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의 신형 3시리즈에는 왔던 길을 스스로 후진해 가는 ‘리버싱 어시스턴트’ 기능이 적용됐다. 좁은 골목이나 주차장에서 차를 돌릴 수 없어 후진해야 할 때 요긴할 것 같다. 사진 BMW 코리아
BMW의 신형 3시리즈에는 왔던 길을 스스로 후진해 가는 ‘리버싱 어시스턴트’ 기능이 적용됐다. 좁은 골목이나 주차장에서 차를 돌릴 수 없어 후진해야 할 때 요긴할 것 같다. 사진 BMW 코리아

3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일산 킨텍스에서 ‘2019 서울모터쇼’가 열렸다. 자동차 잡지 기자로 일하는 덕분에 일반인보다 하루 먼저 모터쇼를 둘러볼 수 있었다. 올해 모터쇼는 예년보다 볼거리가 더 적었다.

서울모터쇼조직위원회는 참가 업체가 227개에 달해 역대 최대 규모라고 자랑했지만 실제로 눈길을 사로잡은 부스는 적었다. 완성차 업체의 참가율도 저조했다. 볼보는 글로벌 방침이라며 이번에도 서울모터쇼에 부스를 차리지 않았고, 포드·링컨도 킨텍스 전시장에 오지 않았다. 디젤 스캔들 여파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폴크스바겐 그룹 산하 브랜드들은 포르쉐를 제외하고 모두 모터쇼에 부스를 세우지 않았다.

그래도 갓 출시된 따끈따끈한 새 차와 올해 등장할 자동차를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다는 게 위로가 됐다. 무엇보다 새 차들에 얹힌 신기술이 흥미를 끌었다.

안팎으로 완전히 새로워진 현대 쏘나타는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 시스템’과 ‘음성인식 공조제어 기능’ 같은 다양한 신기술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끈 기술은 ‘현대 디지털 키’였다.

열쇠가 없어도 스마트폰으로 도어를 열고 닫거나 시동을 켜고 끌 수 있다는 건 여느 스마트폰 스마트키 기능과 비슷하다. 하지만 현대 디지털 키는 네 명까지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다르다. 애플리케이션에서 배우자나 가족, 친구에게 디지털 키를 공유해주면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도어를 여닫거나 시동을 켜고 끌 수 있다.

공유하는 기간을 설정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달 동안만 공유하고 싶다면, 날짜를 선택하면 된다(최대 1년까지 가능하다). 문만 열 수 있게 하거나 시동까지 켜고 끄게도 할 수 있어 어린 자녀와 디지털 키를 공유해도 행여 나 몰래 운전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아쉬운 부분은 NFC(근거리 무선 통신) 방식이라 NFC 기능이 없는 아이폰은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 측은 넉 달 전 애플과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협의 중이라고 했지만 아직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나 보다. 한 달 전 아이폰 XR을 산 나로서는 안타까울 따름이다.


신형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신기능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 사진 랜드로버 코리아
신형 레인지로버 이보크의 신기능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 사진 랜드로버 코리아
인공지능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가 적용된 벤츠 A 클래스 내부. 사진 벤츠 코리아
인공지능 기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가 적용된 벤츠 A 클래스 내부. 사진 벤츠 코리아

세상에 없던 신기술 뽐낸 해외 브랜드들

오는 6월 국내에 출시될 랜드로버의 신형 레인지로버 이보크에는 세상에 없던 ‘신박한(신기하면서도 참신한 경우를 말하는 신조어)’ 기술이 담겨 있었다.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Clear Sight Ground View)’라는 이름의 시스템인데, 사이드미러와 프런트그릴에 달린 카메라가 차 바닥 아래의 지형을 촬영해 대시보드의 모니터에 띄워준다.

그러니까 차 안에서 모니터로 바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능이다. 오프로드를 달릴 때 차에서 내릴 필요 없이 뾰족한 돌이나 움푹 팬 포트 홀을 쉽고 편하게 확인할 수 있다. 단, 이 시스템은 앞유리에서 8.53m 거리까지만 보여줄 수 있으며, 시속 30㎞ 이하로 달릴 때만 가능하다.

하반기 출시 예정인 새로운 재규어 XE에 적용될 ‘클리어 사이트 룸미러(Clear Sight Rearview Mirror)’도 솔깃했다. 이 기능은 레인지로버 이보크에도 적용됐다. 안테나에 달린 별도의 후방 카메라가 차 뒤쪽을 촬영해 룸미러에 있는 고해상도 스크린으로 전송한다.

트렁크에 짐이 가득 실려 있어 뒤쪽 상황을 확인할 수 없을 때 활용할 수 있다. 룸미러에 있는 버튼으로 후방 카메라 화면을 선택하면 짐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운전자는 일반 미러 기능과 후방 카메라 화면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서울모터쇼가 열리기 전 조용히 국내에 출시된 BMW의 신형 X5에도 새로운 기술이 적용됐다. 왔던 길을 스스로 후진해 가는 ‘리버싱 어시스턴트(Reversing Assistant)’다. 차가 멈추기 전까지 시속 35㎞ 이하로 달린 구간에서의 진행 방향을 기억했다가 마지막으로 달린 50m 이내의 거리를 스스로 후진해 가는 기능이다.

운전자는 변속기를 ‘R’에 두고 모니터에 뜬 리버싱 어시스턴트 메뉴를 체크하기만 하면 된다. 주차 어시스트처럼 차가 스스로 운전대를 돌린다. 운전자는 가속 페달이나 브레이크 페달만 밟으면 된다. 이 기능은 좁은 골목이나 주차장에서 차를 돌릴 수 없어 후진해야 할 때 요긴할 것 같다. 신형 3시리즈에도 이 기능이 있다.

올 상반기 안에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A 클래스에도 눈길을 사로잡는 기술이 있었다. 바로 벤츠가 지난해 부산모터쇼에서 자랑한 인공지능 기반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이다.

스티어링휠에 달린 버튼이나 센터 콘솔의 터치패드,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에서 각종 기능을 조작할 수 있는데, 음성인식 기능이 한층 진화했다는 게 새롭다. 음성 명령으로 실내 온도를 조절하거나 오디오 조작, 내비게이션을 작동하는 기본적인 기능 말고도 운전자의 말뜻을 헤아려 비서처럼 각종 기능을 수행하려는 성의를 보인다.

예를 들면 “안녕 벤츠, 나 좀 더운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자동차가 스스로 에어컨을 켜고, “안녕 벤츠, 나 배고파”라고 하면 근처 음식점을 내비게이션에 띄워주는 식이다. 아직 기술이 완전히 공개되지 않아 운전자의 말(물론 한국어다)을 어디까지 헤아릴 수 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앞선 음성인식 기능인 건 분명하다.

지금까지 소개한 각종 기술은 지금 당장 국내에서 만날 수 있거나 적어도 올해 안에는 확인할 수 있는 기술이다. 가장 궁금한 건 역시 메르세데스-벤츠의 MBUX다. 벤츠가 얼마나 한국어 작업을 잘했을까? 벤츠가 얼마나 내 말을 잘 알아들을까? 점점 ‘귀차니스트’가 돼가고 있는 요즘, 전자기기도 버튼을 누르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편하다.


▒ 서인수
모터트렌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