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사진 ENA

나는 1991년 3월 경남 진주에 있는 공군교육사령부에 입대했다. 그해 여름에 소위로 임관하고 11월에 결혼했다. 그러고는 1994년 7월 말 전역할 때까지 쭉 진주에 살았다. 특수교육을 전공한 내 아내는 당시에 진주의 한 중학교에서 특수교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담임으로 있던 반 학생 중 A군은 자폐증이 있었다. 자폐증의 공식 명칭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다. 부모의 전적인 지원과 보호가 없으면 독자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자폐 아동의 특성상 A의 어머니는 매일 A와 함께 등하교하며 생활했다.

A는 다른 또래 아이보다 인물이 출중했고, 체격도 좋고 잘생긴 학생이었다. 그런 만큼 A가 자폐인이라는 사실은 보는 이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하물며 A의 부모 심정은 어떠했으랴. 당시 학부모들이 공동으로 출간한 한 수필집에서 A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우리 아들 A보다 단 하루만 더 사는 것이다.” 그녀의 글을 읽고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신생 채널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아내도 주인공 우영우 역할을 맡은 배우 박은빈의 자폐인 연기가 탁월하다고 칭찬했다.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계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계에 사는 데 익숙합니다.” 드라마 속 우영우의 말처럼 자폐인은 기본적으로 자신만의 세계에 산다.

교류의 핵심인 타인과 눈맞춤도 없고, 혼자 지내려고 한다. 사람보다는 사물에 더 관심이 많다. 타인과 소통하려면 소통하려고 하는 사람과 공감이 전제돼야 한다. 공감의 기본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자폐인은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헤아리는 데 관심이 없다. 우영우도 대화 중이나 법정에서 변론할 때, 상대방과 눈을 맞추지 않고 눈을 내리깔고 이야기한다.

의사소통의 기본인 언어에도 장애가 있다. 말을 하는 목적도 타인과 교류에 있기보다는 자신의 요구를 표현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언어 능력이 있더라도 단조로운 어조, 고음의 소리를 유지하거나, 상대방의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를 자주 쓴다. 자폐인은 손을 상하로 계속 흔들든지, 방 안을 쉬지 않고 왕복한다든지, “몇 시예요?” 같은 말을 반복하는 등 외부 자극과 관계없이 같은 행동을 습관적으로 되풀이한다. 새로운 환경과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고 늘 똑같은 것만 고집한다.

우영우가 드라마에서 삼시 세끼를 김밥만 고집하거나, 타인이 관심을 두든 말든 일방적으로 ‘고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처럼 말이다. 조승우가 주연을 맡은 영화 ‘말아톤(2005년)’에서 주인공 윤초원이 꽂힌 대상은 ‘얼룩말’이다.

이유 없이 갑자기 울거나 웃는 등 정서 변화가 심한 경우도 있고, 특정 감각에 대해 과민하거나 반대로 과소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머리를 벽에 부딪치거나, 살갗을 할퀴거나,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등 자해 행위를 하기도 한다.

대략 자폐인의 70~85%가 지적 장애를 동반한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 암기나 계산, 음악, 미술 등 특정한 영역에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자폐 성향이 있지만 지적인 능력과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경우를 ‘고기능 자폐 장애’라고 부른다. 

바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가 고기능 자폐 장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자폐인의 예후는 좋지 않다.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직업을 갖고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경우는 1~2% 정도에 불과하다.

가족이나 주위 사람의 보조를 받으면서 근근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5~20% 정도다. 자폐인의 3분의 2는 평생 가족에게 의존하거나 요양 시설에서 생활해야 하는 것이다. A군의 어머니가 A보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살았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은빈을 비롯한 출연진의 연기가 뛰어나기 때문일까? 물론 그것도 이유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이 드라마가 사람들이 자폐인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혹은 고정 관념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우영우는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 않는 일반적인 자폐인과는 다르다. 그녀는 사회적인 교류 방식이나 내용이 다소 어색하고 서툴기는 하지만, 자폐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인 변호사로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우영우의 이러한 모습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불굴의 정신으로 성장해 나가는 인간 승리의 주인공으로 전혀 손색이 없다. ‘자폐인이 저렇게 능력 있고, 게다가 인간적인 따뜻함까지 겸비하다니⋯.’ 시청자들의 속내는 이러할 것이다.

과연 그뿐일까. 앞서 말했다시피 고기능 자폐 장애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시청자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대다수 자폐인과 그 가족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그들이 갖는 수치심이나 고립감은 다른 장애인이 받는 차별 반응보다 절대 덜하지 않다. 

자폐인은 어릴 때부터 조롱과 멸시와 따돌림을 겪는다. 이런 현상을 ‘자폐증 낙인(autism stigma)’이라고 한다.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자폐 아동의 75%가 또래 집단의 활동에서 소외되고, 13%가 따돌림당하며, 37%가 조롱받는다. 물론 자폐인의 특성에 따른 파괴적이거나 반사회적 행동이 이런 반응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지만 말이다.

이러한 자폐증 낙인에 따라 자폐인 가족이 받는 차별도 만만치 않다. 가족의 32%는 각종 사교 행사에서 제외되고, 40%는 친구나 친인척과 격리된다. 

자폐 아동이 성인이 되었다고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다. 어떤 가족은 친구나 친인척들에게 자폐인 자녀가 결혼하거나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극언을 듣기도 한다. 이런 일을 자주 겪다 보면 자폐인과 그의 가족은 스스로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진다. 수치심을 피하려고 지레 각종 모임이나 자리를 피하고 스스로를 격리하기도 한다.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를 뿐” 

그런 측면에서 역설적으로 드라마 속 우영우는 ‘이상한 변호사’가 맞다. 드라마가 판타지 같다는 말도 있다. ‘우영우의 성공에 시청자들이 환호하는 것은 진정으로 자폐인에 대한 감정 이입과 공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기 힐링에 불과하다.’

우리가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우영우 같은 일부 고기능 자폐인뿐만 아니라, 영화 ‘말아톤’의 주인공 윤초원 같은 대다수 자폐인을 우리가 좀 더 따뜻한 시선, 긍휼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는 바다를 상징한다. 드넓은 대양을 유영하는 고래는 창의성을 상징한다. 윤초원이 좋아하는 얼룩말은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을 내달리는 자유의 상징이다. 얼룩말은 가축화에 실패한 야생의 상징이다. 초원을 떠난 얼룩말, 바다를 떠난 고래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가 1명의 우영우에 대한 찬사를 아낄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99명의 윤초원에 대한 관심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영우가 대양을 가르는 고래처럼 창의성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이 초원이가 초원을 내달리는 자유를 구가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자폐인도 다른 장애와 마찬가지로 ‘모자란 것이 아니라 다를 뿐(different, not less)’이니까 말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