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무대에 싸이와 BTS를 열정적으로 알린 미국 ‘빌보드’의 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문화소통포럼(CCF)에 미국 대표 크리에이터로 참석해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세계 무대에 싸이와 BTS를 열정적으로 알린 미국 ‘빌보드’의 팝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문화소통포럼(CCF)에 미국 대표 크리에이터로 참석해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한국 언론보다도 더 빨리 더 깊이 더 많이 한국 음악을 기사화하는 데 열정을 쏟는 미국인 팝 칼럼니스트가 있다. ‘빌보드(Billboard)’와 ‘퓨즈(Fuse)’에서 K팝(K-pop) 전문 리뷰를 쓰고 있는 제프 벤저민(Jeff Benjamin)이다. 싸이와 방탄소년단을 세계에 알린 전도사라는 타이틀이 허명(虛名)이 아니다. 2009년부터 여러 음악 사이트와 차트에서 K팝의 약진을 포착한 그는 2012년 ‘빌보드’에 K팝 전담팀을 만들 것을 건의했고, 그 일이 계기가 돼 이후 빌보드를 중심으로 미국 주류 음악 시장에 K팝 어젠다가 형성됐다.

방탄소년단(BTS)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미국 NBC방송의 주말 코미디 프로그램 ‘SNL’에 출연하고, 몰려드는 팬들로 월드 투어 스타디움 앞에 텐트 노숙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자 CNN, ABC 뉴스 등 주류 언론사들은 BTS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앞다퉈 제프 벤저민을 호명하고 있다. 대체 전 세계 음악 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BTS는 정말 비틀스를 넘어선 걸까? 스타일과 기술력이 결합한 K팝은 정말 미국 주류 팝 시장에 진입한 걸까? 제프 벤저민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는 뉴욕대학교에서 음악과 언론학을 전공했고, 2012년 ‘빌보드’ 칼럼니스트로 입성했다.


BTS는 언제 처음 만났나.
“2014년 LA 케이콘(KCON, CJ의 K컬처 페스티벌)에서다. 지드래곤, 아이유, 엑소…유명한 뮤지션들과 함께였다. 당시만 해도 BTS는 그중 가장 신인이었는데도 팬들의 환호가 어마어마했다.”

지금의 BTS는 퀸과 마이클 잭슨이 공연한 팝의 성지 웸블리를 뒤흔든 대스타가 됐다. CNN은 “비틀스보다 더 큰 성취”라고, BBC는 “그들이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팝의 역사에서 이전에 없던 성취다. 한편의 신화적인 스토리다. 이젠 BTS가 발표하면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 무조건 1위다.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방식, 그 음악을 팬들이 즐기는 방식이 모두 쿨하고 진지하며 21세기적이다. 새 앨범엔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을 담고 있다. BTS 굿즈 공식 사이트에서는 칼 융의 저서도 파는 거로 알고 있다.”

상업 아티스트로서의 성취가 어디까지 갈 것 같나.
“이번에 미국 팝가수 할시와 같이 낸 ‘Boy With Luv(작은 것들을 위한 시)’로 ‘라디오 히트’까지 점령했다. 미국에서는 전통 매체인 라디오의 영향력이 크다. BTS도 마지막 목표를 라디오라고 했는데, 얼마 전 ‘2019 라디오 디즈니 뮤직어워드’에서 수상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다음 스텝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
“많은 음악 관계자가 BTS에게 영어로 노래하라고 충고했다. 나는 반대했다. 영어로 노래하면 전파력은 더 크겠지만, 그건 BTS가 아니다. 그들이 한국어 노래로 보수적인 그래미상까지 석권했으면 좋겠다.”

영미권에서는 비틀스와 비교하는데, 음악평론가들의 생각도 같은가.
“비틀스가 좋은 비교 대상인 건 맞다. 그건 팬덤뿐 아니라 사람들이 비틀스를 기억하는 방식 때문이다. 비틀스는 미국인 시각에서 패셔너블하지 않았다. 장발에 부츠를 신고 왔다. 당시 미국에선 짧은 머리에 깔끔한 외모, 밝고 행복한 노래가 인기였지만 비틀스는 자유분방한 태도에 클래식하고 깊이 있는 음악을 들려줬다. 내 부모 세대는 둘로 갈라졌다. 엄마는 비틀스의 광팬이었고, 아빠는 비틀스가 사위 삼고 싶은 착한 이미지가 아니라고 싫어했다(웃음). 비틀스는 브리티시 팝뮤직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놨다. BTS는 K팝의 비틀스처럼 다가왔다. 저항과 사회 비판을 담은 진지한 노랫말은 국경을 초월해 공감을 얻고 있다. 패션도, 메이크업도, 장르도 미국에서 트렌디하지 않은데 영향력은 막강하다.”

트렌디하지 않은데도 왜 BTS를 추종하나.
“그들이 미국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세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BTS는 아무도 따라 하지 않고 스스로의 이야기와 이미지를 창조했다. 결국 변화의 필요를 느낀 서양인들이 그들을 따라갔다.”

거슬러 올라가면 당신은 소녀시대가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나가고 원더걸스가 차트에 오르던 시기부터 K팝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을 거라고 예견했다.
“맞다. 원더걸스는 2009년 즈음부터, 소녀시대는 2012년부터였다. 비주얼도, 성격도, 퍼포먼스도 훌륭하다고 느꼈다. 특히 원더걸스가 빌보드와 인터뷰를 시도했고 투어를 하면서 미국 시장을 똑똑하게 노크했다.”

당시 프로듀서 박진영이 원더걸스와 미국 시장을 개척한 일화는 유명하다.
“분명 갈증을 느꼈을 거다. K팝이 일본에서 인기를 얻어가던 때다. 일본은 세계에서 음악 산업이 두 번째로 큰 곳인데, 일본의 가장 큰 시장이 미국이다. 일본을 점령하고 미국으로 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K팝이 엄청난 노력으로 서서히 확장되는 분위기를 느꼈다. 유튜브, 빌보드 판매량 등의 통계를 보면서 감이 왔다.”


K팝에 관해 가장 방대하고 진지하며 사려 깊은 평론을 하고 있는 제프 벤저민.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K팝에 관해 가장 방대하고 진지하며 사려 깊은 평론을 하고 있는 제프 벤저민. 사진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특별히 당신은 JYP 스타일에 좀 더 애정이 있어 보이는데.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들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1950~60년대 원피스를 입고 옛날 마이크 앞에서 레트로 콘셉트로 노래하는 데 정말 즐겁게 귀에 꽂혔다.”

SM의 팽창도 주목할 만하다. SM은 디즈니나 넷플릭스처럼 콘텐츠와 플랫폼을 아우르는 월드와이드 미디어로 거듭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SM의 성취를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충분히 칭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들은 큰 회사인데도 늘 실험적이고 앞서간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그게 곧 트렌드가 됐고. 레드벨벳의 경우도 굉장히 실험적인 신인이었는데 음악적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나는 SM이 하우스뮤직과 EDM, MCN(스타들의 멀티채널 네트워크)을 다루는 걸 보고 그 선구적인 시스템에 경탄했다.”

반면 YG는 요즘 불편한 이슈를 통과하고 있다.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저스틴 비버도 큰스캔들을 겪었지만 훌륭한 앨범으로 돌아왔다. 진정성 있는 태도와 음악만이 대중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 K팝 열풍을 끌어냈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아쉽게 ‘원 히트 원더(one hit wonder)’로 끝났다.
“싸이는 즐겁고 흥미로운 음악이 한국에있다는 사실을 세계인에게 알려줬다. 놀라운 에너지의 래퍼다. 안타까운 건 싸이 음악 특유의 농담과 풍자, 패러디가 지금의 음악 트렌드와는 맞지 않는다는 거다. 글로벌 트렌드는 좀 더 진지하면서 쿨해졌다.”

한때는 K팝이 미국 팝 음악의 카피이자 아류라고 혹평을 받던 시절도 있었다. K팝만의 경쟁력이 뭐라고 생각하나.
“K팝은 트렌드를 재빨리 흡수해서 전 세계 음악 중 가장 뛰어난 부분을 세련되게 조합해 놓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여전히 엔싱크나 백스트리트 보이스의 아류가 아니냐는 말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K팝은 뮤직비디오, 스타일, 방송, 유튜브, 소셜 미디어… 그 모든 것에서 최상의 올인원 패키지다. 처음엔 K팝을 진지한 장르로 받아들이는 데 주저했지만, 지금은 확실히 변화하고 있다.”

앞으로도 K팝은 그룹 퍼포먼스 위주로 흘러갈까.
“K팝의 경쟁력이 그룹 퍼포먼스가 갖는 다이내믹 파워인 건 분명하다. 노래, 춤, 랩, 비주얼, 작곡 등 각 파트를 담당하는 역할이 뚜렷하고 팬들과 시너지도 강하다. 개인주의 성향의 서양 보이밴드에 비해 그들 사이의 결속력은 막강하니까.”

해외 언론은 팬덤도 흥미롭게 보더라. 빌보드 차트 진입부터 웸블리 공연까지, 모든 과정이 경이롭다는 반응이다.
“가장 놀라운 지점은 그들의 조직력이다. 2014년 초 나의 트위터 팬 계정에 아미가 RM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멘트를 요청했다. 흔쾌히 했다. 그들은 초기부터 해외 언론의 기자나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알고 그들에게 BTS를 홍보하기 시작했다. 아미는 다양한 음악 계정을 전략적으로 분할해서 공략한다. 라디오와 스트리밍 순위는 물론이고 미국도 남서부, 동부 등 지역으로 나눠서 활동한다. 빌보드 진출, 그다음엔? 웸블리 공연, 그다음엔? 목표를 설정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요즘엔 미국의 다른 아티스트 팬들도 아미를 따라 하고 있다.”

BTS는 솔직하면서 보편적인 목소리로 세계를 연결했다. 그들의 세계가 아미와 함께 더욱더 확장될 거라고 보나.
“물론이다. 그들이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한, 세계는 더 확장될 거다. 남들과 똑같으면 성공할 수 없다.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들이 당당하게 한국어로 노래하는 모습에서 진정성과 창의성을 봤다. 그들은 오히려 팬들이 한국어를 궁금하게 만들었다. 방시혁과 미국에서 빌보드 인터뷰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그가 말했다. ‘K팝 아티스트가 제일 잘하는 게 한국어로 노래하는 거다. 그게 아니면 BTS는 미국에서 데뷔하는 흔한 아시아 보이밴드 중 하나에 불과하다.’ 서구 세계로 뻗어 나가려는 시점에서 영어로 노래하지 않겠다는 방시혁의 대담한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냈다. 반복해서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BTS는 스스로를 바꿔서 대중의 맘에 들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서 더 많은 사람이 끌려오도록 했다.”

문득 BTS의 RM이 2018년 9월 유엔총회에서 했던 감동적인 연설이 생각난다. 자신은 수백만 명의 팬이 있는 BTS의 일원이지만 한국 작은 마을 출신의 평범한 청년이기도 하다고. 넘어지고 휘청거려도 그런 나를 사랑한다고. 그러니 여러분도 여러분의 이야기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기억한다. 서양에서 진정성은 굉장한 위력이다. BTS는 진정성이 자기 정체성의 일부다. ‘쇼잉(showing·보여주기)’이 아니라 진짜다. 그래서 모두가 이해하는 구체적이고 쉬운 메시지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들의 노래 ‘Love yourself(스스로를 사랑하라는 의미)’가 현실에서 실제적인 변화와 움직임을 만들어냈다는 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K팝이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보완해야 할까.
“K팝은 아직은 주류가 아니다. 확실한 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야 대중과 연결된다는 거다.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씨엘, BTS를 보라. 깊이 숨어있는 자기를 드러내면 팬들과 연결되고, 팬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전 세계 팬들은 완벽한 아이돌보다 솔직한 아티스트에 더 열광한다.”

김지수 조선비즈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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