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아 고가 4월 18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우승을 확정 짓는 퍼트를 성공하고는 공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리디아 고는 통산 16승(메이저 2승 포함)을 기록했다. 사진 AP연합
리디아 고가 4월 18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3년 만에 우승을 확정 짓는 퍼트를 성공하고는 공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리디아 고는 통산 16승(메이저 2승 포함)을 기록했다. 사진 AP연합

1997년 4월 24일 서울에서 태어난 리디아 고(24)는 고보경이란 이름으로 서울 대방동에서 유치원을 다니다 여섯 살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했다. 다섯 살 때 리디아 고를 골프의 길로 이끈 사람은 아버지 고길홍씨로, 테니스 선수로 활동하다 금융계에서 일한 경력이 있다.

한국 여자골프가 단기간에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꼽히는 게 딸을 위해 운전기사부터 매니저까지 모든 것을 해내는 골프 대디(golf daddy)의 존재다. 아버지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었던 박세리의 성공 신화에 영감을 얻은 경우가 많다. 골프 대디란 말에는 딸이 오직 골프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해주는 헌신의 상징이자, 딸을 오직 성적만 생각하는 골프 기계로 만들어 버리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함께 있다.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골프에만 몰두했던 선수들이 일찌감치 시들어 버리는 ‘번아웃(탈진) 신드롬’은 한국 여자골프의 약점으로 꼽힌다.

4월 18일 리디아 고가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롯데 챔피언십에서 2018년 4월 메디힐 챔피언십 이후 3년 만에 우승하며 통산 16승(메이저 2승 포함)을 기록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회복세가 뚜렷한 데다 올해 두 차례 준우승 끝에 오른 정상이어서 선수 출신 방송 해설가인 카렌 스터플스는 “지금의 리디아 고는 예전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리디아 고는 어린 시절 타이거 우즈에 견줘도 더 뛰어난 발전 속도를 보인다는 평가를 받은 ‘천재 소녀’였으나 20대가 되면서 리디아 고 본인이 ‘다시 우승권에 들 수 있을까’ 회의할 정도로 침체를 겪었다.

리디아 고는 아마추어 신분으로 2012년과 2013년 LPGA투어 캐나다 여자오픈 2연패를 달성한 뒤 2014년 LPGA투어에 데뷔했다. 데뷔 첫해인 2014년 3승, 2015년 5승, 2016년 4승으로 3년간 12승을 거두었다. 2015년 최연소로 여자골프 세계1위에 올랐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딴 박인비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다. 이랬던 리디아 고가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에 이르는 시기에 캐디와 스윙코치, 용품까지 세 가지를 한꺼번에 바꾸면서 부진에 빠졌다.

천재 소녀가 부진에 빠진 이유를 놓고 독설을 날린 이는 리디아 고가 프로 데뷔한 2014년부터 약 3년간 스윙코치였던 데이비드 레드베터였다. 그는 “골프를 잘 모르는 부모의 간섭이 지나치다. 리디아가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위해선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야 한다. 골프를 잠시 떠나는 것도 방법이다”라고 주장했다.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자 오히려 리디아 고가 “더 이상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받아친 적도 있다. 한국 출신 골프 대디라는 이미지 때문에 레드베터의 주장에 무게를 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리디아 고 신화’의 시작과 침체 그리고 재기에 이르기까지 아버지 고길홍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옛 코치의 언급에 그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리디아 고의 어머니는 딸의 투어 생활에 동행하고 있고 아버지는 코로나19 이후 한국 집에 머물고 있다.


리디아 고는 2020년 7월 ‘열다섯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글을 LPGA 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언니 등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사진 LPGA
리디아 고는 2020년 7월 ‘열다섯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글을 LPGA 투어 홈페이지에 올렸다. 성장 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 언니 등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 사진 LPGA

부진에 빠진 천재 소녀, 션 폴리와 재기

우선 리디아 고가 다시 정상에 선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말이다. “리디아는 지난겨울 한국에서 작은 수술을 받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휴식했다. 코안의 물렁뼈가 휘어서 숨 쉬는 데 지장이 있었다. 시즌 준비를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이런 손편지를 남겼다. ‘이번처럼 마음이 편한 적이 최근에 없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자신감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디아가 우승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작년 7월부터 함께한 코치 션 폴리가 큰 도움이 됐다. 그동안 갖고 있던 스윙에 대한 갖가지 의문이 풀리고 골프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고 하더라.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스스로를 너무 힘들게 하고 자신이 컨트롤할 수 없는 결과에 집착했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 하더라.”

리디아 고는 작년 초에도 폴리에게 연락을 했는데 처음엔 아마추어 시절 비디오를 보면서 예전엔 얼마나 자연스럽게 스윙했는지 살펴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한다. 지난여름 리디아 고가 다시 전화를 걸자 다음날부터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스윙은 아마추어 시절처럼 살짝 페이드가 걸리는 구질이 나오도록 바꿨고, 모든 연습 스윙을 비디오에 담아 확인할 정도로 완벽한 스윙에 집착하던 태도를 바꿨다. 폴리의 집이 미국 올랜도에 있는 리디아 고의 집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여서 만나기도 편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무렵 7㎏이나 빠졌던 몸무게를 회복했다. 그것도 근육량을 7㎏이나 늘려 4라운드에 체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해결했다. 리디아 고가 살이 많이 빠졌을 때 점점 더 외모를 의식하기 때문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 “한동안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는다’고 하던 때가 있었다. 성실한 스타일인데 뭘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사실 걱정 많이 했다.”

레드베터를 해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설명은 이렇다. “레드베터는 리디아에게 A스윙(가파르게 치켜 올리는 백스윙과 완만하게 내려오는 다운스윙 궤도가 달라 A 자처럼 보인다는 스윙. 레드베터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고안했다는 스윙)을 가르쳤다. 처음엔 드로 구질로 거리가 늘었지만 갈수록 결과가 나빠져 드라이버 샷 10개중 8개가 왼쪽 러프로 갔다. 데이터가 안 좋으니 수정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코치를 두지 않고 잠시 서로 지켜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자신을 해고했다며 비난의 화살을 우리 가족에게 돌렸다. 너무 화가 났지만 리디아를 생각해서 참았다.”

리디아 고가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잘 치게 된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대답이다. “어릴 때부터 실제 경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연습 현장에 접목시켜 훈련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골프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파5홀과 짧은 파4홀에서 버디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120야드 이내의 샷을 홀 1m에 붙일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홀에서 30야드 지점부터 120야드 지점까지, 10야드 간격으로 공을 10개씩 놓고 쳤다. 그것도 오르막, 내리막 등 다양한 경사면에 공을 놓았다. 그리고 18홀 코스의 파3홀 4곳만 돌면서 하는 연습도 많이 했다. 파3홀의 블랙 티, 블루 티, 화이트 티, 레드 티 등 4곳의 티잉 구역에 공 10개씩 놓고 한 홀마다 40개씩 연습했다. 뉴질랜드 홈코스였던 오클랜드 걸프 하버 골프장에서 이런 훈련이 가능하게 도와주었다. 벙커 연습도 벙커마다 다양한 라이에서 40개씩 연습했다. 지금도 이런 훈련을 한다.”

그는 “리디아가 미국으로 떠나면서 ‘공 잘쳐서 중계 화면에 자주 나오도록 할게요’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민학수 조선일보 스포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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