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모비딕(1956년)’의 한 장면. 사진 IMDB
그레고리 펙 주연의 영화 ‘모비딕(1956년)’의 한 장면. 사진 IMDB

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황유원 옮김|문학동네
전 2권|각 권 1만3500원

올해는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의 탄생 200주년이다. 멜빌은 소설 ‘모비 딕’의 작가다. 1851년에 발표된 ‘모비 딕’은 당시로선 낯선 형식과 신성모독 혐의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 문학의 최고봉 자리에 올랐다. 대하소설의 분량에 걸맞게 웅숭깊은 생각의 심층을 지니고 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흰고래를 다룬 소설이기 때문에 국내에선 오랫동안 ‘백경(白鯨)’으로 번역됐다. 최근 이 소설이 황유원 시인에 의해 새롭게 옮겨졌다.

기존 번역본에선 ‘이스마엘’ 또는 ‘이슈마엘’로 표기된 주인공 이름을 황유원 시인 번역본은 현지인 발음을 참고해 ‘이슈미얼’로 적었다.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라며 등장한 화자 ‘나’는 여리고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지만 돈 한 푼 없이 산다. 결국 그는 “나는 잠시 배를 타고 나가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그것이 내가 울화증을 떨쳐버리고 날뛰는 피를 잠재우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나’는 과감하게 포경선에 올라타 고래잡이가 됐다. 이어지는 소설의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포경선 선장 에이해브가 광기와 다를 바 없는 집념에 사로잡혀 모비 딕으로 불리는 흰 향유고래를 추적한다. 모비 딕을 잡으려다 한쪽 다리를 잃은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극이 펼쳐지는 가운데 주인공을 비롯한 다양한 인간 군상이 겹쳐지는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 다 아시다시피 결국 선장은 모비 딕과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가 깊은 바닷속으로 함께 사라진다. 침몰한 포경선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슈미얼이 소설 ‘모비 딕’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구조를 지녔지만, 방대한 분량을 가뜩 채우고 있는 비유와 상징 덕분에 대양처럼 드넓은 서사와 심해처럼 깊은 암시를 골고루 갖춘 문학의 경지를 보여준다. “운명의 여신들이라는 무대감독들이 다른 이들에게는 고상한 비극에서의 숭고한 역할, 우아한 희극에서의 쉽고 간단한 역할, 익살극에서의 명랑한 역할 등을 맡기면서 왜 하필 내게는 포경 항해에서의 이런 보잘것없는 역할을 맡겼는지는 알 수 없다”라고 중얼거리는 주인공의 입심은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점점 더 활기를 띠게 되고, 독자는 점점 깊이 몰입하다가 고래 잡으러 먼 항해에 따라나선다. ‘고래가 섬만한 몸뚱이를 굴리는 거칠고도 먼 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고래의 위험성’ 같은 문장이 거대한 상상의 나래를 퍼덕이면서 독자의 무의식에 깃든 고래 한 마리를 솟아오르게 한다.

황유원 시인은 1년에 걸쳐 번역에 매달렸다고 한다. 힘든 과정이었기 때문에 다시 번역을 하라면 차라리 원양어선을 타겠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그는 원작의 복문 구조를 쉽게 풀이하느라고 애썼다고 한다. 하나의 문장 안에 온갖 요소를 집어넣은 원문을 번역 과정에서 분해하고 그사이에 적절한 접속사와 어미들을 배치했다는 것. “어쨌거나 이로써, 때로 눈앞을 지나가는 흰긴수염고래의 몸뚱이만큼이나 한없이 길게 이어져 있으며, 밧줄처럼 마구 뒤엉켜 있기도 한, 고래힘줄만큼이나 질기고 힘센 문장들을 한국어로 옮기느라 한동안 망망대해에 혼자 내버려진 기분으로 낮이 밤이 되는 줄도 모르고 다시 밤이 낮이 되는 줄도 모르며 작업에 임한 나날들도 끝이 났다”라고 토로한 번역 후기가 예사롭지 않다.

박해현 조선일보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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