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버스나 지하철 손잡이, 공중 화장실 문고리, 할인점 쇼핑 카트 손잡이, PC방 마우스 등을 수거해 세균 검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채취한 120개의 샘플 중 95%에 해당하는 114개에서 일반 세균이 10㎠ 당 7~1만7000CFU(Colony Forming Unit:세균밀도지수)가 검출돼 화제가 됐다.

균이 가장 많이 검출된 것은 쇼핑 카트 손잡이로 평균 1100CFU이었으며, PC방 마우스 690CFU, 버스 손잡이 380CFU, 화장실 손잡이 340CFU, 지하철 손잡이 86CFU이었다. CFU란 현미경으로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세균이 서로 뒤엉켜 현미경으로 보일 정도로 크게 집락을 이룬 것이다. 한 집락의 세균 수는 일정치 않지만 어찌됐든 10㎠당 수억~수십억 마리의 세균이 바글거린다고 보면 된다.

이 보도를 접한 사람들은 “세균에게 포위돼 산다”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그러나 세균의 입장에서 보면 이 세상은 ‘당연히’ 세균의 세상이다. 지구의 토양과 물과 공기는 물론이고 우리가 만지는 모든 물건, 사람의 손과 얼굴, 심지어 내장까지 세균이 점령하고 있다. 세균에 포위돼 살아온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그다지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지구상 99% 세균은 무해하다

세균이라면 모두 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병원성 세균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세균 중 99%는 그 자체로 무해하다. 이번 조사에서도 병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 등 병원균은 샘플의 5.8%에서만 검출됐다. 따라서 세균이 포위하고 있다고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갑자기 항균·살균제품이 불티나게 팔린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좀 지나치다는 느낌이다. 세균이 없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게 도대체 실익이 있는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세균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하며, 그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사람의 손을 경계해야 한다. 세균은 문고리, 손잡이, 전화기 등 생활 주변의 물건들을 매개로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진다. 이번 조사에서 포함되지 않은 엘리베이터 버튼, 도서대여점에서 빌린 책, 지폐 등에는 아마도 더 많은 세균이 있을 것이다. 깨끗해 보이는 사람의 한쪽 손에 6만 마리정도의 세균이 있다고 한다.

손에서 발견되는 피부 상재균(常在菌)으로는 스타필로코쿠스, 스트렙토코쿠스 등이 있으며, 이질균, 대장균, 살모넬라균, 장구균, 쉬겔라균, 각종 진균류(곰팡이) 등 병원균도 손에서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설혹 병원성 세균이 손에 묻어 있더라도 그것 자체로 병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호흡기나 입 등을 통해 인체 내부로 침투했을 때만 병을 일으킨다.

따라서 세균과 더불어 사는 가장 중요한 지혜는 철저한 손 씻기다. 손 씻기만 잘해도 감염성 질환의 70%는 막을 수 있다. 의사들은 하루 8번 손 씻기를 권한다. 특히 화장실을 다녀온 후, 외출에서 돌아온 직후, 기저귀를 갈고 난 후, 환자와 접촉한 후, 식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

손을 씻을 때는 비누 거품을 충분히 내서 손가락 사이사이와 손톱 밑까지 철저하게 씻어야 한다. 비누로 깨끗하게 씻으면 세균은 거의 100% 제거되는데 대부분의 사람은 손바닥과 손등만 대충 씻기 때문에, 미국의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물로만 씻을 경우 세균의 60%, 비누로 씻을 경우 80%만 제거된다고 한다.

세균과 더불어 살기 위한 두 번째 지혜는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세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무리 조심한다 하더라도 세균과의 접촉을 100% 차단할 수 없다. 세균을 의식하다 보면 맨 손으로 문고리도 못 만지고, 다른 사람과는 악수도 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뒤 손대신 몸으로 문을 밀고 나온다. 이것은 강박장애 등 일종의 정신질환에 해당한다. 때에 따라선 세균과 당당하게 ‘맞짱’을 떠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평소 건강을 다져서 면역력을 증강시켜야 한다.

면역력을 키우자

면역력 증강은 어떻게 보면 손 씻기보다 훨씬 중요하다. 똑 같은 공간에서 호흡을 했는데 어떤 사람은 감기(물론 감기는 세균이 아니라 바이러스지만)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안 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의 면역체계는 일상생활을 통해 접촉하는 웬만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 병원체를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피곤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면역력은 급격히 떨어지고 병에 걸리게 된다. 좀 무리를 해서 피곤하면 갑자기 잇몸에서 피가 나거나, 혓바늘이 돋거나, 구내염(口內炎)이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갑자기 세균에 감염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존재하던 구강 내 세균이 인간의 허점을 틈타서 공격을 한 결과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신경에서 방출되는 호르몬이 혈류 속으로 들어가 병원균들을 파괴하는 면역 체계 세포들의 활성을 억제하므로 질병에 걸린다는 사실이 최근 오스트레일리아 연구팀의 연구 결과 밝혀졌다.

셋째는 음식이다. 생활환경의 개선으로 세균이 인간에게 침투하는 고전적인 경로, 예를 들어 재래식 변기나 우물 등은 대부분 차단됐다. 그러나 아직도 세균들이 유용하게 이용하는 도구 중 하나가 바로 음식이다. 음식을 만들고 유통하고 보관하고 섭취하는 과정에서 세균이 침투해서 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O-157균 같은 것들도 대부분 음식을 매개로 하고 있다. 이질균, 살모넬라균, 황색포도상구균 등의 병원균들도 대부분 음식을 매개로 병을 일으킨다.

음식을 통한 세균 감염을 막으려면 철저한 식탁안전이 필요하다.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주방용품과 식기를 철저하게 소독하고, 음식을 조리할 땐 반드시 손을 깨끗이 씻고, 조리된 음식과 조리되지 않은 음식의 접촉(예를 들어 날계란을 만진 손으로 나물을 무치거나, 날고기를 쓴 칼로 계란말이를 자르는 것 등)을 차단하고, 조리한 음식은 즉시 먹되 보관할 경우엔 10℃ 이하에서 보관하고, 보관했던 음식을 먹을 때는 다시 뜨겁게 가열하는 등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사소한 수칙’들을 지켜야 한다.

건강에 대한 정보가 홍수를 이루면서 건강염려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 이들에겐 세상의 모든 것이 두려움의 대상이다. 무책임한 사람들이 뚜렷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퍼트리는 그 숱한 가능성들에 모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제대로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사람을 그렇게 나약하게 창조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세균 등 주변의 위해 요인을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인 건강·위생 관리로 그것을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