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사춘기를 그린 영화 ‘레이디 버드’.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왼쪽)은 어딘가에 있을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싶은 성장통을 앓는다. 사진 IMDB
소녀의 사춘기를 그린 영화 ‘레이디 버드’.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왼쪽)은 어딘가에 있을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싶은 성장통을 앓는다. 사진 IMDB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새크라멘토라는 도시가 있다. 그리 작지도 않은데 인근에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 샌디에이고 등 유명 도시가 많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주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촌 동네로 인식되는 곳이다.

하긴 우리나라도 서울 사람들이 보기에는 서울 빼고는 다 시골일 수 있다. 서부 경남의 작은 시골 마을 하동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오래 산 나 같은 사람은 촌놈 소리를 듣는 것이 그렇다 치자.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광역시에 살다가 상경한 사람은 좀 억울할 것 같다.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레이디 버드(2017)’. 영화에서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분)은 스스로 ‘레이디 버드(lady bird)’라는 별명을 지었다. 그녀는 본명보다 별명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알다시피 레이디버드(ladybird)는 무당벌레를 말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두 단어를 띄어서 레이디 버드다.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 숙녀 정도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어”

이름은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가장 중요한 상징의 하나다. 스스로 지은 별명으로 볼 때 크리스틴은 정체성 혼돈을 겪고 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사춘기 소녀다. 미국 10대 여고생을 다룬 영화 ‘지랄발광17세’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그녀는 한국식으로 말하면 ‘기찻길 옆 오막살이’에 사는 흙수저 출신 여고생이다. 새크라멘토라는 이 촌구석(?)을 떠나고 싶어 안달이다.

하지만 아무리 크리스틴이 철딱서니 없는 고교생이라고 해도 가난한 부모님의 경제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녀가 쉽사리 진로를 정하지 못하는 이유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좌충우돌하던 그녀는 마침내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의 한 대학에 입학한다.

마이크 화이트 감독의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2017)’에서 주인공 브래드(벤 스틸러 분)는 미국 동부 보스턴에 있는 터프츠대학을 나온 40대 후반의 중년 아저씨다. 터프츠대학 역시 명문 사립대학이지만 그는 고교 시절 최고 명문 예일대학을 목표로 했다가 좌절한 경험이 있다. 아! 성공과 좌절은 또 얼마나 상대적인가.

캠퍼스 커플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에 골인한 그는 교사 발령을 받은 아내를 따라 고향 새크라멘토에 정착했다. 조그마한 비영리단체의 운영책임자다. 그러다가 유일한 직원 크리스가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한계를 느끼고 대형 금융기관에 취직하겠다면서 사표를 내자 큰 충격에 빠진다.

첫 직장을 세속적으로 잘나가는 대기업이 아니라, 사회 봉사에 방점이 찍힌 비영리단체를 선택한 것은 브래드의 결단이었다. 이런 결단은 비록 연봉은 적지만 브래드의 자존감의 원천이기도 했다. 그런데 순조롭고 평온하던 자신의 마음에 평지풍파가 일어난 것이다. 브래드는 자기 내면에서 일어난 심리의 반란에 당혹하여 어쩔 줄 모른다. 갑자기 중년에 정체성 혼란이 생긴 것이다.

마침 대학 면접시험을 보러 떠나는 수험생 아들과 함께 동부에 온 브래드. 그는 갑자기 하버드, 예일 등에 합격할 가능성이 큰 우등생 아들을 통해 신분 상승의 욕구를 ‘대리 충족’하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대학 동창들의 모습에 시기와 질투를 느끼고, 분노와 허탈감으로 좌절하기도 한다. 그의 내면은 ‘자아팽창(ego inflation)’과 ‘좌절(frustration) 경험’ 사이 어디쯤에서 갈 곳을 잃었다.

새크라멘토를 떠나 뉴욕으로 새처럼 훨훨 날아와 정착한 숙녀 크리스틴. 보스턴에서 새크라멘토로 온 브래드. 그들은 10대와 40대의 연령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곳의 나’를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재의 내가 싫은 두 사람. 크리스틴은 미래를 바꾸고 싶어 하고, 브래드는 과거를 바꾸고 싶어 한다. 두 사람은 어딘가에 있을 파랑새를 찾아 떠나고 싶은 성장통(growing pain)을 앓고 있다.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주인공 브래드(벤 스틸러 분)는 성공한 대학 동창들의 모습에 열등감을 느낀다. 사진 IMDB
영화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의 주인공 브래드(벤 스틸러 분)는 성공한 대학 동창들의 모습에 열등감을 느낀다. 사진 IMDB

행복은 상대적인 개념

‘기대와 비교’, 세상의 모든 불행은 이 두 단어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의 시선,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찾으며 불행을 자초하는가. 그러나 얄궂게도 사람들은 행복의 동기도 ‘기대와 비교’에서 찾는다. 개인적인 성공과 성장의 모멘텀을 사회적 인정 욕구의 실현에서 찾으려 한다.

사람의 뇌에는 한편으로 사랑하고 협력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경쟁하고 다투는 양면성이 본능처럼 프로그램되어 있다. 행복도 불행도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상대적인 개념이다. 타인과의 비교, 타인의 기대라는 프레임을 벗어난 행복과 불행의 개념을 생각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크리스틴이 자신의 별명으로 지었던 ‘레이디 버드’는 무당벌레다. 전통적으로 서구에서 무당벌레는 행운의 상징이다.

뉴욕에 사는 크리스틴은 고향 새크라멘토의 거리(공간)와 추억(시간)과 부모님(사람)이 그립다. 그렇다고 그녀가 새크라멘토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니까 말이다. 뉴욕에 사는 지금의 그녀에게 행운의 무당벌레가 찾아왔는지는 크리스틴 자신만이 알 것이다.

브래드는 아들과 함께 동부로 떠난 여행에서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완수해야 한다. 학부형으로서 아들을 에스코트하는 외적인 과제와 더불어 자신의 흔들리는 정체성을 찾는 내적인 과제가 그것이다. 이 영화의 원제는 ‘브래드의 사회적 지위(Brad’s Status)’다. 한국에서 ‘괜찮아요, 미스터 브래드’로 바뀌었다. 영화 막바지에 “나는 살아있어!”라고 내적으로 절규하는 브래드. 결코 괜찮아 보이지 않았던 브래드가 심리적 안정을 찾고 정말로 괜찮아졌는지는 역시 브래드 자신만이 알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