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미러 대신 카메라가 달린 아우디 e-트론. 사진 아우디
사이드미러 대신 카메라가 달린 아우디 e-트론. 사진 아우디

몇 년 전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지금의 자동차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게 있다면 뭔가요.” 그들은 하나같이 사이드미러를 1순위로 꼽았다. “디자인 측면에서 사이드미러는 사족이다. 디자인을 해친다. 사이드미러가 없다면 자동차가 훨씬 근사해질 것이다. 공학적인 측면에서도 사이드미러는 단점이 많다. 무엇보다 가장 큰 단점은 공기저항이 커진다는 것이다. 사이드미러가 없으면 공기저항을 2~7% 줄일 수 있다. 그에 따라 연비도 5~10% 높아진다. 사이드미러는 카메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지난 7월 아우디가 e-트론 프로토타입(본격적인 상품으로 나오기 전 성능 검증이나 개선을 위해 만든 시제품)의 실내 및 주행 사진을 공개했다. e-트론 프로토타입은 아우디에서 출시를 앞둔 전기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다. 96㎾ 배터리를 얹어 주행가능거리가 500㎞에 달한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건 e-트론의 스펙도, 겉모습도 아니었다. 사이드미러 대신 달린 카메라였다. 지난 5월 e-트론 비전 그란투리스모를 견인하는 모습에서는 분명 사이드미러가 멀쩡하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모습에서는 사이드미러 대신 작은 카메라를 달고, 대시보드와 만나는 도어 안쪽에 손바닥만 한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디스플레이에 고스란히 보여주는 새로운 사이드미러(아니, 사이드 카메라라고 해야 하나)에는 ‘버추얼 익스테리어 미러(Virtual Exterior Mirrors)’라는 이름이 붙었다. 7인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디스플레이는 터치스크린 기능도 품고 있어 스마트폰 화면을 확대하거나 축소하는 것처럼 화면을 조작할 수 있다. 고속도로 주행이나 주차, 회전 등의 주행 상황에 맞게 바깥 뷰를 고를 수도 있다.


거울보다 넓어 사각지대 해결하는 카메라

아우디가 사이드미러 대신 카메라를 선택한 이유는 익히 짐작할 수 있다. 주행가능거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전기차에서 연비를 높이는 일이라면 뭐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메라는 거울보다 넓게 촬영할 수 있어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눈이나 비가 올 때 사이드미러보다 바깥 상황을 잘 보여준다는 장점도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도로교통법으로는 사이드미러가 없는 차로 도로를 달릴 수 없다는 거다. 그러니 만약 이대로 출시한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인증받을 수 없다. 아우디는 이를 옵션으로 해결했다. 카메라를 허용하는 나라에서는 버추얼 익스테리어 미러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난 6월 일본은 사이드미러가 없는 차로 도로를 달릴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과 미국, 중국도 교통법 개정을 코앞에 두고 있다. 자동차용 조명과 거울을 주로 생산하는 일본의 이치코공업은 2023년까지 약 12%(약 90만 대)의 자동차가 사이드미러 대신 사이드뷰 카메라를 달 것이라고 내다봤다.

e-트론 프로토타입에 없는 건 사이드미러뿐 아니다. 스티어링휠 너머엔 아날로그 계기반 대신 디스플레이가 달려 있다. 속도와 RPM은 물론 날짜와 요일, 시간, 주행거리, 연비 등 차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가 여기에 뜬다. 이 신기한 계기반이 e-트론 프로토타입에 처음 적용된 장비는 아니다. 아우디는 2014년 선보인 3세대 TT에 버추얼 콕핏(Virtual Cockpit)이라는 이름의 계기반을 탑재했다. 차와 관련된 정보를 띄우거나 디스플레이 전체에 지도를 띄울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자동차에서 아날로그 계기반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둥근 다섯 개의 계기반이 상징과도 같았던 포르쉐 역시 파나메라에 어드밴스트 콕핏이라는 디지털 계기반을 달았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세대 A 클래스는 한술 더 떠 스티어링휠 너머에 대시보드 반을 차지하는, 가로로 길쭉한 디스플레이를 달았다. 왼쪽엔 디지털 계기반, 오른쪽엔 오디오나 내비게이션, 통화 목록 등의 정보가 뜬다. 내비게이션에는 증강현실 기술이 적용됐고, 터치뿐 아니라 음성으로도 조작할 수 있다. 아날로그 계기반이나 각종 버튼을 디스플레이로 대체하면 다양한 기능을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어쩌면 앞으로 아날로그 계기반은 영영 사라질지 모른다.

그렇다면 또 뭐가 사라질까. 카세트테이프를 제치고 센터패시아를 당당히 꿰찼던 CD플레이어도 자동차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쉐보레 스파크와 기아차 쏘울, 쌍용차 티볼리에는 CD플레이어가 없다. 현대차는 2016년부터 미국 수출용 모델에 CD플레이어를 뺐다. 시장조사 기관 IHS 오토모티브는 2021년까지 미국에서 판매하는 차 중 46%가 CD플레이어를 달지 않으리라고 예측했다. 한 포드 관계자는 차에서 CD플레이어를 없애면 2.3㎏ 정도의 무게를 덜 수 있다고 밝혔다. 무게뿐 아니라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사람들이 점점 차 안에서 CD를 듣지 않는다는 건 이들에게 CD플레이어를 없앨 좋은 구실이 된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세대 A클래스에는 디지털 계기반 오른쪽에 가로로 긴 디스플레이가 달렸다.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메르세데스 벤츠의 차세대 A클래스에는 디지털 계기반 오른쪽에 가로로 긴 디스플레이가 달렸다. 사진 메르세데스 벤츠

대시보드, 각종 페달도 없어져

먼 미래의 일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율주행 시대가 본격화하면 자동차에서 스티어링휠이 사라지리라 전망한다. 지난 6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시승한 폴크스바겐의 자율주행 콘셉트카 세드릭에 스티어링휠이 없었다. 스티어링휠뿐 아니라 대시보드도, 각종 페달도 없었다. 마주 보게 놓인 시트만 있을 뿐이었다. 시트 사이에 큼직한 태블릿이 있는데 이것으로 목적지를 설정하거나 차와 도로에 관한 각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시트 사이에 있는 ‘고(GO)’ 버튼을 누르면 문이 닫히고 차가 스스로 출발한다. 아아, 다른 건 몰라도 스티어링휠이 없는 차를 타고 싶진 않다. 운전대만큼은 제발 남겨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