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 가메이도 교자
대표메뉴 밑부분은 바삭하고 윗부분은 부드러운, 물로 구운 교자

경유1 │ 호루몬 아오키 2호점
대표메뉴 숯불에 구워먹는 부드러운 내장과 소고기

도착 │ 상호명이 기억 나지 않는 미지의 이자카야
대표메뉴 한치회, 참치회, 가오리포 등 매일 수산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해와 만드는 신선한 안주
※ 지도상 위치는 추정

더럽게 덥다. 온몸으로 오줌을 줄줄 싸는 것처럼 종일 땀이 흐른다. 인중을 타고 떨어진 땀의 맛도 마치 그것처럼 찝찌름하다. 재난 수준의 폭염에 더위를 피하느라 허둥지둥 바쁘다. 하필 이런 날씨에 휴가가 아닌 출장을 왔다. 일본 도쿄다. 할 줄 아는 일어라고는 이자카야에서 배운 술과 안주 이름들뿐이다. 반도에서 열도로 넘어오는 비행기 안에서 몇 가지의 표현을 외웠지만 남은 것은 딱 하나. ‘나마 비루 잇빠이 구다사이(생맥주 한잔 주세요)!’

6박 7일간 도쿄를 전전하는 일정이다. 그중 며칠은 도쿄의 부도심인 가메이도에 머무른다.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현저하게 적으나 중심으로 왕래하기 교통이 편하고 가까운 곳이다. 하루는 일정을 통째로 비우고 빈둥거리기로 했다. 걷다가 마주한 작은 식당에서 살살 녹는 흰 쌀밥에 미소 된장국과 절임 반찬으로 점심을 때우고, 장바구니를 든 아주머니를 쫓아 엉겁결에 장도 봤다. 공원을 가로질러 걷다가 발바닥이 너무 뜨거워 카페에 앉아 책을 읽었다. 먹은 것이 모두 땀으로 빠져 나간건지 금세 허기가 돌았다. 모바일 앱을 켰다. 여행자들이 머물고 먹고 마신 정보를 지역별, 종류별, 가격대별로 수집해 놓은 덕분에 구미에 맞게 검색해서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입맛이 다 제 각각이니 반신반의하면서도 요긴하게 쓴다. 목표해둔 곳이 있다. 역 주변에 형성돼 있는 먹자 골목으로 향한다.

오후 4시 39분. 아직 저녁 식사를 하기엔 이르다. 하지만 금방 구운 교자와 맥주 한 잔을 마시기엔 적시다. ‘가메이도 교자’. 여행자 평점에서도 뒤지지 않는다. 줄 서서 먹는 집이라는데, 나처럼 빈둥거리는 관광객이 거의 없는 동네인지라 평일 간식 시간에는 기다리지 않고 먹을 수 있다. 메뉴는 오직 교자뿐이다. 반세기가 넘도록 한 우물만 판 교자 장인의 가게다. 하루에 1000개가 넘는 교자를 만들고 저녁 7시쯤 되면 다 팔고 문을 닫는다.

가메이도 교자에서 맛본 교자와 맥주. 사진 김하늘
가메이도 교자에서 맛본 교자와 맥주. 사진 김하늘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년의 남녀가 청년처럼 높고 큰 소리로 어서 오라 반긴다. 한쪽엔 2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주인 아주머니가 교자를 굽고 있다. 철판에 물을 부으니 ‘식식’ 소리를 내며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 오른다. 두 줄로 나란히 마주 보고 있는 카운터에 앉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교자가 담긴 접시를 내어준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교자 다섯 개가 사이 좋게 한 줄로 붙어 나온다. 이곳은 무조건 한 사람당 교자 두 접시를 먹어야 한다. 양이 많다 싶지만, 카운터에 앉아 있는 모든 손님들이 다섯 접시를 기본으로 쌓아두고 먹는 진풍경을 바라보면 별 걱정이지 싶다.

찬물 한 컵으로 입안을 씻어내고 교자를 하나 떼어 입에 넣는다. 갓 빚어 갓 튀긴 교자의 맛이란, 찬물로 한바탕 목욕을 마친 뒤 순면 옷을 입고 폭신한 호텔 침대에 몸을 누인 것처럼 산뜻하다. 얇고 부드러운 피 안에는 신선한 배추, 부추, 생강이 담뿍 들어있다. 간장, 식초, 겨자, 고추기름을 섞은 소스에 찍어 먹으면 열 개든 스무 개든 끊임없이 들어간다. 아사히 맥주 큰 병을 시켜 쭉쭉 들이키면 그제서야 임무를 다한 듯 홀가분하다. 가메이도 교자를 너무나 좋아했던 남극 탐험대원은 남극까지 이곳 교자를 가지고 갔다고 한다. 내가 아는 한 가장 원거리의 테이크아웃일 것이다. 맛을 보면 이해가 간다. 가뿐하게 네 접시를 비우고 걸음을 옮긴다. 저녁 때가 됐으니 저녁을 먹어야 한다.


눈에 띄지 않는 가게에서 만난 이들

타는 태양도 열기도 아직 가라 앉지 않은 저녁, 옆 가게를 둘러싸고 퇴근을 마친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 교자만큼 인기 있는 호루몬 야키(소내장 숯불구이)를 먹기 위해서다. 불볕 더위에 불 앞에 앉아 내장을 굽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은 반도나 열도나 다름없다. 이 골목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가게를 찾다가, 미닫이문 창살 사이로 백발 노인이 요리를 하고 있는 좁고 긴 이자카야를 발견하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섰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오륙십대 남자 손님의 시선이 단 번에 나에게 꽂혔다.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것 같았지만 부랴부랴 자리에 앉아 다짜고짜 청주 한 잔을 시켰다. 옆자리 노인이 나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말을 걸었다. 당최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한국 사람이라고 말하니 더욱 놀라워했다. 가까스로 외운 안주 이름을 대며 주문을 하니 백발 사장이 옆자리 노인을 가리키며 말한다.

“프레젠토!(Present)” 어리둥절해서 시선을 돌리니 저 너머 노인도 한잔 사겠다 외치는 것이 아닌가. 술과 음식을 산다는데 굳이 거절할 거 있나. 실컷 사라고 고개를 끄덕이니 한치회, 참치회, 절인 고등어회, 오징어 숙회, 가오리포와 차돌 감자조림까지 안주는 끊임없이 나오고 술잔에는 계속 술이 채워진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가게로 들어선다. 노인은 그가 한국말을 잘한다며 내 옆에 앉힌다. 그는 한국 리테일 회사의 일본 지사에서 일하며, 한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말한다. 일과가 끝나고 야구를 보며 술 한 잔 하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른단다. 백발 사장은 요리 솜씨가 뛰어나진 않지만, 매일 아침 츠키지 수산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온다며 오래된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는 잔 한번 부딪히지 않았지만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나는 나이 들어감에 대해, 그는 젊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주로 들었다. 나는 술자리에서 나이 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술 한 잔 마셔야 속을 토해놓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그 어린 날의 내가 떠오른다. 아버지의 힘 없이 꿈틀대는 고민과 고뇌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쓸쓸함이 있었다. 그에게 어렴풋이 남은 소년스러움을 발견했을 그때부터였던가. 아버지가 아닌 가장이 된 한 남자로 바라보기 시작한 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가메이도 이자카야의 열빙어(시샤모) 구이. 사진 김하늘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가메이도 이자카야의 열빙어(시샤모) 구이. 사진 김하늘

가게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정취를 따라 걸으면 어느새 가게 앞에 당도해 있으리라. 그리고 여전하리라. 젊은 여자를 좋아하던 노인도, 백발의 노인도, 그 중년 신사도.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브랜드테일러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