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궁 앞에서 마리아(줄리 앤드류스 분)가 아이들과 노래하고 있다. 사진 IMDB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미라벨 궁 앞에서 마리아(줄리 앤드류스 분)가 아이들과 노래하고 있다. 사진 IMDB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맥을 넘으면 하얗게 눈이 쌓인 알프스의 높은 봉우리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구름을 뚫고 나가면 어느새 봄이 온 듯, 듬성듬성 눈이 녹아내린 골짜기가 보인다. 계속 카메라 시선을 따라가면 지구본을 빨리 돌린 것처럼 저 멀리 파란 하늘이 열리고 한여름의 푸른 들판과 호수가 펼쳐진다.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하늘 아래라고 믿기 어려운 자연의 다채로운 모습이다.

오스트리아의 아름다운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 뒤 다시 언덕을 오르면 온통 초록으로 뒤덮인 산마루에서 마리아가 노래한다. 세상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마리아는 샘물처럼 솟아나는 기쁨을 노래한다. 마음 깊은 곳에 정체 모를 아련한 그리움이 자리하고 있지만, 삶은 그로 인해 더 소중하고 아름다워 보일 뿐이다. 성당의 종소리가 바람에 실려 와 넓게 울려 퍼진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 산에서 뛰어 내려간다. 또 기도 시간에 늦어버린 것이다.

시냇물처럼 재잘대고 웃고 노래하며 춤추듯 뛰어다니는 마리아, 주머니 속 송곳처럼 감춰지지도 않고 길들일 수도 없는 예비 수녀의 밝은 천성은 규율을 중시하는 점잖은 수녀들에겐 골칫덩이다. 그러나 ‘파도를 억지로 잠재울 수 없고 달빛을 손안에 넣을 수 없다’는 걸 잘 아는 원장 수녀는 가정교사로 일해보라며 폰 트랩 해군 대령의 집으로 마리아를 보낸다.

눈앞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을 집어 드는 건 선택이라 하지 않는다. 수녀가 되기를 자원했지만, 아직 알고 싶은 것도, 배워야 할 것도 많은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는 것, 꼭 수녀가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더 어울리는 일, 그녀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할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원장은 판단한 것이다.

폰 트랩 대령은 근사한 외모와 품격과 예의를 갖췄으면서도 찬바람이 쌩쌩 도는 사람이었다. 다섯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은 이미 열한 명의 가정교사가 포기하고 나갔을 정도로 대책 없는 개구쟁이들이었다. 아내를 잃고 슬픔을 내비치지 않으려던 대령이 일부러 아이들을 차갑게 대하며 어리광 부릴 기회를 주지 않은 탓이었다.

아버지의 절제된 사랑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마저 드러낼 수 없던 아이들은 햇빛을 바라는 새싹처럼, 솔직하고 밝은 마리아의 품으로 이내 안겨든다. 마침 대령이 한 달간 집을 비우자 마리아는 자연 속에서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한다. 오랜만에 아이들은 생각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마리아와 함께 이야기하고 크게 웃고 즐겁게 노래한다.

재혼 상대자인 슈나이더 남작 부인과 함께 돌아온 대령은 한결 밝고 건강해진 아이들을 보고 놀라지만 자신이 정한 규칙을 어기고 아이들을 상스럽게 풀어놓았다며 마리아를 질책한다. 하지만 남작 부인을 환영하기 위해 마리아와 함께 준비한 아이들의 합창을 듣고 감동한다. 아내를 보낸 후 닫아뒀던 마음을 처음으로 열고 그도 노래한다. 대령은 아이들을 다시 따뜻하게 안아주고 마리아도 신뢰하게 된다.

대령의 친구 맥스는 아이들의 노래 실력에 감탄하며 그가 기획하고 있는 합창 대회에 출연할 것을 제안한다. 대령은 광대처럼 사람들 앞에 아이들을 세우지 않겠다며 반대한다. 대신 남작 부인의 환영식을 겸해 성대한 파티를 연다. 아이들의 깜찍한 노래는 초대받은 손님들의 찬사를 받는다.

하지만 그날 밤, 마리아는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도망치듯 수녀원으로 돌아간다. 대령과 잠시 춤을 췄을 때, 왜 심장이 빨리 뛰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을까? 오직 신을 사랑하고 신을 찬미하고 싶어서 수녀가 되길 바랐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원할 수 있는 것일까? 왜 그 사람 곁에 있고 싶은 것일까? 처음 느낀 감정이 당혹스러운 마리아는 기도실에 틀어박힌다.

마리아의 마음을 알게 된 원장 수녀는 “사람에 대한 사랑도 신에 대한 사랑만큼 소중한 것”이라며 “문제가 있다면 도망치지 말고 똑바로 마주 서서 자신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마리아가 떠난 뒤 아이들은 생기를 잃는다. 남작 부인과 결혼하기로 한 대령의 가슴도 허전하긴 마찬가지다. 마음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확인하기 위해 돌아온 마리아를 아이들은 두 팔 벌려 반긴다. 대령도 그녀의 부재로 깨달은 사랑을 고백한다. 신과 자연과 노래를 사랑했으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 아련하게 드리웠던 그리움이 실체를 드러낸 지금, 마리아는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망설임 없이 선택한다.

사랑은 세 사람이 공유할 수 없다.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제일 먼저 눈치챈 남작 부인은 현명하게 그들을 떠난다. 마리아와 대령은 아이들과 수녀들, 친구와 지인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한다.

대령과 마리아가 신혼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점령되고 독일군은 대령에게 강제 징집 명령을 내린다. 맥스는 이런 때일수록 합창 대회를 성공시켜 오스트리아의 자긍심을 지켜야 한다며 트랩가의 아이들을 무대에 세우려 한다. 여행에서 돌아온 대령은 맥스의 바람대로 아이들을 대회에 내보낼 마음도, 히틀러의 명령에 따라 독일군이 될 생각도 없다. 그는 독일 치하를 벗어나기 위해 국경을 넘을 결심을 하고 가족과 함께 늦은 밤, 집을 나선다. 그러나 감시하고 있던 독일군이 그들의 앞을 막아선다. 폰 트랩 대령 가족의 운명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아름다운 노래들이 함께하는 명작

‘사운드 오브 뮤직’은 마리아 폰 트랩 여사의 자서전 ‘트랩 가족 합창단 이야기’를 각색,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한 뮤지컬을 로버트 와이즈 감독이 1965년 영화화한 작품이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도레미 송’ ‘에델바이스’ 등 아름다운 노래들이 함께하는 즐거운 명작이다.

여긴 밤이지만 지구 반대쪽은 낮이듯, 이곳에 눈보라가 친다고 저 산 너머에 꽃이 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 아는 지식, 여태껏 경험한 세상이 전부일 리 없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산을 다 올라볼 수도, 그렇게 인생을 낭비할 필요도 없다.

다만, 마음이 진실하게 원하는 것에는 귀 기울여야 한다. 거기에 행복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바라는 것을 정직하게 선택하고 기쁨을 느끼고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신에게 드리는 진실한 기도이며 신이 내리는 축복이 아닐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김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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