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자기 내면의 본성이 얼굴빛, 즉 외면의 태도와 언행으로 표출돼야 한다는 것을 무척 강조했다.
공자는 자기 내면의 본성이 얼굴빛, 즉 외면의 태도와 언행으로 표출돼야 한다는 것을 무척 강조했다.

옛날 직장 상사 중에 무능하기 짝이 없는데도 그것을 교묘하게 감출 줄 아는 희한한 재주를 가진 J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하루 일과를 회의로 시작하고 회의로 끝냈다. 직원들은 정상적인 업무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들볶였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긴다”고 했다. J가 딱 그랬다. J는 부하 직원들이 좋은 정보와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 공을 고스란히 독차지했다. J는 중상모략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한심한 자였다. 그는 선배 등에 칼 꽂기를 밥 먹듯 했고, 후배 뒤통수치기를 일삼았다.

J 때문에 조직의 기강이 흔들리고 내부 분위기도 엉망이었다. 여러 최고경영자(CEO)가 거쳐 갔지만, J의 본질을 아는지, 알고도 모르는 체하는지 알 수 없었다. J는 오래 자리를 지켰다. 간신배가 들끓는 것은 어리석은 군주(昏君⋅혼군)가 틈을 주기 때문이라는 옛말이 떠올랐다.

‘논어’에서 유래한 사자성어로 ‘교언영색(巧言令色)’이라는 말이 있다. 교언영색의 사전적인 의미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말과 태도’를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J는 오직 윗사람에게만 잘 보이려고 아첨을 그럴듯하게 꾸며대는 교언영색의 달인이자, 모략의 대가였다.

‘논어로 논어를 풀다’의 저자 이한우 교수는 다산 정약용의 ‘논어고금주’를 인용해 교언영색을 ‘말을 가려서 잘하고 얼굴빛을 좋게 하라’는 뜻을 가진 청유문으로 보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보면 교언영색은 아첨꾼에 대한 수식어가 아니다. 지성인으로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하는 아포리즘(격언)이 된다.

사실 공자만큼 ‘얼굴빛’을 강조한 사람도 드물다. 공자는 자신의 내면의 본성이 얼굴빛, 즉 외면의 태도와 언행으로 표출돼야 한다는 것을 무척 강조한 사람이다. 공자에 의하면 군자는 바탕이 곧고 의리를 좋아한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얼굴빛을 잘 관찰하며 사려 깊게 몸을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다. 반면에 사이비 지식인은 소문만 요란한 자다. 그들은 얼굴빛은 어진 듯하지만, 행실이 어질지 못하고 아무런 성찰이 없는 자들이다.


얼굴빛 읽는 뇌, 인간의 특권

얼굴빛은 낯빛, 안색, 표정 등과 같은 뜻이다. 뇌과학자들에 의하면 우리 뇌에는 표정을 인식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 방추상 안면 영역(fusiform facial area)이라 불리는 이 부위는 표정 이외에 다른 사물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얼굴빛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포함한 고등 영장류만이 가진 특권이다.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얼굴빛을 읽는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빛, 즉 외면을 관찰함으로써 그 사람 내면의 본심을 파악하는 것이다.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 살던 시절부터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빛과 그의 뇌 속의 정보가 일치하는지에 무척 신경을 썼다.

사실 어떤 사람의 표정과 본심의 일치 여부를 아는 것은 생존을 좌우할 수도 있다. 사람의 얼굴빛이나 겉으로 일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일의 본질이나 사람의 마음을 즉각 읽어내는 사람을 우리는 ‘눈치가 있다’ 혹은 ‘눈치가 빠르다’라고 말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충고할 때에도 상대방이 기분 좋은 때를 골라서 한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심할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눈치가 없어서, 그러니까 왕이나 황제의 표정을 보고 내면의 본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신하들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물론 조선 세조 때 사육신과 같은 이들은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일찍 상황과 본질을 파악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들이었다. 다만 그들은 가만히 있지만 않고 스스로 목숨을 걸고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이다.


당파나 정파,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후흑한 자들을 찾아내고 심판하기 위해 진정한 얼굴빛 읽기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당파나 정파,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후흑한 자들을 찾아내고 심판하기 위해 진정한 얼굴빛 읽기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나라도 망치는 교언영색 ‘정치꾼’

오늘날에도 얼굴빛 읽기의 중요성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요즘 같은 선거철에는 교언영색 하는 정치꾼들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그들은 매번 유권자들 위에 군림하면서 갑질을 일삼지만, 유독 선거철 한 두어 달만 교묘하게 을의 행세를 하면서 유권자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 얼굴빛을 인자한 듯이 꾸미고, 달콤한 빈말로 사람들을 속이려 든다. 그들은 J 뺨칠 정도로 사전적인 의미의 교언영색의 달인들이다.

이들이 J와 다른 점은 J는 한 조직에만 해악을 끼치지만, 이런 정치꾼들은 작게는 지역구를, 크게는 나라를 말아먹을 수도 있다. 이런 자들은 대개 중국 청나라 말기 정치가 이종오가 지은 ‘후흑학’이란 책에 나오는 주인공과 같은 자들이다.

‘후흑’이란 ‘면후(面厚)’와 ‘심흑(心黑)’의 합성어다. 문자 그대로 낯이 두껍고, 속마음도 시커멓다는 뜻이다. 얼굴빛이 어질지 못하고 낯이 두꺼워 뻔뻔하면서도 내면도 진실하지 못한 J보다 더한 ‘뻔뻔함’과 ‘음흉함’을 자랑하는 이들이다.

이종오에 의하면 후흑에도 단계가 있다. 첫째는 낯가죽이 성벽처럼 두껍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먼 초보적인 단계다.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그들의 얼굴빛을 통해 본심을 읽을 수 있다. 문제는 둘째와 셋째 단계다. 둘째는 낯가죽이 두껍다 못해 단단하고 속마음이 검은데도 맑아 보이는 단계다. 셋째는 낯가죽이 두꺼운데도 형체가 없고, 속마음이 시커먼데도 색채가 없는 단계다.

초보적인 단계와는 달리 그들의 낯빛을 읽기는 무척 어렵다. 옛날에는 이런 후흑한 자들을 상대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조금 괴로워도 선거철이 돌아올 때까지 잠시 인내하고 기다리면 된다.

인류학자 프레이저가 지은 ‘황금가지’에는 부덕한 부족장을 살해하는 고대 전설이 나온다. 지금은 후흑한 정치인을 직접 살해하는 전설의 시대가 아니다. 유권자가 표를 던져 정치인을 갈아 치우는 것이 바로 후흑한 부족장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척 보면 알 수 있는 후흑 초보 단계의 정치꾼들을 상대하기도 쉽지 않다. 하물며 나름의 정치철학과 비전을 갖춘 정치인 행세를 하는 후흑학의 대가들을 찾아내기는 더욱더 어렵다. 지금은 당파나 정파, 혈연, 지연, 학연에 얽매이지 않고, 이런 후흑한 자들을 찾아내고 심판하기 위해 눈치 보지 않고, 눈치 빠르게 행동해야 할 시점이다. 진정한 얼굴빛 읽기를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