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밍(易茗)이 작사한 ‘하오한거’. 모든 구절이 중국음의 끝소리 ‘iu’ 또는 ‘ou’로 압운돼 있다. 사진 홍광훈
이밍(易茗)이 작사한 ‘하오한거’. 모든 구절이 중국음의 끝소리 ‘iu’ 또는 ‘ou’로 압운돼 있다. 사진 홍광훈

동양 최고(最古)의 시가집인 ‘시경’은 다음의 네 구절로 시작한다. “관관저구, 재하지주. 요조숙녀, 군자호구(關關雎, 在河之. 窈窕淑女, 君子好).” 여기서 붉은 글자가 ‘운(韻)’이다. 이어지는 “참치행채, 좌우류지, 요조숙녀, 오매구지(參差荇菜, 左右之. 窈窕淑女, 寤寐之)”에서의 운은 허사인 ‘之’ 앞의 두 글자다. 앞과 방식이 조금 다르다. 제3장은 “구지부득, 오매사복. 유재유재, 전전반측(求之不, 寤寐思. 悠哉悠哉, 輾轉反)”이다. 압운(押韻) 방식이 제1장과 같지만, ‘입성(入聲)’을 사용해 변화를 보였다. ‘입성’은 우리 발음으로 ‘ㄱ,ㄹ,ㅂ’ 세 받침이 있는 글자로, 읽을 때 막히는 느낌을 주므로 시름과 답답함 등의 감정을 나타낼 때 많이 쓴다. 이 ‘관저(關雎)’ 편은 이렇게 5장까지 이어진다. 300편의 작품은 모두 이런 부류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압운의 기교는 한 음절의 끝소리가 일정한 위치에서 반복되게 함으로써 시가 형식을 아름답게 만들 뿐 아니라 읽고 듣는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는 작용도 한다. 

‘시경’의 형식은 후대로 이어져 발전을 거듭했다. 본래의 주조(主調)인 사언(四言)에서 오언과 칠언으로 변모해 갔지만, 압운 방식은 그대로 수용됐다. 초당(初唐)에 이르러 격률이 엄격한 새로운 형식의 ‘근체시(近體詩)’가 형성됐다. 모든 작품은 짝수 구절에 압운하되, 칠언시는 첫 구절에도 압운하는 것이 원칙이고 오언시는 그 반대다. 4구절의 ‘절구(絶句)’는 이른바 ‘기승전결(起承轉結)’로 구성되고, 8구절의 율시(律詩)는 제3, 4구절과 제5, 6구절이 각각 대구(對句)를 이뤄야 한다. 이와 함께 사성(四聲)을 ‘평성’과 ‘측성(仄聲)’으로 나누어 조화롭게 교차시킨다. 이와 같은 형식에 의해 시가가 더욱 품격 있고 멋스러워지는 것이다. 1000년 이상 지켜진 이 격률은 현대에 들어와 쇠락했지만, 압운의 전통만은 아직도 건재하다. 자유로운 형식의 현대시에서는 압운이 무시되는 경우도 많으나 전통을 중시하는 시인들은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 전통은 대중가요에서도 흔히 발현된다. 일례로 중국의 인기 가수 류환(劉歡)이 부른 ‘하오한거(好漢歌·사나이 노래)’는 ‘류(流), 두(斗), 주(酒), 주(走), 유(有), 두(頭), 후(吼), 수(手), 주(州)’로 압운돼 있다.

사진 홍광훈
사진 홍광훈

이와 같은 중국적 시가 형식은 언어 구조가 유사한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성행해 왔다. 13세기 이탈리아에서 비롯된 ‘소네트(sonnet)’가 대표적 예다. 이 14행의 정형시에는 나라별로 몇 가지 압운 방식이 있다. 그중 영국은 14행을 4·4·4·2행의 4장으로 나누고 앞의 3장은 제1행과 제3행, 제2행과 제4행이 각각 같은 운을 쓰며 각장의 운을 달리한다. 마지막 두 구절은 당연히 같은 운을 쓴다.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의 ‘Soul and Body’는 “earth, array, dearth, gay” “lease, spend, excess, end” “loss, store, dross, more” “men, then”이 운을 이룬다. 

서양 시가의 압운 전통 또한 대중가요에 적지 않게 반영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애청되는 영국의 삼 형제 그룹 비지스(Bee Gees)의 ‘Holiday’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이 노래에는 “worthwhile, smile” “game, same” “said, head” “see, blind, me, unkind” “day, say” 등으로 운이 맞춰져 있다.

이에 반해 한국과 일본의 시가는 언어 체계상 압운은 어렵지만 나름의 독특한 형식을 정립시켰다. 시조(時調)처럼 주로 글자 수로 음률을 조절한다. 일본의 와카(和歌)는 ‘5·7·5·7·7’의 다섯 구절, 하이쿠(俳句)는 ‘5·7·5’의 세 구절로 구성된다. 하이쿠에는 반드시 계절을 나타내는 ‘키고(季語)’를 넣어야 한다. 17세기 마쓰오 바쇼(松尾芭蕉)가 쓴 “후루이케야, 카와즈토비코무, 미즈노오토(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おと: 오랜 연못에, 개구리 뛰어드는, 물의 소리)”에서 ‘카와즈(かわず·蛙)’는 봄을 상징한다.

중국에서 압운 전통은 시가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고전에 나타나며, 일상의 언어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역경(易經)’에서는 ‘수괘(需卦)’의 “수어혈, 출자혈(需於, 出自)”, ‘동인괘(同人卦)’의 “승기고릉, 삼세불흥, ⋯ 승기용, 불극공(升其高, 三歲不 ⋯ 乘其, 弗克)” 등 여러 예가 보인다. 괄목할 만한 것은 인위적인 형식을 철저히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노자(老子)’는 절반 이상이 잘 다듬어진 운문으로 이루어졌다. “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형, 고하상경(有無相, 難易相, 長短相, 高下相)” 등의 예가 수두룩하다. 중국 성어나 속담 속에도 압운된 예가 자주 보인다. “끊을 때 끊지 않으면 도리어 그 화를 당한다(當斷不, 反受其)”거나 “멀리는 하늘가에 있고, 가까이는 눈앞에 있다(遠在天, 近在眼)”거나 “수재는 책에 대해 말하고 백정은 돼지를 말한다(秀才談, 屠夫談)”는 말이 그렇다. 중국 관광에서 자주 듣는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上有天, 下有蘇)”는 관용어도 운을 붙여 만든 것이다. 

이처럼 잘 다듬어진 형식은 내용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미감을 준다. 또한 기억을 용이하게 하는 작용도 한다. 이러한 고유의 형식은 언어 체계가 다른 외국어로 번역할 때 그 묘미를 그대로 옮길 수 없는 한계가 있어 아쉬운 부분이다. 

형식은 내용과 함께 한 사물의 안팎을 이루고 있으므로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내용은 형식이 없으면 전달될 수 없고 존재하기도 어렵다. 형식 또한 내용이 없으면 아무 소용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도 본바탕과 후천적 노력으로 이룩한 내면세계는 훌륭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거칠거나, 내면이 보잘것없는데도 가식적인 허세를 부린다면 남의 눈에 좋게 보일 수 없다. 이를 두고 공자(孔子)는 “꾸밈이 본바탕을 앞선다면 겉치레가 되고, 본바탕이 꾸밈을 앞선다면 거칠어진다(文勝質則史, 質勝文則野)”고 했다. 따라서 “꾸밈과 본바탕이 서로 조화를 이룬 다음에 군자가 될 수 있다(文質彬彬, 然後君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자공(子貢)도 “꾸밈이 본바탕이요, 본바탕이 바로 꾸밈이다(文猶質也, 質猶文也)”라고 풀이했다. 결국 내용과 형식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실질에 어울리지 않게 형식을 과도하게 꾸며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의 언행에서는 물론이고 일반의 일에서도 그렇다. 전자의 경우에는 당연히 경계해야 하지만, 후자의 ‘번문욕례(繁文縟禮)’도 지양(止揚)해야 마땅하다. 이 점에 대해서 역시 공자는 “의례라 하는 것이 옥과 비단을 말하는 것이며, 음악이라 하는 것이 종과 북을 말하는 것이겠는가(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라고 하여 실질보다 겉치레에 치우친 현실의 여러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또한 “의례는 사치스러운 것보다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장례는 쉽게 잘 치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也寧戚)”는 말로 지나친 겉치레 때문에 실질의 중요함이 잊히지 않도록 강조한 바 있다. 

색과 향과 맛을 모두 갖춘(色香味俱全) 요리에 영양이 부족하다면 좋은 먹을거리라 할 수 없고, 영양가는 높지만 외형적인 면이 볼품없다면 사람들이 즐겨 찾지 않는다. 인간관계에서도 본바탕이 훌륭하고 뛰어난 재능과 학식을 갖췄다 하더라도 언행에서 예의와 절도가 결여됐다면 남의 미움을 받을 수 있고, 그 반대라면 경원(敬遠)의 대상이 된다.

요컨대 모든 부분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경계하고 중용(中庸)의 도를 지키는 일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지상과제라 해도 좋을 것이다. 


▒ 홍광훈
문화평론가, 국립대만대학 중문학 박사, 전 서울신문 기자, 전 서울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