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올해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지 30주년 되는 해다.

최근 유튜브와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하나 있다. KBS가 서울 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특집 다큐멘터리 ‘88/18’이다. 1988년과 2018년의 상황을 하나의 프레임에 병치시킨 이 57분짜리 다큐멘터리는 자칫 ‘팔팔씹팔’로 읽힐 수 있는 제목 그대로 묘하게 흘러간다. 명색이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만들어진,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이건만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들의 모습이나 올림픽 명장면은커녕 개막식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올림픽이라는 초특급 메가 이벤트를 향해 나라 전체가 달려가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다.

얼마 전 이 방송을 만든 이태웅 KBS PD를 만나 제작 뒷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스포츠국 소속이다. 러시아 월드컵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중계를 하며 가외 업무로 ‘88/18’을 같이 준비했다. 그는 특정 키워드의 입력 없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KBS 아카이브 자료실에 있는 모든 자료 화면을 닥치는 대로 모았다고 한다. 2시간짜리 테이프 800개 분량을 다운로드받는 데만 사흘이 걸렸을 정도였다. 방대한 자료 수집 능력과 유머 감각으로 한국 씨름 현대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천하장사 만만세’를 만든 적 있는 이태웅 PD다운 선택이었다. 그렇게 수집된 자료 화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980년대에 유행했던 코미디 프로그램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부터 유리겔라의 숟가락 마술쇼, ‘땡전 뉴스’로 불리던 그 시절의 뉴스와 어린이 프로그램까지 서울 올림픽과 연결된 전 장르의 아카이브 자료 화면들이 마치 이어달리기를 하듯 잽싸게 지나간다.

화면에 붙은 알록달록한 형광색 자막도 독특하다. 이 자막을 담당한 이는 ‘장기하와 얼굴들’ 앨범 재킷의 복고풍 타이포 디자인으로 유명세를 탄 김기조다. 배경음악은 힙합 크루 ‘360사운즈’의 수장이자 한국 턴테이블리즘 음악 시장을 연 ‘DJ 소울스케이프’가 맡았다. 사진을 담당한 최다함 역시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던 시절부터 패션 잡지와 주로 작업해오던 인물이다. 공영방송에서 이토록 힙한 엔딩 크레디트를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스포츠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였기에 가능했던 일일 것이다. 이태웅 PD 역시 인정하는 부분이다. “만약 다른 부서에 만들었다면 이 상태로 방송되긴 힘들었을 거예요. ‘다큐멘터리는 어떠해야 한다’는 정해진 필터링 과정이 있을 테니까요. 그런 점에선 스포츠국이 확실히 자유롭죠.”


KBS 다큐멘터리 ‘88/18’은 5공화국 시절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언론통폐합 청문회’로 시작한다. 사진 유튜브 캡처
KBS 다큐멘터리 ‘88/18’은 5공화국 시절 ‘실세’로 꼽혔던 허화평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언론통폐합 청문회’로 시작한다. 사진 유튜브 캡처

성화 봉송 위해 판자촌 철거까지

덕분에 ‘88/18’은 마치 공정한 룰을 지키는 스포츠 경기처럼 카메라는 어느 한쪽 편에 서지 않고 중립적이다. 시청자의 정치적 입장이나 사회를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풍부하다. 누군가는 이 영상에서 억압의 시대에 대한 냉소를 캐치하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조국과 현 정권을 향한 찬가를 보게 된다. 1980년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는 그저 촌스럽고 우스꽝스러운 촌극일 수도 있겠다. 어느 영화 평론가는 무려 미셸 푸코의 ‘지식의 고고학’을 펼쳐놓고 영화적 은유를 설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숱한 이야깃거리를 양산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88/18’은 성공을 거뒀다.

우리에게 1988년은 어떤 의미일까? 당시 ‘국민학교’를 다니고 있던 나는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을 들으며 호돌이와 호순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 동화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뀐 건 1996년이기 때문에 1995년에 첫 등교를 한 1988년생들은 마지막 국민학생이 됐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와 같은 낭만도 있었고, 한국 최초의 독립 다큐멘터리로 기록된 김동원 감독의 ‘상계동 올림픽’에서와 같은 비극도 있었다. 1980년대 상계동 일대 판자촌은 올림픽 성화 봉송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강제 철거를 당했다. 축제에서 소외당한 200여 명의 가난한 이들은 채 1분도 안 되는 성화 봉송을 위해 그 해 1월부터 9월까지 천막도 없이 허허벌판에서 떨었다. 최루탄 가스가 연일 거리를 뒤덮었고, 정권도 교체됐다. 3S(스크린·스포츠·섹스)정책을 내걸고 서울 올림픽을 진두지휘한 전두환 정권이 올림픽 개막식을 목전에 두고 그 화려한 성전에서 물러나야만 했던 사건은 한 편의 블랙 코미디 같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예술의전당이 건립되고, 백남준이 전 세계 생방송 위성 이벤트를 벌인 것도 1988년이다.

서울 올림픽 30주년을 기념해 올해는 관련 전시와 영상 자료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는 지난여름부터 10월 14일까지 ‘88올림픽과 서울’ 특별전을 개최했다. 전시된 자료 사진들은 서울 올림픽의 또 다른 후보지였던 일본 나고야와의 치열한 올림픽 유치 과정을 다뤘다. 잠실 지역이 올림픽 타운으로 조성되며 강남이 탄생하는 모습도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아직 진행 중인 전시도 있다. 소마미술관에서 내년 2월 24일까지 ‘올림픽 조각 프로젝트-Post88’을 만날 수 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 올림픽 개최를 위해 국내 최대 규모의 도심 속 테마공원으로 조성됐던 올림픽공원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서울 올림픽 이후 30년이 흐른 지금, 다시 보는 서울 올림픽은 오늘의 우리 사회를 생각하게 한다. ‘88/18’은 올림픽조직위원장이었던 ‘보통 사람’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막을 내린다.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장면은 쇼 프로그램의 엔딩과 맞물린다. 미래적인 은색 의상을 입고 등장한 가수 민해경이 부르는 노래는 무려 ‘서기 2000년’이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 우리는 로케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 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 (중략)/ 다가오는 서기 2000년은 모든 꿈이 이꿔지는 해.” 올림픽이라는 쇼는 끝났고, 우리의 삶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것이 바뀌고 또 여전한 일상 속에서 언젠가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도래하길 고대하면서.


▒ 이미혜
패션·미술 칼럼니스트, 문화기획자, 보그코리아 컨트리뷰팅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