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레터’를 수도 없이 봤다. OST는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카세트에서 아이팟으로, 아이팟에서 아이폰으로, 음악을 재생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꾸준히 변해 왔지만 그때마다 변함없이 내 플레이리스트 목록 맨 밑에 자리 잡고 있는 곡은 ‘러브레터’였다. 너무 많이 들어서 이 영화 음악이 내 청춘의 BGM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사연 있는 이별을 경험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열다섯 살 때부터 시작된 ‘러브레터’ 사랑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순간도 쉰 적이 없다. 이따금 생각하지 않고 살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잊은 적은 없었다. 왜 그렇게 좋았을까.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이별 이야기잖아. 까마득하게 펼쳐진 새하얀 눈에 끌렸던 걸까. 아니면 허공을 향해 외치는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에? 

‘러브레터’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를 그리워하는 여자가 그가 중학생 때 좋아했던 여자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상실감을 조금이나마 지연하는 이야기다. 편지를 보내는 입장에서는 남자의 어린 시절에 대해 들으며 그와 못다 한 시간을 보상받는 이야기이고, 편지를 받는 입장에서는 잊고 있었던 기억으로 들어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을 향한 남자의 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편지를 통해 두 사람은 잃어버린 것, 혹은 잊어버린 것으로부터 모종의 회복을 경험한다.  

요약하면 이 영화는 죽은 남자가 과거에 좋아했던 여자와 현재에 좋아했던 여자가 나누는 대화 형식을 취하는 작품으로, 두 사람이 안부를 주고받는 사이 드러나는 건 어느 중학생들이 보낸 과거의 시간이다. 내가 그토록 이 영화를 좋아했던 건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아서 불안하지만 모든 게 다 가능하기에 막연히 꿈꿀 수 있었던 그 시절이었던 것 같다. 편지는 과거가 잠에서 깨어나는 공간이고 두 사람의 편지는 상실도 망각도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불러낸다. 편지의 부활은 과거의 부활이다.

내가 아는 어느 작가는 편지를 일컬어 인간의 형식이라고 말한 적 있다. 편지가 인간의 형식이라면 편지의 종말은 인간을 정의하는 한 형식의 종말일 것이다. 편지의 종말과 함께 사라진 인간 형식이란 과거와 대화하는 인간일 것이다. 모든 게 가능했던 과거와 어떤 것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현재가 대화하는 미지의 시간과 공간. 편지를 통해 우리가 만나고 싶은 건 결국 자기 자신일 테니까.     

이와이 슌지의 신작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작품이 ‘러브레터’의 후속작이란 말도 들었다. 정말 좋아하면 두려운 마음도 커진다. 실망할까 봐 두렵고 두려워하는 자신의 모습에 실망할 자신이 또 두렵다. 누구라도 그렇지 않을까. 내 인생의 20년 동안을 함께했던 세계가 성장한 모습으로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면. 20년 동안 만난 적 없는 그 세계를 여전히 좋아할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는 것이다.

‘러브레터’가 눈 덮인 설원을 배경으로 침묵에 잠겨 있던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하는 영화라면, ‘라스트 레터’는 깊은 초록과 공기를 가득 메우고 있는 여름의 소리를 배경으로 끝나지 않은 사랑의 신비를 기억하는 영화다. 두 영화는 모두 중학생 시절 시작된 사랑이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서 곧장 원작 소설을 사서 읽었다. 소설을 쓴 것도 영화를 만든 것도 모두 이와이 슌지다.

이와이 슌지의 영화에서 우리는 종종 중학교 시절을 만나게 된다. 때로 그곳은 무자비하고 맹목적인 폭력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경우 그곳은 막연한 희망으로 가득한 희붐한 빛이 스며드는 가능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의 원작 소설인 ‘라스트 레터’의 엔딩은 주인공의 첫사랑이자 현재 죽고 없는 도노 미사키의 ‘졸업생 대표 송사’다. 이 송사는 두 사람이 함께 쓴 글로, ‘나’는 이 글을 고쳐준 뒤 미사키로부터 소설가가 되어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쓴 글을 읽고 흡족해하는 미사키를 보며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지금까지, 그러니까 여전히, 미사키의 영향권에서 살아가며 미사키를 향한 자신의 마음에 드리운 구름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지 못한 채 소설을 쓰고 있다. 그가 쓴 모든 소설은 미사키에게 보낸 편지였다.

졸업식이 거행되는 체육관. 그곳에서 막연하지만 꿈꿀 수 있었던 시간들. 이 소설이 말하는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귀하게 빛나는 장소”가 나는 어쩐지 편지를 가리키는 말인 것만 같다. 내가 아는 한 작가에 의해 인간의 형식으로 명명된 편지를, 나는 “서로가 동등한 위치에서 귀하게 빛나는 장소”라고 부르고 싶다. 수신자에게 도착하지 않을 가능성, 글 쓴 사람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 숱한 가능성 위에 눌러 쓰는 편지야말로 모든 것이 가능해서 불안하고 그래서 꿈꿀 수 있는 빛나는 하나의 장소인 것이다.


▒ 박혜진
조선일보 신춘문예 평론 당선,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젊은평론가상


plus point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일본의 영화감독.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러브레터’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뛰어난 영상미, 자연광의 사용, 풍부한 감수성을 특징으로 한다. 때문에 관객들에게는 호불호가 나뉘는 감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람들에게 그의 작품은 밝은 분위기의 작품과 어두운 분위기의 작품으로 나뉘어 소개된다. ‘하나와 앨리스’ ‘4월 이야기’ ‘러브레터’가 밝은 이와이에 속한다면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언두’ ‘피크닉’ 등은 어두운 이와이에 속한다. 특히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학교폭력을 소재로 어둡게 그린 성장담으로 ‘러브레터’만 본 관객은 같은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당황할 정도다. 영화 연출 이외에도 제작, 음악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소설도 썼다.

박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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