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나는 퍼팅을 하자마자 공이 홀에 들어가기도 전에 홀을 향해 걸어가는 ‘워크 인(walk-in) 퍼트’로 유명하다. 사진은 2019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케빈 나(왼쪽에서 두 번째)와 동반 플레이를 하던 타이거 우즈가 ‘워크 인 퍼트’를 흉내내자 케빈 나가 환하게 웃으며 우즈와 주먹을 부딪치는 모습. 지난 2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던 우즈는 빠르게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WAAC
케빈 나는 퍼팅을 하자마자 공이 홀에 들어가기도 전에 홀을 향해 걸어가는 ‘워크 인(walk-in) 퍼트’로 유명하다. 사진은 2019년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케빈 나(왼쪽에서 두 번째)와 동반 플레이를 하던 타이거 우즈가 ‘워크 인 퍼트’를 흉내내자 케빈 나가 환하게 웃으며 우즈와 주먹을 부딪치는 모습. 지난 2월 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했던 우즈는 빠르게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WAAC

재미교포 골퍼 케빈 나(38·한국 이름 나상욱)는 2004년 당시 최연소 멤버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 데뷔해 지난 1월 소니오픈까지 5승을 거두었다. 그는 2011년 투어 첫 승까지 8년이 걸렸고 이후론 7년, 10개월, 5개월, 15개월 만에 각각 우승을 추가했다. 최근 PGA 투어에서 4시즌 이상 연속 우승 기록을 이어가는 선수는 더스틴 존슨(미국)과 저스틴 토머스(미국), 욘 람(스페인), 브라이슨 디섐보(미국), 케빈 나 등 5명뿐이다.

장타자가 아닌 평범한 체격의 그는 정글 같은 PGA 투어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PGA 투어 열여덟 번째 시즌을 뛰는 케빈 나에게 몸집을 헐크처럼 불려 초장타를 치는 디섐보의 ‘벌크업 혁명’이 일어나고 첨단 데이터 분석 기법을 바탕으로 우승자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PGA 투어의 인사이드 스토리를 들어보았다.


골프 전성기 5년 끌어내린 황금세대

최근 3개 대회 우승자는 모두 미국의 20대였다. 3월 1일(이하 한국시각) 세계 6개 골프 단체가 공동 주관하는 월드골프챔피언십(WGC) 워크데이 챔피언십에선 콜린 모리카와(24)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3월 8일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선 디섐보(28)가 파 5홀에서 호수를 넘기는 377야드 대포를 쏘며 정상에 올랐다. 3월 15일 ‘제5의 메이저’라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선 크지 않은 체구에도 임팩트 순간 양발 뒤꿈치를 들어 올리며 온몸의 파워를 싣는 ‘까치발 장타자’ 저스틴 토머스(28)가 우승 상금 270만달러(약 30억원)의 주인공이 됐다. 모리카와는 스물넷 나이에 이미 메이저대회 1승을 포함해 PGA 투어에서 4승을 거두었다. 스물여덟 동갑인 디섐보와 토머스는 각각 8승과 14승을 기록 중이다. 한 번 승기를 잡으면 놓치지 않는 토머스의 경기 운영 능력을 보면 이미 베테랑의 경지가 느껴진다.

3월 16일 발표된 남자프로골프 세계랭킹을 보면 세계 10위 이내 톱 랭커들의 평균 나이는 29세가 약간 넘는다.

세계 1위 더스틴 존슨(37)과 10위 웹 심슨(36)만 30대이고 나머지는 모두 20대 선수들이다. 특히 ‘황금세대’라 불리는 1993~94년생인 토머스, 욘 람(27), 디섐보, 잰더 쇼플리(28)가 톱 랭커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최근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는 전 세계 1위 조던 스피스(28)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황금세대의 일원이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1980년부터 2015년까지 PGA 투어 선수들의 상금 수입을 조사해 2016년 발표한 적이 있다. 이 조사를 보면 평균적인 PGA 투어 선수는 23세 때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입문 초기 서서히 상승하다 25세부터 33세까지는 상금 수입이 연평균 8%씩 늘어났다. 33세에 정점을 찍고 34세부터 49세까지는 해마다 4%씩 상금 수입이 줄었다. 투어 입문 10년 차인 33세에 그동안 쌓인 경험과 기량이 만개하면서 전성기를 맞는다고 볼 수 있는 자료다.

그런데 이제 27~28세인 PGA 투어의 황금세대가 몇년전부터 PGA 투어를 빠른 속도로 장악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스물네 살 모리카와까지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한국도 세계 랭킹이 가장 높은 두 선수가 23세의 임성재(18위)와 26세의 김시우(48위)다.


지난 1월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오픈에서 PGA 투어 통산 5승째를 거둔 케빈 나는 “아무리 애써도 우승을 못 하던 선수에서 우승에 익숙한 선수로 성장한 비결은 경험과 자신감, 행복한 가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WAAC
지난 1월 하와이에서 열린 소니오픈에서 PGA 투어 통산 5승째를 거둔 케빈 나는 “아무리 애써도 우승을 못 하던 선수에서 우승에 익숙한 선수로 성장한 비결은 경험과 자신감, 행복한 가정이다”라고 말했다. 사진 WAAC

우린 경험을 믿는데 이들은 숫자를 믿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케빈 나는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데이터 골프가 정상급 선수가 되는 데 필요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요즘 20대 초반의 선수들이 나오자마자 잘 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엔 자신이 원하는 드라이버 하나를 찾으려고 해도 이것저것 쳐보면서 탄도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고, 원하는 헤드 무게를 얻으려 납도 붙여보고 어마어마한 노력을 했어요. 그것도 감으로 고르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요즘엔 측정 장비인 트랙맨 갖다 놓고 가장 똑바로 멀리 가는 공이 나오는 이상적인 수치가 나올 때까지 테스트해요. 그것도 다양한 샤프트와 드라이버 헤드를 갖다 놓고 나사만 돌리면서 그 자리에서 수백 개의 드라이버 모델을 시험해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예전엔 직접 쳐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코스 경험이 아주 중요했어요. 그런데 요즘 야디지북이나 그린북을 보면 너무 정확해요. 그리고 요즘엔 선수들이 통계 전문가를 고용해서 예를 들어 어떤 골프장의 어느 파 5홀에선 2온을 시도하는 것과 레이업을 해서 3온을 하는 것 중 어느 게 버디 확률이 높은지까지 조사를 해요. 이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모든 대회의 컷 스코어(1·2라운드 중간합계 스코어로 3라운드 진출자를 가리는 기준 스코어)가 좋아지고 있어요. 한 대회에선 컷 스코어가 7언더파까지 나온 적이 있어요. 선수들 사이에서 ‘이건 미친 스코어’라는 이야기가 나왔죠.”

1년도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몸무게를 20㎏ 이상 불려 400야드 초장타를 치는 디섐보는 이런 데이터 골프의 상징이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는 장타를 위해선 헤드 스피드를 끌어올려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헐크처럼 몸집을 불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데이터를 기준으로 자신의 몸을 실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는 PGA 투어에서 힘이 달리는 베테랑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1년에 50개 대회가 열리는 PGA 투어에서는 자신의 장점을 특화할 수 있는 코스들이 있다. 비거리보다는 정확성과 섬세함이 빛을 발하는 곳이다. 퍼팅과 쇼트게임 능력이 승부를 좌우한다.

그는 “우승은 절대 쉽지 않다. 나도 오랜 시간 준우승 전문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실력을 쌓고 오히려 골프는 인생의 일부일 뿐이라는 마인드를 갖게 되면서 여유를 갖게 됐다”고 했다. 그는 또 자신에게 맞는 클럽을 발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스윙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드라이버 비거리와 정확성이 크게 좋아지면서 우승 경쟁력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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