니어’ 역은 웬만한 배우는 절대 소화할 수 없는 역이라고 덧붙였다.

꼭 해보고 싶었던 <미스사이공>의 연출 외에도 지금 그가 가장 공들이고 있는 일은 경희대에서 연극영화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다.

“최근 들어 뮤지컬이 붐을 이루고 있어요. 반면에 아직 뮤지컬 공연을 위한 인재풀은 넓지 않습니다. 이론과 실기를 겸한 배우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갈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