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천년 고찰 건봉사, 드넓은 화진포 해변, 이승만 별장의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 모형. 사진 최갑수
왼쪽부터 천년 고찰 건봉사, 드넓은 화진포 해변, 이승만 별장의 이승만 전 대통령 부부 모형. 사진 최갑수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강원도 고성은 가슴 아픈 분단 현실을 여실히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고성에 가까워질수록 도로에 수시로 보이는 군용 지프와 트럭, 검문소가 북쪽 땅이 눈앞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하지만 고성은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여행자를 즐겁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고요한 호수와 운치 있는 바다가 있어 어디를 가더라도 낭만적인 여름 여행을 보장한다.

여름 바다의 낭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해변을 꼽으라면 단연 화진포 해변이다. 길이 1.7㎞의 백사장은 걸어도 걸어도 끝이 나오질 않는다. 해변 뒤에 자리한 울창한 송림은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준다. 연인들은 서로의 어깨를 꼭 껴안은 채 모래밭을 거닐고 아이들은 밀려드는 파도에 쫓기는 것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강릉이나 양양, 속초의 해변에 비해 한적하다는 점도 화진포 해변의 장점이다.

화진포에서 먼저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백사장이다. 조개껍질과 바위가 부서져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파도가 지날 때마다 ‘차르륵, 차르륵’ 하는 소리를 낸다. 조선 시대 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화진포 백사장을 ‘울 명(鳴)’ 자와 ‘모래 사(沙)’ 자를 써 ‘명사’라고 부르기도 했다. 화진포가 유명해진 것은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배경이 되면서부터다. 준서가 싸늘히 식어가는 은서를 업고 하염없이 걸었던 곳으로 나왔다. 해수욕장 끝에 떠 있는 섬 금구도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무덤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진포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면 ‘김일성 별장’이다. 화진포 해변과 송림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화진포의 성’으로 불린다. 역사안보전시관으로 재단장되어 한국전쟁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김일성 별장은 나치 정권을 거부하고 망명한 독일인 H. 베버가 1938년 건축했다. 건축 당시에는 외국인 휴양촌의 예배당으로 사용됐다. 김일성의 처 김정숙은 김정일 등 자녀를 데리고 와서 귀빈관에 머물곤 했다고 한다. 1945년 38선을 경계로 남북이 분단되면서 외국인 휴양촌의 귀빈관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현재 건물은 1999년 다시 지어진 것이다.

화진포 해변 건너편은 화진포호다. 강 하구와 바다가 맞닿은 곳에 생긴 석호로, 물은 담수와 해수의 중간 성격을 띤다. 강릉 경포호와 속초 영랑호도 모두 석호다.

화진포호는 거대한 ‘8자형’이다. 둘레가 16㎞, 넓이 2.3㎢로 국내에서 가장 큰 석호다. 호수는 남쪽과 북쪽으로 나뉘며 남호 주변으로 갈대밭, 조류 관찰대 등 자연 탐방 지대가 자리한다. 10㎞에 이르는 산책로도 잘 정비됐다. 화진포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데, 겨울이면 고니(천연기념물 201-1호) 수천 마리가 날아들어 말 그대로 ‘백조의 호수’가 된다. 화진포호 한쪽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 단층 슬라브 형태의 이 별장은 이 전 대통령 내외의 유품전시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실내에는 침실과 집무실, 거실이 옛 모습대로 복원돼 있고 벽과 유리장에는 학위증 등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화진포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송지호다. 둘레 6㎞로 큰 편은 아니지만, 어느 석호보다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송지호에 첫발을 디딘 사람은 울창한 소나무와 갈대숲이 어우러진 고혹적인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는다. 호수는 거울처럼 잔잔하고, 자작나무 숲에서 날아온 새 소리가 발치에 내려앉는다. 5층 높이의 송지호 관망타워에 오르면 호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멀리 설악산 울산바위가 병풍 같고, 정면에는 아담한 정자가 자리 잡은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즐기고 싶다면 아야진 해수욕장을 추천한다. 활처럼 부드럽게 휜 백사장 북쪽에 갯바위 지대가 펼쳐진다. 모래가 깔린 부분은 파도가 잔잔하고 수심도 얕다. 갯바위 지대에서는 게와 조그만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스노클링 명소로 손꼽힌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와 금강산, ‘백촌막국수’의 막국수, DMZ 박물관에 복원된 노동당사 건물. 사진 최갑수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와 금강산, ‘백촌막국수’의 막국수, DMZ 박물관에 복원된 노동당사 건물. 사진 최갑수

국토 최북단에서 체험하는 분단 현실

고성은 국토 최북단 고장이다. 이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통일전망대다. 가는 길에는 일반 승용차보다 군용 지프와 트럭을 더 자주 볼 수 있다.

온통 하얀색으로 칠해진 고성 통일전망대에 서면 휴전선과 금강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오른쪽으로는 에메랄드 빛 동해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진다. 비무장지대도 파노라마로 펼쳐지는데 한국군 관측소도 아련하게 바라보인다. 해금강도 조망할 수 있다. 현종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기묘한 모습으로 떠 있다. 맑은 날이면 금강산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바라보인다.

통일전망대에서 DMZ 박물관이 가깝다. 최북단 군사분계선과 근접한 민통선 내에 자리한다. DMZ는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의 배치, 군사시설의 설치가 금지되는 비무장지대로, 우리나라 DMZ는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설정됐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 각 2㎞, 서해안 임진강 하구부터 동해안 고성 명호리까지 248㎞ 지역이 DMZ다.

DMZ 박물관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 현실과 통일의 염원이 담긴 곳이다. 3층 건물에는 전쟁·군사 자료와 유물을 비롯해 자연, 생태, 민속, 예술 등 한국전쟁과 DMZ에 관한 전시물이 있다.


여행수첩

먹거리 고성에 갔다면 토성면에 자리한 ‘백촌막국수’의 막국수를 꼭 맛보자. 미식가들 사이에서 대한민국 3대 막국숫집 가운데 한 곳으로 불리는 곳이다. 막국수와 함께 얼음을 동동 띄운 동치미가 나오는데, 이 동치미를 붓고 참기름과 설탕을 첨가해 손님이 취향껏 만들어 먹는다. 톡 쏘면서 시원한 동치미를 한 숟가락 먹어보면 식도락가들이 왜 열광하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햇메밀로 뽑은 면 역시 향미가 그만이다.

관동별곡의 무대 송지호에서 내려오면 화진포, 송지호와 함께 고성 8경에 드는 천학정과 청간정을 차례로 만난다. 천학정은 기암괴석과 해안 절벽 위에 있다. 더 남쪽으로 내려오면 청간정(강원유형문화재 32호)이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한 정철은 동해안을 둘러보고 ‘관동별곡’을 지었다.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기행 가사다. 정철은 관동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청간정을 꼽았다. 소나무 숲길을 따라가면 팔작지붕 중층 누각이 나오는데, 누각에 서면 사방이 탁 트인 동해가 눈앞에 가득하다. 바닷바람이 불 때마다 기분 좋은 솔향이 실려 온다. 내부에 1953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현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