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야르 호수를 품은 테카디의 리조트. 사진 이우석
페리야르 호수를 품은 테카디의 리조트. 사진 이우석

흔히 인도를 ‘여행의 끝판’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인도가 영혼의 안식처라 치켜세우고 또 어떤 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둘 다 이해가 간다. 인도는 그런 곳이다.

유럽인은 모두 한때 인도를 동경했다. 바스쿠 다가마가 그랬고, 콜럼버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 만난 원주민을 ‘인디언’이라 불렀을 정도다. 왜 그랬을까. 먹는 금이라 불리는 향신료(spice) 때문이었다. 하지만 향신료가 비싸지기 전에, 인도는 유럽보다 먼저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문명은 그들의 질서 속에 지금까지도 공고히 지켜지고 있다. 신비로운 인도의 속살을 가까이 지켜보기 위해 인도를 찾았다. 드넓은 인도 땅에서도 서남부 케랄라주(洲). 늘 그랬지만 이번 여행은 특히나 많은 영감을 줬다. ‘상상 속 인도’와 가장 다르면서도 인도가 자랑하는 모든 것이 잘 갖춰진 곳이 케랄라주다. 이름만큼 명랑하다. ‘인도 속 유럽’이라 불리는 만큼 위험한 모험은 없다. 1498년 포르투갈인 바스쿠 다가마가 말라바(Malabar) 해안에 도착했다. 케랄라는 이때부터 변화의 물길을 탔다. 유럽과 아랍이 뱃길로 인접한 만큼 그들과 역사, 문화(심지어 종교까지)가 융합되기 시작했다.

케랄라 여행 일정을 남쪽 트리반드룸과 바칼라로부터 동쪽 테카디(Thekkady) 고원으로 갔다가 서북쪽 쿠마라콤, 코친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으로 잡았다. 지형과 문화에 따른 다양성을 느껴보기 위함이었다.

뭄바이에서 항공기로 이동한 트리반드룸. 인도 남서부 해안의 중심도시다. 이곳 아라비아해 해변을 따라가면 바칼라(Varkala) 지역이 나온다. 아라비아 해안 절벽이 멋진 곳이다. 천년이 넘은 힌두사원이 있고, 해변 옆 절벽 위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절벽 아래엔 거친 파도가 날름대고 위에는 멋진 카페가 늘어섰다.


인도의 4대 무용 중 하나이자, 중국 경극의 원조로 꼽히는 케랄라의 민속무용극 ‘카타칼리’ 공연 모습. 사진 이우석
인도의 4대 무용 중 하나이자, 중국 경극의 원조로 꼽히는 케랄라의 민속무용극 ‘카타칼리’ 공연 모습. 사진 이우석

노천카페에 앉아 쌉싸름한 인도식 커피나 차이(chai) 한 잔을 놓고 아라비아해로 떨어지는 붉은 태양을 바라보면 세상 어느 곳보다 여유로운 저녁을 보낼 수 있다.

바다를 봤으니 산도 봐야겠다. 동쪽 고원지대로 오른다. 전형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이다. 차가 고불고불한 좁은 산길을 한참 오른다. 에어컨을 꺼야 그나마 시원스레 오를 수 있는 험악한 산악이다. 페리야르(Periyar) 호수를 품은 테카디는 인도 서부를 종(縱)으로 지르는 웨스턴 고츠(Western Ghats) 산맥 중 이두키(Idukki) 지역에 해당하는 고원 지대다. 바로 이곳에서 ‘먹는 금’이 난다. 향신료가 냄새나는 고기를 먹던 유럽인을 열광시키며 수많은 전쟁을 낳았다.

커피와 각종 향신료 농원이 숲속에 있다. 늘 가루나 알 상태로만 봐왔던 후추나무 덩굴, 향신료의 여왕이라 불리는 카르더멈(Cardamom), 향긋한 레몬그라스, 다섯 가지 맛을 내는 올스파이스, 계피 등을 재배하는 농장을 둘러보는 투어가 있다.

페리야르댐 건설로 만들어진 물라페리야르 호수에 이른 아침 물을 마시러 온 야생동물을 관찰할 수 있는 유람선 상품도 있다. 배 2층에 앉아 호숫가로 물 마시러 나온 멧돼지, 물소, 호랑이 등을 보는 코스다. 인도에서 가장 큰 야생동물 공원이며 호랑이 보호구역이다. 하지만 호랑이는 여간해선 보기 힘들다. 대신 물총새(Kingfisher), 가마우지(Snakebird) 등 독특한 새들은 언제라도 볼 수 있다.

여정은 ‘인도의 베네치아’라 불리는 쿠마라콤(Kumarakom)과 최대 향신료 수출항 코친으로 이어졌다. 쿠마라콤은 석호(潟湖)가 얼기설기 이어진 수로를 보트를 타고 유람할 수 있다. 넓은 인도 대륙의 지도에서도 보일 정도로 방대한 수로다. 과거 이 물길을 따라 향신료와 쌀을 실어 코친까지 날랐다. 물가 시장에 내리면 음료수와 해산물 따위를 살 수 있다. 랍스터만한 커다란 새우가 1마리에 350루피(7000원) 정도. 주방장이 들고 가더니 즉석에서 요리를 해온다. 매콤한 향신료를 듬뿍 얹어 볶은 새우 요리가 커리에 지친 입맛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하이라이트는 코친항이다. 한때 세계에서 기장 번성했던 국제 무역항이다. 아랍의 이슬람, 중국 광둥의 어업, 유대인 상업, 포르투갈 가톨릭 등이 모두 녹아 있는 ‘문화의 융합로’다. 구도심 마탄체리에서 향신료 향기를 가장 선명하게 맡을 수 있다. 대형 향신료 창고, 시장 골목, 포르투갈의 성 프란시스 성당, 네덜란드 궁전, 유대교회당(파르데쉬 시나고그) 등 중세 국제 도시로서의 기능과 특성을 완벽히 갖췄다.

바스쿠 다가마 상륙 이전엔 유대인이 이곳 상권을 주도했다. 약 2000년 전에 이미 향신료 장사가 큰 돈벌이가 된다고 생각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이들이다. 20세기 중엽 이스라엘 건국 이후 모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가고 지금은 몇 명 남지 않았다고 한다.

인근 해안에는 기중기 형태로 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리는 중국 광둥식 조업망이 그대로 남아, 실제 고기를 잡아 팔기도 한다.

인도스럽지 않은 케랄라서 오히려 가장 인도다운 모습과 마주칠 수 있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트래블러가 왜 케랄라를 ‘꼭 가봐야 할 50곳의 세계 여행지’ 중 하나로, 그것도 지상낙원(Paradise Found) 카테고리로 꼽았는지 이제 이해가 된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전 여행기자협회 회장, 15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


여행수첩

인도 국적 제트에어웨이즈가 곳곳을 운항한다. 뭄바이를 경유해 트리반드룸까지 이동할 수 있다. 제트에어웨이즈는 대한항공과 인도 노선에 대해 코드셰어를 시행 중이다. 문의 퍼시픽에어에이전시(PAA) (02)317-8770.

9월부터 겨울 지나 6월까지가 방문 최적기. 7~8월은 몬순(열대우기) 기간이라 날씨가 좋지 않다. 케랄라주는 타밀어와 말라얄람어를 사용하지만 영어가 불편 없이 통용된다. 타지역보다 소득 수준과 질서 의식이 높은 편이다. 주요 종교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이며, 기독교 비율이 타지역에 비해 상당히 높다.

먹거리 빵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 북부와 달리 쌀을 많이 먹는다. 밥이나 쌀가루를 얇게 부친 아팜(appam)이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해물을 많이 먹는 것도 특징이다. 다양한 종류의 커리에 무슬림과 포르투갈 음식문화가 녹아들어 생선요리와 해물커리 등 독특한 케랄라풍 음식이 탄생했다.

볼거리 인도의 4대 무용 중 하나이자, 중국 경극의 원조로 꼽히는 ‘카타칼리’가 탄생한 지역이 바로 코친이다. 짙은 화장을 한 남성 연기자가 펼치는 손짓과 표정 연기가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여기다 쿵후와 가라테를 연상시키는 인도 전통무술 칼라리파야투, 전통 의술 아유르베다의 발생지로도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