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칼국수
영업 시간 07:00~16:00(일요일 휴무)
대표 메뉴 보말칼국수, 닭칼국수, 영양보말전

풍년순대국밥
영업 시간 매일 07:00~24:00
대표 메뉴 순댓국밥, 족발

육고깃집
영업 시간 매일 17:00~23:00
대표 메뉴 돼지갈비근고기, 육사시미, 한우갈빗살


무작정 바라보고만 싶었다. 낚싯바늘 끝에 마음 한 조각을 달아 두고 내던지고 거두었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공허한 마음으로 무작정 비행기를 탔다. 하늘 위에서 바다를, 땅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고 싶었다. 어느덧 섬이었다. 공항에서부터 야자수가 나를 맞이했다. 하와이, 오키나와, 쿠알라룸푸르…. 이국의 섬이면 더 좋았겠지만 제주라는 것만으로 벌써 마음이 들뜬다. 버스를 타면 들려오는 할망들의 제주어는 처음 이 섬을 방문했을 때부터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 들게 했다. 여러 차례 제주를 찾을 때마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육지와는 다른 풍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육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은 늘 나를 설레게 한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맑은 공기와 좋은 물이 키워내는 온갖 채소가 있고 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이 있다. 그리고 가히 전국 제일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은 돼지가 있다. 이런 것들이 나의 허기를 채워주니, 이 섬에 오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공항에서 차로 40분 정도를 달려 한림으로 향한다. 제주에서도 가장 큰 어항이 있는 덕에 한때는 제주시보다 인구가 더 많았던 지역이다. 앞바다에 비양도가 있어 눈이 지루하지 않고, 협재와 금릉의 바다는 마치 동남아의 그것처럼 옥빛을 띤다. 이런 아름다운 풍광에도 한림이 여행자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이다. 약 10여 년 전 올레길이 깔리면서 신혼여행, 수학여행으로는 알 수 없었던 제주의 숨은 곳이 알려졌다. 관광에서 여행으로 제주를 찾는 목적이 바뀌면서 게스트하우스 붐이 일었고, 소박한 여행자가 찾는 지역의 크고 작은 식당들에 새로운 손님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그 손님들 중 제주에 매료돼 아예 삶의 터전을 제주로 바꾼 이도 적지 않다. ‘제주이민’ 붐의 근원지 중 하나인 한림에는 살아온 자들의 식당이 있다. 살게 된 자들의 식당이 있다. 여행자의 식당이 있다. 제주에서 짧게 머물며 두 곳에서 배를 채웠다. 마음을 채웠다.


한림칼국수의 ‘보말칼국수’. 사진 김하늘
한림칼국수의 ‘보말칼국수’. 사진 김하늘

1│한림칼국수

보말은 제주에서 나는 고둥의 일종이다. 내륙의 강가에서 다슬기를 채취해 국을 끓여 먹듯, 제주에서는 보말로 칼국수와 국을 끓여 내는 식당이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은 모슬포의 옥돔식당이지만 제주 여행붐과 함께 유명해지면서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곳이 됐다. 보말칼국수를 소울푸드로 생각하는 나는 아쉬웠다. 맛있는 한 끼도 소중하지만 시간도 그렇기 때문이다. 한림칼국수는 소중한 시간을 아껴줄 수 있는 훌륭한 대안이다. 보말칼국수의 일반적인 조리법은 보말을 삶아 살과 내장을 빼낸 후, 믹서에 갈아 걸쭉하게 된 내장으로 미역과 함께 국물을 낸다. 그리고 살과 칼국수 면을 함께 넣어 한 그릇을 만들어낸다. 미역과 내장이 한데 어우러져 비취 같은 녹색의 국물이 된다. 젓가락으로 국수를 집어 호로록 입에 넣으면 고소한 국물이 면의 식감과 어우러져 식도에 온기를 가득 채운다. 다슬기, 올갱이 등 비슷한 크기의 고둥류가 그러하듯 해장에 이만한 것이 없다. 어젯밤에 마신 술뿐만 아니라 오늘 밤에 마실 술까지 미리 깨버리고 마는 듯한 해장력을 자랑한다.

한림항 인근에 있는 한림칼국수도 보말칼국수의 고유한 매력을 고스란히 가진다. 다른 식당에 비해 미역과 보말의 함량이 높아 채도는 더 낮다. 해장력은 더 강하다. 생긴 지 그리 오래라 말할 수는 없으나 이미 제법 소문이 났는지 식당은 늘 여행자로 가득하다. 보통 제주 여행자들의 식당은 세대별로 갈리는 경향이 있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 제주 바다의 선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어제의 숙취를 달래고자 하는 이들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몰려든다. 술꾼이란 타이틀에는 성별도 나이도 없다.


육고깃집의 ‘돼지갈비근고기’. 사진 김하늘
육고깃집의 ‘돼지갈비근고기’. 사진 김하늘

2│육고깃집

바다에 가면 으레 회를 찾기 마련이지만 제주를 아는 사람은 돼지고기를 찾는다. 그중 흑돼지를 찾는 사람은 뭘 잘 모르는 관광객이다. 제주를 아는 사람이라면 백돼지, 그러니까 보통 돼지로도 충분하다. 사실 제주에서도 진짜 맛있는 돼지고깃집은 흑돼지를 쓰지 않는다. 진짜 맛있는 돼지고깃집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집을 꼽으라면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곳을 떠올린다.

관광객은커녕 여행자의 발길도 뜸한 읍 주변 도롯가에 있는 이곳은 서울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다가 내려온 이가 운영하는 곳이다. 생활을 위해 제주에 오는 이들 중 카페나 게스트하우스를 여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제주 토박이들의 고유 업종에 과감히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이 도전은 무모하지 않다. 원시인들이 뜯었을 법한 뼈 달린 갈비를 시각적 주 무기로 내세우는데, 그 맛은 차마 인스타그램 한 장에 담을 수 없다. ‘생활의 달인’에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손길로 불길을 다뤄가며 구워내는 고기를 베어 물면 육즙이 기다렸다는 듯 터지고 만다.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맛이 혀를 적신다. 뼈를 집어 들고 원시인처럼 게걸스럽게 살을 씹어 먹노라면 불판이 금세 빈다.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근고기세트를 시킨다. 말 그대로 근 단위로 목살과 오겹살 등을 파는 일종의 모둠구이다. 사장은 뼈갈비와는 또 다르게, 고기를 익히고 가위로 잘라 먹기 좋게 불판 가장자리에 늘어놓는다. 고기가 꽃잎처럼 펼쳐진다. 꽃잎 한 점 한 점을 조심스레 혀에 올려 놓는다. 앞니와 송곳니 그리고 어금니가 서로 경쟁하듯 고기를 씹는다. 잘게 으깨진 고기가 역시 최상의 육즙과 어우러져 식도로 넘어간다.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그동안 내가 서울에서 먹었던 돼지고기는 그저 단백질 덩어리였을 뿐이었노라고. 깨달음을 얻은 순간, 30석이 안 되는 이 작은 가게가 시나이산처럼 느껴진다. 주방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있는 사장님이 모세처럼 보인다. 만약 이런 고기를 매일 먹을 수만 있다면, 나는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처럼 기꺼이 서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 어디 가나안 땅뿐이겠는가.

아뿔싸, 이런 망상을 하는 걸 보니 이미 한라산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별수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해장이 있으니까. 덧없이 내던지기만 했던 낚싯대가 무겁다. 바라보기만 해도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 김하늘
외식 컨설팅 회사 ‘라이스앤컴퍼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