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카메라 든 사람의 왼쪽) 감독이 영화 ‘버드맨’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카메라 든 사람의 왼쪽) 감독이 영화 ‘버드맨’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베니스국제영화제가 한창이다. 이병헌과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나란히 레드카펫에 선 사진이 뉴스를 타며 개막 소식이 전해진 건 8월 29일. 아직 올해의 작품상은 발표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신작 ‘로마’의 수상 여부다. 넷플릭스를 통해 오는 12월 개봉되는 이 영화는 그보다 두 달 앞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그래비티’로 유명한 쿠아론 감독이 5년 만에 선보이는 ‘로마’는 이탈리아 로마가 아닌 1970년대 멕시코시티 로마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 대한 정보라고는 감독의 유년 시절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로 자신을 길러준 여성들에 대한 감사와 애정을 담고 있다는 것 정도가 전부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주목하는 건 순전히 감독의 출신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멕시코 출신 감독이 네 차례나 감독상을 받았다. ‘그래비티’의 쿠아론 감독(2014년), ‘버드맨’과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2015·2016년)에 이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올해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미술상, 음악상까지 4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할리우드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오랜 시간 제3세계 영화로만 치부됐던 멕시코 영화가 새삼 화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작 멕시코 영화 시장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나라 대부분이 그렇듯 1980년대 개방정책과 경제적 사정으로 자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한가하게 극장에 앉아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볼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멕시코에선 온갖 마약 사건과 강력 범죄가 들끓는 탓에 요즘 방탄차 산업이 호황을 누릴 정도다.

흥미로운 건 이들 감독이 모두 현재는 멕시코를 떠난 이민자라는 사실이다.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나고 자란 델 토로 감독은 할리우드 데뷔작인 ‘미믹’의 촬영이 한창이던 1997년, 아버지가 납치되는 사건을 겪은 후 미국으로 이주했다. 당시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도움으로 몸값 100만달러를 주고 난 후에야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델 토로 감독은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괴물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양서류 인간과 언어 장애를 지닌 청소부의 종을 초월한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세상의 모든 비주류를 위한 찬가다. 주류 사회에서 배척당한 늙은 게이 화가, 흑인 여성 청소부, 유대인 의사 등 영화 속 조력자들은 마치 재투성이 아가씨의 호박마차를 끌던 생쥐와 도마뱀처럼 백인 남성 우익 집단에 맞서 주인공 커플을 돕는다.

2017년 칸영화제에서 난민 문제를 다룬 VR 단편영화 ‘육체와 모래’를 선보인 이냐리투 감독은 ‘바벨’을 만들 때부터 이민자와 난민 문제를 풀어내는 것에 대해 고민해왔다. ‘비우티풀’은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독재 정권으로 인해 ‘이방인 아닌 이방인’이 돼 카탈로니아 지방의 빈민가를 전전하는 인력 브로커를 주인공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밀입국한 노동자의 삶을 다룬다. 10여 년간 외국을 돌아다니며 이민자로 살아온 이냐리투 감독의 현실 역시 주인공 욱스발과 다르지 않았는데, 영화 제작노트에 그는 “저소득 노동자나 택시 기사들은 우울해질 수가 없다고 나의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그건 부자들의 사치라고 하셨다. 삶은 그들에게 죽음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썼다.

이민자라는 비주류의 삶을 경험한 이냐리투 감독은 미국 문화로 대표되는 수퍼 히어로물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다. 은퇴한 수퍼 히어로의 현실을 다룬 ‘버드맨’에서 감독은 ‘배트맨’ 출신의 배우 마이클 키턴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주목받고 싶은 욕망과 별 볼 일 없는 현실 사이의 괴리로 인해 혼란에 빠진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 감독은 재즈풍의 음악을 영화 전반에 사용하며 마블 코믹스식의 환상을 어두운 색채로 현실과 공존시켰다. 멕시코를 배경으로 한 ‘이 투 마마’를 통해 사회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쿠아론 감독은 여성주의 관점의 SF영화를 창조했다. 불임률이 90%에 달하는 어느 미래, 전 세계 최연소인 18세 소년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영화 ‘맨 오브 칠드런’에서도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는 건 백인 남성이 아니라 가난한 흑인 이민자 여성이 수태한 딸이다.


“영화가 좋은 점은 국경을 없앤다는 것”

델 토로 감독은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자신과 쿠아론 감독이 이민자라는 사실을 강조하며 “영화가 좋은 점은 국경을 없앤다는 것이고, 또 계속 이렇게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수백 명의 예멘 난민 신청자가 제주도에 체류하면서 국내에도 난민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요즘, 이들 멕시코 출신 감독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된다. 올해 5월 기준 국내 누적 난민 신청자는 4만여 명이며 이 중 절반은 난민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심사가 종료된 2만여 명 중 난민으로 인정받아 보호받게 된 사람은 지금껏 800여 명에 불과하다. 당장이라도 제주도가 이국의 난민에게 점령당하리라 걱정하진 않아도 될 만한 숫자다. 문제는 난민으로 인정받거나 거부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난민 신청자들이 비자도 없이 무작정 낯선 땅에 머무르며 결과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적 이주민과 난민을 구분 짓는 지점도 모호하다. 각자의 사정이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영화는 어떤 지혜로운 해법을 시사할까. 영화는 사실 그대로의 사건을 재현함으로써 과거를 상기시키는 인류의 기억 보존 장치가 아니다. 그보단 불완전한 우리의 삶이 과거에 경험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만들어낸 숱한 상처와 우리 내면 어딘가에 남은 상흔을 어떻게 안고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보다 전향적인 차원의 예술 활동이다. 부조리한 사회일수록 환상의 강도는 더욱 높아진다.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이 영화들이 보여주는 진실이란 마치 ‘그래비티’에서 샌드라 블록이 지구 밖에서 바라보던 지구처럼 기이하고, 슬프고도 아름답다.

밤낮으로 유령이 출몰하는 이 환상의 세계는 현실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상황은 시공간의 법칙을 초월한다. 끔찍한 내전과 굶주림, 핍박 등 악몽 같은 일상을 겪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은 그로 인해 허상과 실제 그 어딘가의 사변적 세계에 머물게 된다. 죽은 것도 살아 있는 것도 아니며, 꿈을 꾸는 것도 눈을 뜨고 있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다. 이분법적인 세계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가시적인 세계다. 21세기 뉴멕시코 시네마의 기수들은 바로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초현실 세계를 저마다의 영화적 기법으로, 매우 감각적인 시각 언어로 전달한다. 영화가 당장 우리 앞에 산재한 골치아픈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겠지만, 문제 해결의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