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전 일왕(오른쪽)과 나루히토 새 일왕. 사진 블룸버그
아키히토 전 일왕(오른쪽)과 나루히토 새 일왕. 사진 블룸버그

1926년 히로히토(裕仁)가 일왕에 오른 이래, 일본 궁내청(宮内庁)은 왕실의 건재함을 알릴 때, 왕가 일족이 클래식을 즐기는 사진을 즐겨 썼다. 어려서부터 군사 훈련에 매진해 문화적 소양이 부족했던 히로히토를 대신해 부인 고준(香淳) 왕후가 일곱 자녀의 예술 교육을 책임졌다. 맏딸 히가시쿠니 시게코부터 막내 시마즈 다카코까지, 훗날 일왕을 물려받은 아들 아키히토(明仁)도 예외 없이 당구와 피아노를 배우게 했다. 1952년 아키히토의 누이, 이케다 아츠코가 출가할 때 왕후는 야마하 피아노를 혼수에 넣었고, 가정에 업라이트 피아노를 놓는 유행을 선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 사령부로부터 궁내의 하프를 왕실의 자산으로 지킨 이도 고준 왕후다.

아키히토는 왕태자 시절부터 부인 미치코(美智子)와 첼로·피아노 듀오를 함께했다. 부인과 만난 다음에야 첼로를 배워, 기량 면에서 왕실에선 아마추어다. 미국을 방문하면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와 요요 마의 첼로 공연을 즐겼다. 왕위 퇴위를 발표한 다음, 궁 안팎에서 연주 이벤트가 많아졌다. 일본을 대표하는 콘서트장인 산토리홀에 부부 동반으로 나와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는 모습도 부쩍 늘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15년 일본 방문 당시,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의 피아노 버전 초연 악보를 아키히토에게 선물했고, 아키히토는 기후변화 협약에 대한 메르켈의 노력을 치하하며 화답했다. 메르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비롯한 바그너 악극 마니아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을 다닌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수상처럼 메르켈은 독일의 클래식 자산을 외교적 화합의 도구로 쓰는 데 능숙하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본 왕실의 친(親)클래식 풍조는 미치코 현(現) 상왕후가 주도했다. 고준 왕후는 닛신(日淸) 제분을 운영하는 쇼다(正田) 가문의 미치코가 평민 출신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왕가 입적 후에는 클래식 영역에서 며느리의 능력을 인정했다. 미치코의 부친 쇼다 히데사부로(正田英三郞)는 독일 유학을 다녀왔다. 그 영향으로 미치코는 1930년대에 집에서 피아노를 쳤다. 왕태자비 시절에도 온천 도시 구사츠에서 열리는 클래식 축제를 찾아가 아티스트를 격려했다.


1973년 12월 궁내청에서. 왼쪽 소파에 있는 인물이 고준 왕후와 쇼와 천왕. 사진 일본 궁내청
1973년 12월 궁내청에서. 왼쪽 소파에 있는 인물이 고준 왕후와 쇼와 천왕. 사진 일본 궁내청
2005년 10월 7일 궁내연주회 중인 첼리스트 아키히토, 피아니스트 미치코. 사진 일본 궁내청
2005년 10월 7일 궁내연주회 중인 첼리스트 아키히토, 피아니스트 미치코. 사진 일본 궁내청

해외에서 만난 예술가와 인연도 이어 갔다. 해외 공관의 주선으로 만난 예술가가 방일(訪日) 연주를 할 때면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미치코는 가톨릭 미션 스쿨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성당에서 울리는 오르간의 풍성한 음향을 좋아했다. 그는 왕비 재임 기간에 오르간 공연장을 즐겨 찾았다. 궁내청은 미치코가 바이올린, 비올라를 다루는 아들 나루히토(德人), 첼리스트 남편과 트리오를 하는 모습을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미치코는 궁내청 관계자를 통해 “손녀 아이코 공주가 학교에서 첼로를 배워서 이제 실내악을 할 수 있는 게 은퇴 후 가장 큰 재미”라고 밝혔다. 미치코는 피아노는 물론 하프도 연주한다. 앞으로 작은 축제장에서 연주하는 모습이 대중매체에 자주 노출될지도 모른다.

나루히토는 부모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클래식을 접했다. 그는 가쿠슈인(學習院) 재학 시절부터 클럽 오케스트라 비올리스트로 활동했다. 우자카 도시유키(현 도쿄음대 명예교수)로부터 40년 넘게 비올라 개인 교습을 받았다. 1985년에는 바흐 콜레기움 도쿄의 바로크 비올리스트로 참가해 런던 세인트 마거릿 웨스트민스터 교회에서 라이브로 바흐 ‘B단조 미사’를 녹음했다. 당시 실황은 일본 오라토리오 연맹의 자체 제작 음반으로 출시됐고, 도시바 EMI가 재발매했다.

나루히토는 동일본 대지진을 위로하기 위해 모교가 준비한 오케스트라 콘서트에서 비올리스트를 맡았다. 2002년 도쿄에서 오페라 ‘나비부인’을 지휘한 정명훈을 격려하러 백스테이지를 찾아 “비올라를 연주할 수 있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정명훈이 앙상블을 제안하면서 2004년 모차르트 ‘피아노 4중주 1번(첼로 미샤 마이스키)’을 합주했다. 나루히토는 2007년에도 정명훈,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가시모토(현 베를린 필하모닉 악장), 중국 첼리스트 자오 징과 슈베르트 실내악을 연주했다.

비올라에 대한 나루히토의 애정과 열정은 프로를 뺨친다. 그는 1987년부터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과 베를린에서 실내악 앙상블을 같이할 정도의 실력을 보유했다. 다만, 왕위에 오른 다음에도 가쿠슈인 OB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속할진 미지수다.

나루히토 일왕의 부인, 마사코 왕비는 외교관 출신으로 어려서 피아노를 배웠지만, 왕실에 들어온 이후 피아노를 치는 장면이 공개된 적은 없다. 대신 왕실 내부에서 플루트를 담당한다는 소문이 있다. 나루히토와 마사코가 성혼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된 이벤트는 클래식 연주회였다. 1986년 스페인 왕족의 일본 방문 리셉션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여러 외교 파티에서 재회했지만, 주변의 관심과 감시에 힘들어했다. 그러다 1991년 일본의 저명 피아니스트 나카무라 히로코가 도쿄 이케부쿠로 예술극장에서 자선 콘서트를 열었을 때, 사실상 ‘왕실 대변인’ 역할을 하던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가 마사코와 모친 유미코를 초대해 신붓감을 향한 왕실의 문턱을 낮췄다.

나루히토와 마사코의 외동딸 아이코 공주(2001년생)는 가쿠슈인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클럽 활동으로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첼로를 담당했다. 악단에서 반주 편곡을 담당하고 송별 학예회에 단원으로 참가할 만큼 솜씨를 인정받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침체기가 왔을 때도 첼로를 벗 삼아 꾸준히 수련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일본에선 아이코 공주가 아키시노미야 후미히토(秋篠宮 文仁) 일가를 대신해, 왕위를 이어야 한다는 여론이 만만치 않다.


▒ 한정호
에투알클래식 & 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