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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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누구나 깨달음을 얻어 진정한 해탈에 이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점에서 불교를 자력(自力) 종교라고 한다. 반면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 같은 구원자의 힘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타력(他力) 종교다.

당연하게도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가 가장 설치는 종교는 타력 종교인 기독교일 것이다. 인류를 멸망의 심판에서 구해낼 구원자(메시아)를 자처하는 자들이 여기저기서 세상을 현혹한다. 사이비 종교 집단의 교주는 그럴싸한 감언이설로 신도들에게서 재물을 갈취하며 세력을 키운다.

이들 중에는 자신이 사기꾼임을 자각하고 사기 행각을 벌이는 자들도 있다. 반면, 자신이 사람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진짜 메시아라고 착각하는 ‘망아(忘我)의 사기꾼’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사기꾼임에도 불구하고 사기꾼이 아니라고 최면을 거는, 사기꾼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진정한(?) 사기꾼이다.

이들 중에는 대놓고 ‘나는 예수다!’라고 떠드는 자들도 있다. 이런 자들이 꼭 사이비 종교의 교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자신을 ‘조선 민족을 구원으로 이끈 위대한 태양’이라며 추앙하게 했다. 북한 주민이 3대에 걸쳐 ‘최고 존엄’으로 섬기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을 우상화한 노래 중에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라는 것이 있다.

가사를 보면 기가 막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방선 천리 주름잡아 장군님 가신다.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백두의 전법 신묘한 전법 장군님 쓰신다.” 1절에서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축지법을 쓴다고 추앙하더니 2절, 3절에서는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고, 험산 준령이 비켜서며, 번개도 뒤따른다’고 주장한다. 고대 신화 혹은 민간설화에나 나올 법한 헛소리를 21세기 대명천지에 천연스레 떠벌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초인적인 힘을 가진 구세주, 예수 같은 신적인 능력의 소유자로 간주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그리스도와 동일시(imitation of Christ)’라고 한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비극을 초래했는지는 지나온 역사가 잘 말해준다.

이런 현상은 망아의 사기꾼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반사로 일어난다.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은 ‘자아 팽창(ego inflation)’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이 말은 ‘사람 의식의 중심인 자아(ego)가 어떤 원인에 의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져서, 그 사람이 우쭐대고 거만해진 상태’를 말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인플레이션은 ‘통화량이 팽창해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물가가 계속 올라서 일반인의 실질적인 소득이 감소하는 현상’을 말한다. 통화량이 팽창하면 화폐 가치가 폭락하는 것처럼, 자아가 팽창하면 자아는 제 분수를 넘어 우쭐해하지만 속 빈 강정처럼 실속 없는 상태가 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명함 속의 직책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 그 상황에 어울리는 적절한 가면을 쓰고 생활한다. 집안에서는 아버지의 탈을, 직장에서는 그 직책에 맞는 직장인으로서의 탈을, 오랜 벗들끼리 어울리는 동창회에서는 장난스러운 친구의 탈을 쓰고 생활한다. 그것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는 ‘적응’이라는 측면에서 필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가면을 융은 페르소나(persona)라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개의 탈을 그 상황에 맞게 적시에 바꿔쓰면서 무난하게 연기를 해낸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꽤 있다. 회사에서 악덕 상사였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면 한없이 인자한 아버지로 바뀌는 위선적인 경우도 있고,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을 회사의 부하직원 다루듯이 해서 빈축을 사는 경우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사회적 직함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할 때 벌어진다. 수십 년 전의 일이다. 내 고향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 A씨가 서울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그때 기차 승무원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라도, A씨는 기차가 떠나가도록 길길이 날뛰며 노발대발했다는 것이다.

승객 중에는 동향 사람도 많았는데, 이에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나를 이따위로 대접하는 거야? 내가 국회의원 000이야!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현장에서 이를 지켜본 다수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 A씨의 태도는 그냥 ‘나 좀 알아줘!’라고 울부짖는 대다수 ‘진상’이 벌이는 갑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한다.

집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 새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중대선거구 시절 여러 번 낙선 끝에 동정표를 얻어 단 한 번 당선됐던 A씨가 그 후 재선에 성공했을 턱이 없다. 그 후로도 여러 차례 출마했지만, 낙선을 거듭하며 여생을 정치 낭인으로 소일하다 세상을 떠났다.

A씨처럼 명함 속의 자기 직책, 그러니까 국회의원이라는 자신의 일시적인 페르소나를 자기 자신, 즉 자아와 동일시한 경우가 바로 ‘자아 팽창’의 대표적인 사례다. 직장에서 이렇게 자아 팽창 상태에 있는 사람을 상사로 모시게 되면 정말 피곤해진다. 

명함 속의 직책은 그냥 한시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직책일 뿐인데, 그게 무슨 봉건 왕조 시절의 벼슬자리나 되는 양 온갖 거드름을 피우고, 진상짓을 일삼는다. 그들은 내면의 실력이 아니라 외적인 직책에 집착한다. 때문에 ‘계급장 떼고 한번 붙자!’는 도전은 한사코 꺼린다. 

그런 이들이 직책에서 해임되거나 은퇴하게 되면 이른바 ‘멘붕’에 빠진다. 융 심리학에서는 이런 연유로 멘붕에 빠진 이들을 ‘자기 소외’ 혹은 ‘자기 포기’에 빠졌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여의도 정가에는 이런 말이 돌고 있다. ‘국회의원 하다가 떨어진 사람의 마음은 50층 빌딩에서 낙하산 없이 떨어지는 사람의 마음과 같고, 장관 하다가 그만둔 사람의 마음은 100층 빌딩에서 낙하산 없이 떨어진 이의 마음과 같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책을 잃은 사람들의 마음이 황량하고 허탈할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 ‘에고 인플레이션’에 빠져 환상 속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허망함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을 때는 적절한 용량이 있다. 그것을 넘어 너무 빵빵하게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가 사람으로 치면 자아 팽창 상태다. 그런 상황에서는 바늘만 살짝 갖다 대도 풍선은 사정없이 터져 버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자아 팽창에 빠지지 않고 적절하게 자기 분수를 지키며 살아온 사람들은 직책에서 물러나거나 현업에서 은퇴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남들의 평가, 사회적인 역할, 사회적인 이상에 맞춰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기준은 남이 아닌 본연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예수다!’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이런 경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되돌아보는 지도자가 같을 수 없다. 명함 속의 직책이 바로 제 것인 양 남용하는 사람과 나와 사회를 위해 잠깐 주어진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자기답게’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제발 한 번뿐인 내 인생 나답게 살아가자! 이번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은 물론이고 낙선한 많은 지자체장이나 의원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