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마크의 한 생이 전생처럼 지나가며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견뎌라. 살아라.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사진 IMDB
화성에서 마크의 한 생이 전생처럼 지나가며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견뎌라. 살아라.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사진 IMDB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붉은 행성, 탐사 중이던 화성의 사막에 거대한 모래폭풍이 몰아친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배는 창으로 쑤시는 듯 아프고 주위엔 아무도 없다. 텅 빈 화성, 텅 빈 기지. 이 악물고 혼자 마취하고 혼자 몸에 박힌 안테나 파편을 제거하고 벌어진 살에 스테이플을 박는다. 생명신호장치가 고장 났으니 돌풍에 날아가 죽었다고 믿었으리라. 예정에 없던 위급 상황, 규정에 따라 임무를 포기하고 대장과 동료 대원들은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으리라고 마크는 상황을 이해한다.

통신장비는 망가졌고 지구와 연락할 길은 없다. 운 좋게 생존을 알린다 해도 지구에서 구조대가 오려면 최소 4년, 남은 식량은 많지 않고 물도 없고 공기도 없다. 이 넓은 우주에서 내가 여기 존재한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것만큼 외로운 일이 또 있을까. 낯선 행성에서 고픈 배를 움켜쥐고 숨이 막혀 혼자 죽어갈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마크는 눈앞에 남겨진 죽음의 시간을 응시한다. 차라리 지난밤 죽었다면 좋았을지도.

살다 보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이대로 팍 죽어버렸으면, 아니 내일 아침 눈을 뜨면 모든 골칫거리가 사라져 버리기를. 시간을 건너뛰어 문제가 해결된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마션’은 그렇게 엄살하고 싶은 어깨를 툭, 치며 세상에 그런 건 없다고, 우주 어디서라도 네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너밖에 없다고 말한다. 도망칠 곳은 없어. 도와줄 사람도 없어. 화성에 홀로 남겨진 시시포스, 그게 바로 너야!

마크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공포로부터 냉정하게 시선을 돌린다. “난 여기서는 안 죽어.” 단호하게 선언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최대한 식량을 아껴 분류해놓고 동료들이 남겨둔 것은 남김없이 재활용한다.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해서 기지 안에 온실을 만들고 밭을 갈고 냉장고에 있던 감자를 꺼내 심는다. 우주비행사가 돼 한 달 예정으로 화성을 탐사하러 왔던 식물학자 마크 와트니는 그렇게 우주에서 유일한 화성인, 마션(Martian)이 된다.

“여기선 뭘 하든 최초야. 이 언덕을 오르는 것도 최초고 내 발길이 닿는 곳은 모두 최초가 되는 거지. 45억 년 동안 이곳엔 아무도 없었지만, 지금은 내가 있어.”

나약하려면 한없이 나약하지만 강하려 들면 끝없이 강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살아야겠다고 결심한 마크는 자신을 절망 속에 방치하지 않는다. 버려졌다고, 재수 없다고, 왜 하필 나냐고 원망할 수도 있으련만, 마크는 마음속에 부정과 불만을 키우지 않는다. 희망과 믿음 때문이다. 반드시 구조될 거라는 희망. 살아있는 것을 알릴 수만 있다면 동료들이, 대장이, 자신의 나라가 기어이 구하러 와 주리라는 믿음. 그렇게 꼭 살아 돌아가리라는 확고한 의지.

마크는 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할 일을 만들고, 방법이 없는 것 같은데 방법을 찾아낸다. 당장은 아무도 볼 수 없지만 영상일지를 쓰며 혼자서도 끝없이 말하고 농담하고 웃는다. 촌스럽다고 투덜거렸던 대장이 저장해온 디스코 음악을 틀어놓고 막춤을 추며 자신을 응원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고 유머와 위트로 받아치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낙천성이라 해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 이상, 스스로 웃음을 끌어내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마크도 그랬을 것이다. 모래폭풍 속에서 안테나 파편 맞고도 안 죽었잖아. 혼자 화성에 남아 수백 일을 견뎠잖아. 그런데 뭐가 무서워. 화성에서 감자 재배한 놈 있으면 나와 보라 해!

그렇게 온 힘을 다했을 때 기적처럼 지구와 통신이 이뤄지고 수개월에 걸쳐 마크를 구조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진다. 시급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급선을 먼저 보내겠다고 했을 때 마크의 가슴은 희망으로 부풀어 오른다. 그러나 누군가 비웃기라도 하듯 이어지는 불운들. 감자 농사 실패, 기지 폭발 그리고 발사된 보급선의 공중분해.

긍정적 마인드로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이 주어지는 건 아니다. 한발 앞으로 갔나 싶으면 두 발 뒤로 물러서야 하고, 세 발자국 전진했다 싶을 때 다섯 걸음 후퇴하기를 반복 경험하면서 마크는 할 말을 잃는다.

“부모님께 전해주세요. 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고요. 제 일을 아주 많이 사랑했고, 아주 뛰어났다고. 저 자신보다 더 위대한 것을 위해 죽었다고요.”

마크는 사막에 앉아 해가 저무는 화성의 지평선을 바라본다.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지만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의 실패.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는 마지막을 생각한다. 체념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한 자에게만 허락되는 운명에 대한 순응. 그러자 저 멀리에서 또 다른 문이 열린다.

혼자서도 우스갯소리 하며 잘 웃던 마크였지만 561일간의 나 홀로 생존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상승선을 타고 그곳을 떠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지 않으려 이를 악문다. 외로움을 이겨내려 얼마나 애를 썼는지, 마침내 살았다는 안도감에 얼마나 가슴 벅차 하고 있는지, 동시에 그동안 견뎌온 모든 시간이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또 한 번의 두려움을 가까스로 견디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어느 누구도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다. 참고 견디며 웃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있을 뿐.

충격적인 외계생명체와의 조우를 그린 ‘에일리언’, 인간의 불완전한 기원을 담은 ‘프로메테우스’, 복제인간의 암울한 미래를 다룬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영화를 통해 인류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을 보여주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이 이 영화에서만큼은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이야기한다. ‘굿 윌 헌팅’의 수학 천재,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 ‘인터스텔라’에서 만 박사의 외계행성 장기체류 경험까지 총동원한 맷 데이먼이 화성에서의 생존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다.

입시, 취업, 첫 출근, 새로운 바이어, 새로운 계약, 다시 돌아온 카드 결제일과 내일 당장 막아야 하는 수표.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은 화성에서 생존하는 것보다 더 치열한 고군분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힘들다 해도 우리는 지구에 있다. 물도 있고 공기도 있고 와이파이도 펑펑 터진다. 고우니 미우니 해도 가족도 친구도 옆에 있다.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살려야겠다는 기적을 부른다. 그러니 포기하지 말 것. 삶이 당신을 놓을 때까지 절대 삶을 놓지 말 것.

영화를 봤다면 ‘마션’의 공식 뮤직비디오 ‘I will survive’도 함께 추천한다. 영화는 웃으며 봤는데도 3분 조금 넘는 영상을 보는 동안 눈물이 찔끔 날지도 모른다. 화성에서 마크의 한 생이 전생처럼 지나가며 우리에게 말하는 것 같다. ‘견뎌라. 살아라.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


마션(The Martian, 2015)

장르|모험·드라마·SF
국가|미국·영국
러닝 타임|144분
감독|리들리 스콧
출연|맷 데이먼(마크 와트니), 제시카 차스테인(멜리사 루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